워킹맘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일과 약으로 버티던 시절

by 그랑

세상에 없던 잡지를 창간했다. 3040 현대 아버지를 타깃으로 한 이 특별한 저널은 국내에서 한 번도 없던 시도였다. 해외 라이센스 패션 잡지를 보던 2030 남성이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어 보게 될 잡지는 무엇일까를 상상하며 페르소나를 만들어 갔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면 누군가는 그것을 반드시 알아봐준다. 신문, 방송, 뉴스, 도서 팟캐스트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된 B잡지는 당시 꽤 화제를 모았다. 어린아이 둘을 두고, 어떻게 다시 잡지를 만드는 선택을 했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는 것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엄마로도 살 수 없었을 거라고.


유독 단정하고 스마트했던 B저널을 함께 만들던 동료들과 성수동의 쾌적한 사무실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월급까지 주어지니 숨이 쉬어졌다. 일하는 맛이란 이런 것이었다. 퇴근해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콧노래가 절로 났다. 밥 맛이 돌았다. 누구의 아내, 며느리, 딸, 엄마가 아니라 온전히 내 이름을 새긴 결과물을 내고 그 성과를 인정받는 순간들은 시들어가던 내게 생기를 돌게 했다. 아이를 낳는 것을 권하지 않는 시대 결혼을 선택하고, 아버지가 된 3040 모던 파더. 이들의 대안적인 삶을 사냥감을 포획하듯 찾아다녔던 것 같다. 아내와 다양한 주제로 깊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주말에는 자연에서 캠핑을 즐기며, 앞치마를 메고 가족을 위해 저녁 준비를 하고,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는 '유니콘' 같은 아버지들이 내 눈앞에 분명히 존재했다.


당시 나는 누군가에게 '워킹맘'으로 불렸다.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육아와 살림의 영역에서도 이상이 높았다. 정말 이상만 높은 것이었다. 엄마의 일은 수치화하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는 해낸 것도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팀을 꾸리고 몰두하는 시간이 늘며 아이들은 내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졌다. 자발적 일 중독자로 사는 동안 두 아이는 스스로 자랐다. 배달 음식이 물려서 못먹겠다는 아이들을 두고 미안해하면서 몇 해를 보냈다. 꽤 오래 일 외에는 할 얘기가 없었던 것 같다. "요새 남편은 어떻게 지내? 애들은?"하고 물어도 될 만큼 가까운 그 누구와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마음이 공허할 땐 내 작은 몸뚱이 하나 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워 일로 숨어들면 그만이었다. 당시 내게 일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어떤 것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그건 정말로 위험한 상태였다.


희망도 사랑도 없이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삶은 애순이 엄마의 대사처럼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마음 둘 곳이 없었고 붙들고 살 것이 필요 했다. 일을 통해 만난 동료와 취재원을 통해 듣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좋았다. 결혼 기념일 이벤트, 친정 식구들과의 여행 계획, 취미와 자기개발 그 평범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도 그런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으면 안심이 되었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해도 결국 그 날은 오고 만다. 누군가의 보석같은 이야기들을 허기를 채우듯 찾아다니며 세상에 선보일수록 나와 내 가정은 폐허가 되어갔다. 나와 나의 가정이 빈 껍데기뿐이라는 것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발행인과 함께 B저널의 상업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오랜 고민을 결론 지어야 했다. 나는 내 손으로 온 마음을 다해 만들던 B저널의 무기한 휴간을 결정 했다. 모든 것이 공허해 졌다.


회사를 나왔다.
코로나기 한풀 꺾이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던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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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