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만 하고 읽지 못하는 사람

ADHD도 겨우 이해하고 있는데 난독이라니!

by 그랑

책을 둘러싼 소비를 사랑한다

한강을, 존버거를, 버지니아 울프를, 열화당을,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을 좋아한다. 옷과 액세서리에는 극도로 제한적인 소비를 하지만 존버거의 책, 일기장, 노트, 스케치북을 사는데는 고민이 없다. 읽고 쓰는 물건의 소비에서 만큼 매우 허용적이다. 어제는 책장을 정리하다가 몇가지 종류의 다이어리와 독서 노트들을 발견했는데, 포장도 채 뜯지 않은 그림 엽서들, 메모지와 독서 테이프, 펜과 연필들이 담긴 종이 봉투의 직인을 확인하고서야 그것이 재작년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산 물건들임을 알아 차렸다. 해를 넘겨 이제 수집품이 되어버린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적힌 구입 날짜 외엔 텅 빈 노트들을 보며 앞으로도 수년을 버리지도 쓰지도 못할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어 긴 한숨을 내쉰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읽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사는 순간 그것들은 내 기억에서 잊혀지고 만다. 변명을 좀 보태보자면 읽지 않아도 나는 그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좋아했으니 내용 따위가 중요 할리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내게 온 것은 오래된 운명 같은 것이다. 나는 대게 그런 작가를, 책을, 출판사를 첫눈에 알아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읽지 않고 감각하는 책 읽기

내가 책을 만나는 방식은 '읽기'가 아니라 '감각'에 가깝다. 책 등에 새겨진 예쁜 소리 단어에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어떤 방송에서 언급된 프로필 한 줄 때문에 중고서점을 뒤져 특정 작가의 품절된 책 모두를 주문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와 문장을 수집하거나, 용감하고 아름다운 서사를 가진 특정 작가의 이름을 내 책장에 두려고 이 많은 책들을 사다 모은 것이 아닐까 하고 자주 생각한다.

동시에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무거운 마음이 공존한다. 그저 책 애호가라면 좋겠지만 나는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부채를 가질만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20여년에 걸쳐 잡지, 단행본, 브랜드 사사를 출간했고 에디터, 편집장, 콘텐츠 디렉터라는 직함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책을 만드는 일이 너무 고되서 혹은 인풋에 게을러서 읽는 것을 못하는 줄만 알았지, 읽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난독'이 있다고는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읽는 물건'으로서 라기 보다는 '감각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난독이 있는 사람은 정보를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나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읽기 어렵지만 듣고 말하기 능력은 오히려 더 뛰어 날 수 있다. 내가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나의 첫 상품이 아마 책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리라. 만들어왔던 책이 대신 라디오, 팟캐스트, 듣는 유튜브를 떠올렸던 이유를 나는 이제서야 이해했다. 나는 읽지도 못할 그것들을 도저히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더 나은 듣고 말하기 능력을 발휘하느라 인터뷰 꼭지를 제일 좋아했다. 친구들 뿐 아니라 사회에서 만난 낯선 상대에게도 인터뷰 하듯이 다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정보는 그림이나 도식화한 메모를 적어 눈에 담았다. 눈으로 사진을 찍고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일 때문에 꼭 읽어야하는 글밥이 많은 책은 자로 글씨를 가리고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떄로는 거의 모든 글에 밑줄이나 형광펜 마킹을 했다. 글자들이 책에서 탈줄하지 않도록.

책을 볼때 가장 먼저 목차와 제목을 한눈에 훑어 보고, 관심이 가는 주제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가며 맥락과 내용을 파악한다. 어차피 읽어도 글자는 머릿속에서 하나도 남김 없이 빠져나간다. 나는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듯 책속 텍스트와 기획의도를 내 방식으로 해석하고 감각하고 경험한다. 이 모든 나의 읽기 습관들이 난독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난주까지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어떻게 포장해도 '차이' 보다는 '어려움'

<난독증을 읽다>를 쓴 작가님과 긴 전화 인터뷰를 했다. ADHD 이야기로 시작해 난독과 자폐 스펙트럼, 나이가 신경다양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로 연결되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 과정조차 ADHD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난독증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의 사례가 적잖다는 설명을 듣고 약간 어지러웠다. 난독증이 있는 작가가 가진 특유 문체를 왜인지 금방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뷰 중 가장 마음에 닿았던 말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이것은 ‘차이’가 아니라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신경학적 차이를 가능성으로 환원해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별개로 Adhd, 난독, 자페 스펙트럼의 의학적 진단은 신경 정신과적 치료 영역에 속한다. 아무리 티가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어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혹자는 ADHD를 평생 당뇨병을 앓아온 환자에 비유했다.이것을 신경학적 차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경다양인 당사자들에게 오히려 희망 고문일 수 있다. 작가님이 직접 짚어 주신 몇 사례를 읽는데 세 달쯤, 그보다 더, 아니 어쩌면 영영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ADHD에 관해서는 이제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신경다양성이라는 세계로 이제 막 들어선 걸지도 모르겠다.



책을 만들지만 읽지 못하는 사람,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평균 ‘하’이지만 내가 하는 업무만큼은 독보적이고 싶은 일 중독자,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 패스, 본론 중심 실체 중심의 대화를 추구하는 진지충, 말도 안 되는 실수를 남발하는 사고뭉치. 신경다양성의 문을 열고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서 모순 투성이인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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