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 혹은 일기
지난 토요일에는 둘째 아이와 흑백요리사를 보다 난데없이 눈물이 고였다.
“이거 눈물이야?"
“엄마, 지금 우는 거야?”
아이의 말과 함께 주르륵 흘러버린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았다. 작고 가냘픈 팔이 내 몸을 감싸 안자 본격적으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엄마를 보는 것이 힘들었는지 아이는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고 작은 어깨는 흐느끼고 있었지만 소리가 없었다. 아이를 돌려 앉히고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랠 수도 없는 나약한 엄마가 되어버린 것인가.
연휴에 마감을 하던 M이 급하게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이와 나는 각자 방문을 닫고 숨죽여 울었다. 집에 도착한 그는 아이에게 TV 프로그램을 틀어주고 내 팔을 잡아끌어 산책에 나섰다. 그를 따라 동네를 몇 바퀴 돌았을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발걸음을 따라 걸었다. 집 앞 작은 카페에 앞에 멈춰 그가 주문한 밀크셰이크를 기다리며 얼굴을 들어 쇼윈도를 본다. 계절에 맞지 않는 짧은 반바지와 탄력 없이 앙상한 다리, 거칠게 헝클어진 머리. 퉁퉁 부은 눈과 까칠한 피부. 낯선 내가 거기 있다. 차가운 밀크셰이크가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것만 같다. 어젯밤부터 내 몸의 에너지가 될만한 물질의 전부다.
산책을 다녀온 후 포장해 온 국밥에 만 밥을 씹어 삼켰다. 체중계에 올랐다. 사춘기를 지나고 평생 이런 몸무게를 본 적이 없다. 우울과 불안으로 시작된 나의 정신과 치료는 adhd 진단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울부짖는 내게 그는 “바닥을 쳤으니 더 나빠질 건 없겠네.”라고 말했다.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 각자가 가진 그 개별적 경험과 정서에 동의가 되지 않아 흥미가 식어버리거나, 반대로 너무 내 것처럼 느껴져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생각나는 장면들을 떠올려보며 일기처럼 써 내려가보지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지금 내가 지금 무엇을 쓰려는 모르겠다. 이 글을 수필, 소설, 일기, 시, 무엇으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19년을 직업인으로 글을 썼다. 잡지와 책을 만들었고, 다양한 필자들의 글을 윤문 하고, 소설 쓰는 언니의 합평에 의견을 보태기도 했다. 회사를 직함을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는데, 이제는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로 쓰고 싶다.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나를, 나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지 않도록, 또 너무 쉽게 그만둬버리지 않도록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