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로 그날이다.
6살 딸아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극 I 엄마라도 절대 피할 수 없는.
딸아이는 아침 6시부터 눈이 번쩍 떠졌다며 나를 깨웠다.
유치원 차량도 이용하지 않는 날.
그래서 전혀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 말이다.
9시 50분까지 다목적체육관에서 소집.
어서 가자는 딸의 성화에 9시30분이지만 벌써 도착했다.
와.. 벌써 이렇게 많이 왔다고..?다들 내 딸 같나보네.
한껏 들떠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꺄르르 웃는 아이들이 마냥 귀엽고 이뻤다. 내 눈에 이쁜 것과 별개로 딸내미는 극 I인 나를 덩그러니 내버려두고 친구들하고 훌쩍 사라졌다.
유치원 체육대회는 행사시작부터 안무로 날 기죽였다. 춤 추는 걸 좋아했던 것도 이미 다 지난 10년 묵은 이야기다. 다같이 준비운동이라는 명분하에 신나게 율동하고 흔들었다. 고작 준비운동이었다...
준비운동에 나는 털썩 주저 앉았다. 다행히 아이들을 위한 행사로 즐겁게 웃고 사진찍으며 쉴 수 있었다.
딸은 아이들이 나서는 행사에는 즐겁게 참여하고 어른들이 뛰는 행사에선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기분 탓인가했는 데 체육 대회가 점점 진행됨에 따라 또렷이 구분되어졌다. 왜그럴까.
그러던 중 아이가 갑자기 코피를 흘렸다.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을 다녀왔는 데, 아뿔싸. 달리기순서였다.
딸아이에게 있어 달리기는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 찐빵에 들어있는 팥과도 같은 것. 그래도 생각보다 많았던 코피양에 물었다.
"세아야, 코피도 나고 이번에는 앉아서 조금 쉴까?"
"절대 안돼."
결국 아이를 달리기 출발지점으로 데려갔다. 다행히 아직 아이 순서 직전이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황급히 도착지점으로 뛰었다. 오늘 내 역할은 사진 찍어주는 역할이니까. 달리기 동영상에서 내 눈에는 아이의 코에 박힌 흰 휴지밖에 안 보였지만 아이는 꽤나 만족스러운 듯했다.
다음으로 아빠들의 계주가 시작됐는 데, 세아는 내게 치대고 치대더니 급기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왜그러는 건지...하며 속상하던 차에 아빠가 함께 오지않아서인가 싶었다.
그제야 납득이 갔다.
오늘 체육 대회는 마치 아빠들의 능력치를 보는 체육 대회와도 같았다. 아빠들의 참여가 필요한 게임. 아빠들이 참여하면 자동으로 상품도 선물로 받았다.
어쩐지, 아빠들이 목숨걸고 하더라니...
유치원체육대회에서 아빠들은 달리기를 잘해야했고 엄마들이 뒤집어도 뒤집히면 안됐다. 제기차기는 물론, 앞구르기와 훌라우프까지. 춤까지 추는 아빠라면 히어로였다.
딸아이는 아빠와 함께 하지못해 속상했고, 선물을 받지 못해 더 속상했다. 어르고 달래서 무사히 체육대회를 마쳤다.
마칠때 모든 아이에게 나누어준 선물이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체육대회가 끝나자 출근해야했던 나는 아이를 선생님께 맡겼다. 이내 인사하고 가려는 데 딸아이가 너무도 서럽게 울었다.
"다들 엄마 손 잡고 가는 데 왜 나만 선생님 손 잡고 유치원에 가야해!"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문쪽으로 우르르 나가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바라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가 참 작아졌다. 마음이 미어졌다.
아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린 체육 대회는 이런게 아니었을 텐데...
아이와 카페에 가서 음료 한 잔의 데이트라도 할 수 없었던 내 시간 여건이 속상했다. 큰 숨을 참고 뒤돌아 서서 차에 탔다.
5분을 그 자리에 있었다. 도저히 출발할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 아이 손을 붙잡고 나왔다.
"엄마 학원으로 가야해. 미안해. 그래도 같이 가자. 대신 엄마 수업할 때 그림그리기 하기로 약속한거야!"
"응! 절대 시끄럽게 안할게!"
내 뜻대로 하겠다는 아이의 신난 대답은 나를 더 속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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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딸아이의 마지막 유치원 체육대회다. 남편에게 전화로 어깃장을 놓았다.
"내년엔 회사를 때려치워서라도 참가해. 내일부터 특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