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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Nov 26. 2023

수면 가루가 떠도는 시댁 거실


처음 시댁을 방문했던 건 무려 10년 전이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때. 우리 부모님은 남편의 존재조차도 모르던 시기다. 개방적인 시부모님에 별 부담 없이 남편은 당시 여자친구인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데려간 여자친구 중 내가 세 번째였던가.


들어섰을 때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 키가 작고 푸짐한 인상의 어머님은 그저 밝으셨다. 아주 많이. 요즘 말로 확신의 E랄까. 거리낌과 내숭 없는 어머님 덕분에 첫 만남의 자리에서 맛있는 저녁을 눈치 하나 보지 않고 두 그릇이나 먹었다.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남편의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성격은 어머님에게서 받은 거겠지.


첫 만남 이후 자주 어머님을 찾아뵙고 저녁을 대접받았다. 결혼하고 나면 그건 내 몫이 될 거라 생각했다. 어머님을 자주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해야지 싶었지만 어머님은 우리 집 자체를 거의 오시지 않는 다. 행여 무언가 전달하기 위해 오셔도 주차장으로 나를 부르신다. 내 요리실력을 익히 알고 계시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첫 만남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머님께 자주 밥을 얻어먹는 다. 나도 양심이 있어 한사코 설거지를 하겠다 우겨서 설거지정도는 내 역할이 되었다. 아니면 시골이니 배달이 되지 않아 배달음식을 우리가 사간다던가. 물론 그 또한 반찬의 일부밖에 안 되지만. 배달음식을 먹고 싶어도 잘 먹을 수 없는 어머님의 환경을 고려한 나의 작은 마음 표현이었다. 가끔 사가는 치킨이나 족발을 아주 만족하며 드셨기에.


그렇게 내게는 시댁에서의 루틴이 생겼다.


'여보 상펴'로 시작해서 음식 나르기. 두 공기 먹기. 설거지.

그러고 나면 꼭 마무리는 잠들기다.


놀랍게도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다. 처음 남자친구집에 인사 가서 거실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든 경험이 있는가. 나는 있다. 그날 기분 좋게 두 공기를 먹은 탓이었을 까. 추운 밖과 달리 뜨끈뜨끈한 거실바닥에 녹아서일까. 나는 졸다 이내 드러누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코까지 골며 잠들었다고 남편이 이후에   말해줬다.


오늘도 어김없이 설거지를 끝내고 뜨끈뜨끈한 거실 바닥 이불속에 손과 다리를 넣고 몸을 데우다 드러누워 잠들었다.

 

이불 밖으로 나오기도 싫고 집에 가기도 싫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죽하면 어머님께 시댁 이층 옥상에 한층 더 짓자고 우리가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바로 거절당했지만.


나도 시댁에서 그런 행동은 경우가 아니라 생각하고 몹시 민망하고 부끄러웠으니까 그 원인을 곰곰이 분석했다. 하루 수면 시간이 세네 시간밖에 되지 않는 살인적 일상을 몇 년이나 했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수면 시간 부족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주 소복하게 잘 자는 요즘에도 불구 오늘의 일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다는 아닌 듯하다. 처음 시댁에 갔을 때도 그렇고.


어쩌면 시댁에는 내게만 통하는 수면 가루가 퍼져있는지도 모르지.


예를 들면 밥을 두 공기 먹어야 통한다던가. 추위를 많이 타고 뜨끈한 바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통한다던가.


이런 내 모습이 시부모님께 어떻게 비칠까. 이게 가장 핵심이지 않나 싶다. 나도 내 행동이 어이가 없어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대수롭지 않게 시어머님은 엄청 웃으며 대답하셨다.


"크크크. 처음에는 대자로 코 골고 자니까 신기했제. 근데 보고 있으니까 귀엽드만. 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지금은 그게 자연스러운 데 처음 와서 잘 때 그때는 귀엽고 웃겼지."


옆에서 듣던 시아버지도 거들었다.


"뭐 이런 처자가 있나 싶었제. 우리 식구 될 사람이다 싶었제. 그것도 편해야 그럴 수 있는 디야. 그만큼 잘 맞는 거제. 안그냐. 아야. 니가 애기라 신기한거제, 우리 집 놀러 오는 사람들 다 그래야. 애기들은 점잔뺀다고 안 그래도."


누군가에게 기함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이쁘게 봐주시고 오히려 편들어주신다. 여전히 변함없이 아껴주시고 밥도 차려주시고. 날이 추운 날에는 전화 오셔서 밥 먹고 한숨 자고 가던가 지나가는 말로 물어봐주시는 시부모님.


참 감사하다.

전생에 나도 나라를 구하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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