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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Jan 16. 2024

엄마의 표정은 여유가 결정한다.


"얼른 챙기라고 했잖아! 그럼 이제부터 유치원 너 알아서가!"


씩씩대며 큰소리를 치고 안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초조함에 계속 시계를 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안방 너머에서 들려오지만 내 속을 끓는 솥단지처럼 열불이 나고 있다.


밤에 그렇게 자기 싫다고 징징 대더니, 20분이나 넘게 깨워도 못 일어나니까 이렇게 됐지. 밥 먹으라고 할 때는 그렇게 딴짓만 하더니 늦어서 밥을 치우니까 울고 불고. 옷을 꺼내달래서 꺼내줬더니 딴 거 입는다고 난리를 치더니 여름 원피스를 꺼내오질 않나. 이 늦은 와중에 또 첫째랑 싸우고 울고 있네.


구구절절 아이의 잘못을 곱씹으며 끓는 솥단지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조용히 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오늘은 세아가 차량을 이용하지 못할 듯해요. 아직 다 챙기지 못했거든요. 죄송해요."


오늘은 오전 9시 30분부터 보강이 잡혀있어 일정이 빠듯하다. 아이가 유치원차를 제때 타고 가주면 여유롭진 못해도 쫓기지 않게 출근이 가능하다. 지금 전화를 걸어서 차량을 못 탄다 했으니 내가 직접 데려다주는 방법 밖엔 없다. 그렇게 되면 나는 레이서로 빙의해서 학원을 가야 한다. 그래도 일찍 오는 녀석이 닫힌 학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초조하다.


어느 순간 밖이 잠잠해졌다. 방문으로 다가가 귀를 대보니 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걸음 소리가 들려 후다닥 침대로 가 앉았다.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괜히 내 팔을 쓰다듬는 다. 나를 달래는 듯한 아이의 표정에 누가 애이고 누가 어른인지 헷갈린다.


"다했어? 이제 가도 돼?"

"... 네."

"그럼 신발 신어."

"..."


아이는 말없이 신발장을 향했다. 서둘러 아이 뒤를 따랐다.

스쳐 지나가는 아이의 열린 방문 틈으로 단정히 개어져 있는 잠옷이 눈에 들어왔다.


현관을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정신없이 탔다. 차로 달려갔다. 아이의 가방에서 덜그럭 덜그럭 수저통 소리가 들렸다. 내가 수저통을 챙겨줬던가.


유치원에 다다르자 아이가 시무룩하게 말을 건넸다.

"엄마, 오늘부터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게요."

"그래, 알겠어. 엄마가 아침부터 화내서 미안해. 근데 수저통 소리 나던데."

"당연히 내가 챙겼지. 수저통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고요."

나의 사과에 금세 웃음을 찾은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잘 챙기고 있었다. 약간의 속도 차이가 있었을 뿐.


오히려 엄마인 나는 나의 상황과 맞물려 아이를 돌보는 나의 일은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으면서 아이에게 화나 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울그락 불그락 엄마의 괴물 같은 표정을 보고 시작하는 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가 쫓기니 아이들은 이유도 모르는 채 덩달아 누군가 쫓아오는 듯한 공포를 느껴야 한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가볍게.

힘 좀 빼자.


아이들에게 여유로 미소 짓자.



이제 오전 9시 30분 보강은 진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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