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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Feb 18. 2023

D-day

그녀들은 나의 연예인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양팔을 쭈욱 뻗으며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기다리던 글로성장연구소의 모임이 있는 날. 대전까지 갈길이 먼 이유도 있지만 너무 기대되기에 일분일초라도 빨리 가고 싶어 더욱 서두른다. 오늘 만날 사람들은 전부 반갑고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다 보니 단정하게 하고 만나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 부지런히 샤워하고 화장하고 어제 미리 골라놓은 옷을 입는 다. 기왕 대전까지 가는 거,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서 핫바와 통감자도 사 먹는다. 그래도 도착하니 30분이나 남아서 근처 편의점에서 군것질 거리도 사고 여유를 즐긴다. 어느새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인다. 다들 밝은 분위기에서 서로의 이야기와 관심을 나눈다. 성일님과 하늘님께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리나작가님과 필영작가님과는 용기 내어 손도 잡았다. 그렇게 내 내면을 가득 채우는 시간을 보내고서 집으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다. 원래 가는 것보다 돌아오는 건 금방이다. 오늘 시간이 어떻게 흘렀나 모르겠다. 오늘은 이 행복함이 증발되기 전에 바로 잠들어야지. 행복을 꿈속에서 조금 더 이어가야지.




여기까지가 한 치 앞도 몰랐던 내가 세운 하찮은 계획이다.



웅~웅~

울려대는 전화기에 맞춰 머리도 울린다.

더듬더듬 전화기를 붙잡아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생존신고를 하듯 웅얼거렸다.

돌아오는 목소리는 남편이다.


"여보, 아직 자?! 몇 시에 출발하려고??"


번개가 친 듯 눈이 번쩍 떠졌다.

다급하게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8시 30분. 내가 계획했던 시간보다 45분이나 지난 후였다.


"아아아 아아아, 나 돌았네? 여보, 얼른 끊어봐 일단."


황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워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짧은 거리를 가면서 옷들을 휙휙 벗어던졌다.

따뜻한 물이 나오길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찬물로 시작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끝냈다.

샤워하는 내내 계획조정하느라 손보다 머리가 더 바빴다.


'우선, 씻으면 닦고 옷부터 바로입자. 화장은 포기 못해. 그럼 머리는 포기하자. 그냥 수건으로 닦아도 가면서 마를 거야. 일단 가면서 휴게소는 패스해도 돼. 가서 시간여유가 있으면 편의점에서 뭘 좀 먹고 휴게소에 핫바랑 통감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지 뭐.'


스스로와 합의를 보면서

시체 같았던 얼굴에 생기를 부여했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화장을 하려니 원래도 잘 못하는 데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도 내 화장에 관심 없을 거야. 사람 눈의 기능이 왼쪽 오른쪽 눈썹의 두께가 다른 걸 바로 알아볼 정도는 못될 거야.'


애써 위로하며 다급하게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버튼을 마구 두드려댔다.


드디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냅다 목적지부터 찍었다.


그. 런. 데.


분명 나의 급한 성미로 어제 소요시간을 확인했는 데! 이게 무슨 일이야.

어제 세운 나의 계획은 네이버에서 검색했던 소요시간 약 2시간 30분에 맞춘 일정이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인 소요시간은 3시간.

1시가 만남의 시간인데 도착시간이 1시 5분이다.

어떻게 된 상황인 건지 당황스러웠다.


'잠깐, 잠깐. 진정해.'

후우~

큰 숨을 두 번 내쉬었다.

두 번의 큰 숨을 내쉬면서 다시 한번 대안책을 찾았다.


'괜찮아. 편의점 없이 바로 들어가자.

휴게소 안돼, 길 잘못 드는 건 더 안돼. 좋아, 할 수 있어.'


그렇게 핸들을 꽉 쥐고서 출발했다.


대전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국도는 초행길이었다. 대전 자체를 처음 가기 때문.

나는 초집중해서 운전을 했고 조금은 과감하게 달려 다행히 12시 45분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만남의 장소를 빠르게 확인하고 편의점을 찾았다.


여유시간이 부족해 빠르게 커피를 사들고서 입장했다. 어제 일 때문에 3시에 자서 커피는 꼭 갖고 입장해야 할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챙겼다.


입장하자마자 만난 김필영작가님.

'으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화면에서 튀어나온 그녀는 화면과 똑같았는 데 입체적일 뿐이었고 내가 만질 수 있었다.


분명 그녀는 내게 연예인이었고 성덕이란 이런 거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시간들은 그야말로 기대 그 이상이었다. 배움의 시간이었고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설렘의 연속이었다.


낯을 가리는 나는 곁눈질로 성일님과 하늘님을 찾아서 사진 찍듯 눈으로만 인증샷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백지하에요. 정말 만나 뵙고 싶었어요'


내 목구멍에서만 이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용기가 없어 가만히 앉아 오늘의 계획실패를 글로 써 내려가며 무신경한 듯 앉아있었다.


그때


"안녕하세요, 백지하 님이시죠? 저는 이성일입니다."

나의 목청에 걸려있는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성일작가님이 내게 인사를 해주셨다.

너무 감사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집중해서 강의도 듣고 열심히 손들고 문제도 맞히니 순삭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작가님들과 악수도 하고 사인도 받으면서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음을 그제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하늘님이 말을 걸어주었다.

그녀에게는 리나작가님과 필영작가님과는 조금 다른 응원의 팬심을 갖고 있기에 애틋한 느낌을 나 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예쁘장한 얼굴에 평소 과묵한 이미지여서 차마 말을 걸 수 없었는 데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주어서 말로 다 못할 기쁨이었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가 되고 함께 모인 글을 좋아하는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낯을 가리다 보니 어려운 자리인 건 사실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환한 미소로 말을 걸어주어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상대방에게 실수를 할까 잔뜩 긴장했지만 그간 내가 읽었던 그들의 글들로 하나둘씩 매치가 되기도 했다.


글은 참 신기한 힘을 가졌다.


그렇게 일어나기 싫어 삐대고 삐대다 남편의 재촉톡을 받고서야 무거운 댕이를 일으켰다.


마지막까지 필영작가님과 리나작가님은 나의 글을 응원해 주셨고 조언해 주셨다.

마지막에 리나작가님이 먼저 이별포옹을 해주셨고 오늘은 그 기운으로 샤워를 안 하고 잘 까보다.. 더럽나..? 이 기운으로 글 많이 쓰고 자야지..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하고서

다시 3시간의 운전을 위해 자동차에 올라탔다.


남편에게 출발을 알리는 전화를 했다.

"오늘 ㅇㅇ 온대."

"알겠어."


막내아가씨가 온다는 이야기에

나의 목적지가 시댁으로 바뀌었다.

아직 나의 오늘은 끝나려면 멀었나 보다.


부지런히 운전하자.


( 리나작가님의 포옹에너지 덕분인지 차 타고 오는 내내 생각도 많았고 떠오르는 것도 많았다. 운전할 때 메모가 불가능해서 남편에게 전화해 말하는 대로 카톡으로 전송해 달라며 귀찮게 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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