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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Feb 22. 2023

사랑받지 못한 아이

하늘에 띄우는 편지


유난히 설레는 그런 날이 있다. 명절이라 더욱 나의 설렘 수치는 오를 수 밖에 없었다.

푸른 하늘이었고 맑고 청량한 날이었다. 날씨마저 나의 두근거림에 보탬이 되고 있었다.

고3이었던 오빠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집에 남겨두고 엄마 아빠와 함께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없다 서운함보다 들뜨는 마음과 설렘으로 가득찼다.

생각보다 나는 머리가 나빴던 걸지도 모르겠다.


후다닥.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도 닫는 둥 마는 둥 소리 지르며 내달렸다.


"할머니! 저 왔어요!"

쩌렁 쩌렁 동네사람들도 다 알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대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정말 질리지도 않나보다.

이 곳에서 만들어진 상처 딱지가 한 두개가 아닌데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걸 보면 나도 참 반복학습이 안되는 게 틀림없다.


"그래, 종하는?"

할머니가 한달음에 마당으로 나오셨다.


'어차피 오늘은 없는 데, 뭘.'

내 이름보다 먼저 나온 오빠의 이름에 순간 주춤했지만 오늘은 그 인간이 없으니 괜찮다.


잠시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보여줘버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오빠는 공부한다고 못 왔어요~ 저만 왔어요!"

밝게 웃으며 할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그럼 니는 뭐하러 왔노?"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고장나버렸다.

조용히 할머니 손을 내려놓았다.


겨우 상처 위에 딱지가 아물 무렵이었는 데 기어코 새로운 상처가 생기고야 말았다.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유물같은 구닥따리 남아선호사상이 뼈 깊숙이 여있는 이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 인생의 전반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리도 할머니의 사랑을 얻고 싶었을 까?

나도 그냥 돌아서면 그만이었을 텐데, 모두가 당연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심지어 내가 할머니에게 등을 돌렸다는 건 아무도 모를 텐데. 어차피 나를 마주 보지도 않았던 할머니인데 말이다.


하필이면 우리 오빠가 첫 손주다. 나는 5명의 손주 손녀중 셋째인 손녀다.

제 각각 할머니의 사랑 순위의 이유는 있었다.

1번 우리 오빠. 첫 손주다. 절대적이다.

2번 사촌 남동생. 얘가 넷째다. 여자였음 나랑 그래도 비등했을 텐데..

3번 막내 여동생. 어른들은 외동을 두고 그렇게 불쌍하다 했다. 막내라서 이쁨 독차지인데 외동이라 짠하다하셨다.

4번 사촌 언니. 그래도 언니가 나랑 같은 급이라 생각했는 데, 사촌언니는 어릴 때 잠시 할머니가 맡았던 적이 있다.

그래. 내가 5번이다. 자기 할일 자기 알아서 하고 오빠한테 언니한테 대들면 안되고 동생들에게는 양보를 해줘야하는 셋째다.


할머니집에서 가장 권위적인 할머니의 애정에 따라 오빠는 최상위 포식자였고 나는 최하위 피식자였다.

그게 그렇게도 억울했던 것인지, 늘 할머니가 따라다녔다.

기분이 좋은 것도, 속상한 것도, 엄마를 돕는 것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모든 이유가 할머니였다.

늘 할머니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고 한번쯤은 오빠를 제껴보고 싶었다.

오빠를 제끼기는 커녕, 최하위에서 단 한계단도 올라오지 못 해봤지만 그때는 그랬다.


할머니는 나의 아픈 상처고 흉터다. 하지만 그를 통해 나는 많은 걸 깨닫고 알아갈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할머니 덕분에 많은 의미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다.


늘 할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 바둥거렸다.

보기 좋게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데려갔다. 누구보다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모습으로든 인정받고 싶었다.


첫 아이를 품에 안고서 그때 그 고개숙이고 지나다니던 할머니집 대문을 의기양양하게 걸어들어갔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다 알고 있던 나의 남편 또한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이 아이는 많이 이뻐해주세요!"

큰 소리로 당당하게 외치고 싶었다.

첫 아이가 아들이기에 더욱 어깨를 폈던 걸지도.


그런데 힘이 없어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말을 잃었다.

한없이 작아진 할머니의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이제서야 온 나를 원망했다.

약해진 할머니는 미소 띈 얼굴로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아이도 조금이라도 더 안아보려 하셨고 그렇게 내게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잘했다, 잘했다. 아이고 우리 지하가 잘했다."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나는 나의 실패와 좌절의 시기에는 할머니 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할머니는 많이도 변하셨다.

좀 더 빨리 어야했는 데... 


남편은 이런 내 등을 조용히 다독여주었다.

그 이후 진주를 지나갈 일만 있으면 남편은 내 손을 붙들고 꼭 할머니집에 들러서 인사하고 갔다.

아이들도 보여주고 그렇게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몇 년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던 것일까.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어린 아이처럼 소리내어 엉엉 울고말았다. 한번도 할머니에게 보여준적 없는 모습이었다. 그간의 서러움과 억울함, 슬픔까지 뒤섞여 울음과 함께 다 쏟아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응어리를 토해냈다.


누군가의 죽음자체가 생소했지만 내게 할머니는 많은 것을 의미했다.


돌이켜보면, 사랑을 원했다면 사랑을 줬어야하는 데 나는 인정받으려고 발악을 했다.

사랑을 받는 방법을 알기엔 너무 어렸었다.

너무 어리석었다.






할머니,

보고싶습니다.

할머니한테 늘 표현은 못하고 혼자 발만 동동거렸어요.

할머니의 일생을 훗날 더 어른이 되어 듣게 되었어요.

그 곳은 평안하신가요?

그 곳에서는 할머니가 고통없이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를 가장 사랑하는 손녀 백지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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