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경 Oct 06. 2022

다시 부산에 가게 된다면?

서울살이, 나의 선택지는 서울 그리고 부산 뿐인가?

농담처럼 이제 서울에 친구가 더 많다고 말할 때가 있었다. 그랬던 적도 있었다. 대학, 취업 등 서울에 정착을 할 이유는 다양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친구들도 생겼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육아였다. 결혼과 아이의 계획이 있는 경우, 애당초 고향으로 돌아가서 결혼을 하거나 육아가 쉬운 곳으로 결혼 후에 옮기는 것이다. 일 때문에, 서울이 너무 지겨워서, 사람에 지쳐서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내 주변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빈도수는 적지만 나도 가끔 부산에 가는 생각을 한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하진 않는다. 나는 내가 서울에 정착했다고 믿고 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산에 좀 더 자주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래도 생각이 많은 사람인지라, 부산에 내려가면 뭘 얻고 포기하게 되는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겨본다.

 

나는 서울에 대한 동경아닌 동경이 있었다. 커리어우먼의 모습, 바쁜 지하철 그 딴건 아니고 각종 공연과 문화생활이다. 근데 막상 올라오고 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은 연례행사처럼 즐긴다. 게다가 코로나로 제대로 즐기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오히려 그럴땐 부산에서 연례행사처럼 즐기던 것들이 그리워졌다.


부산하면 모두가 생각하는 바다가 그렇다. 정말 진부하지만, 바다가 없는 도시에 살고 보니 탁 트인 바다를 보는 것 만큼 좋은 것이 없다.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이 바다보고 싶다고 할 때면 나는 한강도 크고 좋지 않냐며 바다를 고집하는 친구들에게 반문했다. 탁 트인 느낌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서해 바다를 가 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할때면 친구들은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비린내, 갈매기의 탈을 쓴 비둘기, 거기가도 바다가 보이는 카페, 즐길 수 있는건 똑같다며 내 생각을 종용했다.


막상 서울에 와보니 한강과 서해와 해운대는 다르다. 과거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언제나 반성한다. 한강만의 매력, 서해만의 매력, 해운대만의 매력이 다 다른데 왜 나는 탁 트인 느낌이라고 '퉁'쳐서 똑같다고 했을까? 


지금의 나는 부산에 가면 무조건 바다를 보고 온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올 때도 있고 야경이 아름다운 항만 근처의 바다를 보고 올 때도 있다. 시간이 없으면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짧게 도보데크로 나가서 바다를 보고 온다. 


바다뿐만 아니라 크고 넓은 도서관도 가끔 부산을 그립게 한다. 서울엔 작은 도서관도 많고 좋은 도서관은 꽤 있지만 집 근처 도서관은 조금 아쉽다. 구립 도서관인데 본가 주민센터보다 작았다. 책도 한 층에 다 모여 있어서 이게 다일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 장서는 부산에서 자주 이용했던 도서관 장서의 1/10 정도이다. 상호대차가 잘 되어있어서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면 되지만, 책을 찾으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다른 책을 빌리던 재미는 줄어들었다. 다른 구에 살다가 넘어온 친구는 이곳 도서관의 장서는 결코 적은 편이 아니라하지만 뭔가 책을 찾는 재미나 도서관의 쾌적함은 아쉽기만하다.


이런 공공기관의 크기의 차이로 나는 이 지역의 땅값이 가늠한다. 예산이 비슷해도 예산운용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10억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의 평수가 지역별로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나 할까? 도서관이나 주민복지센터는 서울과 부산만 비교해도 내가 자주 이용하던 곳에 비해 크기가 많이 작은 편이다. 이런 곳에 이렇게 큰 기관을 지을 필요가 있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산을 쓸 수 있는 폭이 다르니 그런 공공기관의 디자인이나 스케일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가끔 행정시나 군 단위의 지역에 놀러 갔을 때 크고 멋지게 지어둔 공공기관을 보며 감탄한다. 


부산이 서울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것이 있는데 바로 날씨다. 이 작은 나라에서 뭐가 차이가 봤자 얼마나 나냐 싶기도 하지만, 서울 사람들의 팍팍함은 서울의 날씨가 어느정도 기인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정도의 차이는 보여준다. 

남부지방이라 부산이 더 더울 것 같지만,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폭발적인 더위는 보여주지 않는다. 안 덥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일반적인 생각처럼 남부 지방이라고 무조건 더 덥지 않다는 것이다. 겨울의 날씨를 살펴보자. 겨울의 온화함은 말이 필요가 없다. 물론 바닷가에 고층 빌딩이 많아 바람 이 많이 부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수도권처럼 뼈에 스미는 추위는 없다. 

수도권녀석들은 마치 수도권엔 바람이 불지 않는 것 처럼 부산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분다고 말한다. 녀석들... 서울에도 강바람, 빌딩사이 바람이 어마어마한데 무슨 얘길 하는건지! 차가운 바람과 온도의 콜라보로 서울에 올라 온 첫 해, 지독히 추웠던 어떤 날엔 숨을 쉴 때마다 폐포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 


부산이 더 좋은 것들을 열거하다보면 우습게도 그 땐 잘 누리지 않거나 몰랐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바다를 가 는 건 연례행사였고 도서관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갔다. 날씨는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조차 의식해본 적이 없다. 


서울이 부산보다 좋은 것들을 말하자면, 이 역시도 자주 있지 않으면서 포기하지도 못하는 것들이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애정을 쏟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 오빠들이 그렇고, 이렇게 멋진 게 서울에 있는데 역사를 모른다고? 하고 분통터져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렇다. 문화의 불모지 부산을 외치며, 부산은 야구 응원말곤 다 재미가 없어!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지금 문화의 불모지와도 같은 수도권외의 삶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심지어 야구도 안 보니 이전보다 더 못한 상황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들은 의식주와 관계가 없다. 코로나 이후로는 아무리 문화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가끔 봤던 영화 역시도 지금은 OTT서비스로 해결 중이다.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본 적도 있는데 여럿이서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영화를 보던 지난 2년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폰을 못 보는 것도, 좋은 장면에서 대박!을 외치지 못하는 것도 힘들었다. 넷플릭스에서 바라던 인간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쯤이면 부산에 있으나 서울에 있으나 별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진다. 나는 부산에서도 프렌차이즈 카페 에서 커피를 마셨고, 여기서도 그러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다시 부산에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여기서 또 다른 생각을 한다. 생각이 많고 내 생각의 방향은 약간 핀트를 벗어나 있다.


어차피 프렌차이즈에서 커피를 마시 고, 공공시설만 이용한다면 굳이 우리나라일 필요가 있는 걸까? 


코로나로 전 세계의 대처를 간접적으로 보며 우리 나라가 정말 살기 좋은 나라임을 알게 되었지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어딜 가나 비슷하게 사는 거, 외국에서도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 서울살이를 하며 나의 선택지가 부산, 서울 그리고 외국의 어느곳으로 확장되어버렸다. 막상 어릴 땐 없던 엉뚱한 용기가 혼자 살기 시작하며 마구 샘솟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