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병을 키우는 지하철, 내 마음을 차갑게 식혀주는 한강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산에 지하철이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진 모르겠지만, 대도시에 지하철 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대구의 지하철 1호선은 1997년에 개통했고, 광주는 2004년에 1호선이 개통했다. 언젠가 부산에 3호선이 개통했다고 하니, 그럼 서울에서 3호선을 타면 부산까지 갈 수 있냐고 아주 천진하게 물었던 서울 친구가 생각이 난다.
그 때는 그 말이 정말 어이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1호선 뻗어나가는 걸 보면 몇 년 뒤엔 대전까진 가능하지 않을까싶다.
처음 서울에서 지하철을 접했을 때는 일단 많기도 하지만, 편해서 놀랐었다. 많고 복잡한 지하철은 외국에도 많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공철과 사철이 섞여 있어서 처음 여행을 갈 때 많이 헷갈렸었다.
서울은 보기엔 어렵지만 환승 난이도는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생 각한다. 조금 비싼 환승 요금을 내야 하는 사철도 있긴 하지만 회사가 다르다고 해서 환승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2호선 외선 순환과 내선 순환이 뭔지 잘 모르겠다.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지금도 어느 방향이 내선 순환인지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냥 내가 가는 방향에 맞춰 탈 뿐이다.
2호선은 원형으로 도는 노선이고 시종착역이 없이 순환하는 열차임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지하철 막차를 타면서였다. 지하철은 버스와 달리 종착역으로 들어가서 한 대씩 출차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막차를 탈 때 사당행, 신도림행 잘 보고 타야했다. 나는단순히 ~행이 그 방향으로 간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을 보고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 날 나는 중간에 택시로 갈아탔다. 막차 시간대의 ~행은 그까지만 가서 거기서 멈추는 거였다!
혹시 내가 살 던 곳도 그런 개념이지만 내가 의식하지 못했나 싶어 찾아보니 연장 노선에 대한 막차는 있어도 중간에 서는 건 없는 듯하다.
가장 생소한 개념은 급행이었다.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관광객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크게 의식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들은 주로 급행열차가 서는 곳이었다. 하지만 생활자가 되면서 지금 들어오는 지하철의 급행 여부는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것이었다.
특히 내리는 곳이 일반 열차만 서는 역이라면, 방송에 신경을 써야한다. 중앙보훈병원행 급행인지 일반인지 도대체 화면엔 언제 나오는 걸까? 항상 보다가 놓친다. 그래서 일단 타는 경우가 많다. 타고나서 추측하는 것이다. 환승역의 경우 내리는 사람으로 판단할 순 없고 내가 지하철을 탔을 때 여전히 사람이 많으면 급행이고 적으면 일반이다. 급행을 탄 경우, 내리고자하는 역과 가 장 가까운 역가지 가서 내린 다음에 일반 열차를 기다린다. 이 것도 몇 번 놓치고 나서 생긴 노하우다. 인터넷에 밈으로 떠돌지만 다음 역이 어딘지 확인하려고 안내 화면을 보면 ~행 내리는 곳은 오른쪽만 나와서 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다는 말에 나는 여전히 웃기만 할 수가 없다.
지하철에 타서 지금 여기가 어딘지 지도 어플로 찍어보고 있으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은 안에서 내가 몇 번째 칸을 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는 방법이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요.)
서울의 지하철은 숨 쉬듯 자주 오지만, 그렇지 못한 노선도 있다. ktx와 같은 철길을 쓰는 경의중앙선의 이야기다. 경의중앙은 노선도 워낙 길고 자주 다니지 않아서 10초만 연착이 되어도 쌓이고 쌓이면 몇 분이 된다.
배차간격도 수도권 지하철 중에서 극악인 편에 속한다. 포털에 검색해서 나오는 시간 기준으로 한 시간에 세 대밖 에 없을 때도 있다. 제때 다녀도 한 대를 놓치면 이십 분을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경의중앙의 배차간격을 보고, 나는 부산의 동해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동해 바다 쪽으로 노선이 나있어서 이름이 동해선인 이 도시철도는 타는 사람이 적은 시간에는 한 시간에 두 대가 배차되어있다. 퇴근을 많이 하는 여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사이에도 세 대 혹은 네 대가 배치되어있다. 동해선이 개통된 후 이 노선을 타면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시간이 사십 분에서 십오 분으로 줄어 동해선을 타기 위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역까지 걸어갔었다. 6시 9분 차를 놓치면 39분이다. 놓치면 원래 퇴근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리는 것이다. 놓쳤다는 각이 서면 버스를 타러 가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타는 역은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없었다. 그래서 멀리까지 걸어가야했는데 그럴때면 버스는 이미 앞에서 사람을 가득 싣고 와서 퇴근길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울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하철이고 역세권의 개념도 지하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포기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지하철 기준으로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기때문이다.
'태어날때부터 지하철이 있던 도시'에 살았던 나지만, 우습게도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 서울에 있음을 실감한다. 숨이 막히는 9호선, 하나가 막히면 모든 순환이 다 막히는 2호선도 그렇지만 한강을 지날 때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서울에서의 삶이 낯설고 새삼스럽다. 특히 2호선 합정- 당산구간은 마음을 뭔가 간지럽게 하는 게 있다. 숨통이 트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긴장 되는 것도 아니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이 이 구간에서 한강을 볼 때면 마음에서 피어오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오늘 하루도 무사했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일때문이 아니라 놀러 가면서 이 구간을 지날 땐 이게 서울의 맛이지, 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언제나 똑같이 흘러가는 한강이 항상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매일 이 구간을 지나지만, 사진을 찍을 틈이 생기면 어김없이 카메라 어플을 켜고 사진을 찍는다.아, 오늘은 그럭저럭 괜찮았어, 별로였어. 다양한 감정들을 잠시 휴대폰속의 한강에 내 눈속의 한강에 담는다. 나중에 그 사진을 열어볼때면 그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숨을 쉬었는지 큰 쉼호흡을 했는지는 그 때의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버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