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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Aug 24. 2022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

귀찮아 안귀찮아 괜찮아

"딸 카톡으로 사진 여러 장 어떻게 보내? 묶어서, 한 번에"

"이거 인터넷으로 사려면 어떻게 해?"


이런 내용의 연락을 받을 때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사실 하나도 바쁘지 않지만, (마음이) 바빠 죽겠는데 엄마의 부탁은 귀찮다. 귀찮음을 누르고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 천천히 설명을 하지만, 한번에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같이 진행을 했는데,다시 물어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짜증이 조금 밀려 올라온다. 두어 번정도 더 반복하고 나면 귀찮음이 섞인 짜증을 말로 쏟아내버린다. 별거 아닌 일로 부모님께 짜증을 내고나면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그 짜증을 덮는다.

사실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다음 번엔 친절하게 받아야지 생각하다가도 다음 번에 비슷한 전화가 오면 기분의 흐름은 또 반복된다.


그나마 우리 부모님은 변화는 사회에 빨리 적응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 강의와 구글 클래스로 과제 올리기까지 성공적으로 끝내고 대학을 졸업한 엄마를 보면 그렇고 -물론 혼자 해내기까지 엄청난 우여곡절이 있었다. 초반에는 원격 프로그램을 깔고 수업을 같이 듣기도 했고 한글 프로그램이 없어 엄마의 컴퓨터로 들어가 hwp 파일을 대신 만들어주기도했다. 컴퓨터로 유튜브를 보고있으면 숙제 안 한 아이 다그치듯 타자연습하라고 자주 잔소리를 했다- 아직 결제까지는 못 하시지만 최저가를 검색하여 링크를 보내주며 사달라고 하시는 아빠가 그렇다.

피싱에 대해 하도 엄포를 늘어놓아서 그런지, 아직 휴대폰에 간편결제는 하나도 깔아놓은게 없으신 듯 하지만 , 무통장 입금까지 완료해두면 폰으로 계좌 이체는 정말 잘하신다. 가끔은 채널 번호가 다른데, 지금 10번 틀어서 결제해달라고 하실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스마트해지셔서 홈쇼핑 방송시간에 방송 링크를 카톡으로 공유해주신다.


가끔 본가에 갔을 때 뭔가 새로운 기계를 보면 경계하기도 한다. 혹시 이건 비싸게 사진 않으셨을까? 예전엔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집요하게 얼마인지 캐냈지만, 요즘은 이거 우리집에도 없는데~ 편하네! 하며 더 좋은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가격이나 할부 개월수는 흐린 눈으로 넘어가려고 노력한다.


비싸네! 왜 이가격을 주고 샀어? 하며 면박 주면 가장 속상해 할 사람은 누굴까 생각해보니 그건 부모님이셨다. 폰을 바꿀 때, 인공지능 스피커를 집에 들이셨을 때 옆에 있어주지도 않을거고 저 상황에서 간섭해줄 것도 아니면서 돈 아까운 것만 생각하고 닥달했다. 사실 조금 비싸게 산 스피커보다 이런 것을 예전만큼 비교하고 따져가며 살만큼의 에너지가 없다는 점에서 부모님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 을 알 때마다 조금씩 서글프다.(물론 나도 갈 수록 최저가에 대한 에너지를 덜 쓴다)


함께 살며 매일 만날 땐 몰랐지만 일년에 몇 번 만나다보니 부모님 하루가 다르게 달라진다는 걸 느낀다. 물론 부모님도 느끼는 것 같다. 저번보다 살쪘다... 저번보다 얼굴이 안 좋아졌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빠른 것만 알았지, 엄마 아빠 나이 들어가는 건 모르고 살다가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볼때만 부모님이 점점 나이들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을 바짝 차릴 때가 있다. 어디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뭘 해줄 수도 없으면서 걱정만 쌓인다. 병원에 가봐라, 가봤느냐 예약을 해라. 엄마 잔소리는 되게 듣기 싫어하면서 나의 잔소리는 걱정이라는 이유로 부모님께 남발하고 있다. 이렇게 일 년에 몇 번 부모님을 본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일년에 서너 번, 한 번에 삼 일씩 본다고 치면 십이 일 정도. 십 년이면 백이십 일, 이십 년을 봐도 일 수로 채 일 년이 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 없던 효심이 어디선가 솟아오른다.


얼굴이라도 자주 보자 싶어 줌으로 다같이 밥 먹기를 시도한 적 있었는데 엄마가 움직이는 제삿상같다고해서 화상 저녁 식사는 한 번으로 종료됐다. 최근 엄마 아빠와 카톡으로 영상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니더라도 오늘 친구를 만났다. 심심하다 이런 내용으로 영상을 보낸다. 아직은 나만 보내고, 답은 엄마에게 한 번밖에 받지 못했다. 영상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좀 효과가 있는지 단톡방에서 말도 잘 안 하던 아빠가 오늘은 등산을 갔다 왔는데 너무 좋았다. 이런 짧은 내용이라도 보내주신다. ...물론 저렇게 길게 보내진 않으신다. 인증샷을 보내시고 오늘은 백운대. 이렇게 통보인지 대화인지 모를 내용을 보내시지만 어쨋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나 싶어 아빠가 귀엽게 느껴진다. 이런 게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10초짜리 짧은 영상이라도 보내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가까이 있지 않아도 옆에 있는 것처럼 추억은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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