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아온 롯데 영업 시즌
여기서도 야구, 저기서도 야구. 야구 얘기가 끊이질 않으니 아주 소수의 호기심 많은 친구들이 야구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당당하게 야구를 같이 보러 가자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가듯, 맛집을 가듯 쉽게 말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쉽게 야구장 이야기를 꺼낸다. 여전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은 조금 더 호의적이다. 문제는 티켓이다. 티켓팅이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가장 어려운 곳은 잠실 주말 엘지홈경기이고 나머진 비슷하다.
엘지는 성적이 말해주듯 예매가 치열하다. 야구는 홈, 원정이 확실하게 나눠져 있는 좌석도 있지만 적당히 섞여 앉는 곳들도 있다. 일명 ‘그레이존’의 예매가 치열해지는 것이다. 암묵적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가까이 앉지만, 자리가 여의치 앉으면 조금씩 상대방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 잠실 야구장의 경우 포수 위쪽 상단 3층이 그런 곳이다. 그곳을 어떤 팀의 팬이 많이 차지하고 있느냐가 성적과 인기의 척도처럼 보일 때도 있다.
게다가 요즘은 선예매권을 모두가 들고 있는 건지, 선예매 이후에 들어가면 남은 좌석도 얼마 없다. 몇 백석도 남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 만대의 대기번호를 기다린다.
야구 티켓예매에는 콘서트 티켓예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동배정’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이거 대체 왜 콘서트는 도입하지 않는 거지? 어쨌든. 몇몇 구단에서 제공하는 자동배정으로 원하는 좌석수를 선택한 후 끊임없이 새로고침을 누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리가 결정되어 있다. 돈까지 다 지불한 뒤 내 자리를 확인한다.
이제 야구장에 갈 준비를 해보자.
준비물이 따로 필요하냐고? 당연하지. 야구장 그곳은 나에게 뭐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만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챙겨가야 하는 곳이다. 아무것도 없이 가도 즐겁지만 즐길 준비를 하고 가면 더욱 즐겁다.
야구를 처음 보는 친구들을 영업하는 요소 중 하나가 먹거리이다. 하지만 야구장은 정말 뭘 먹기에 여긴 불편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닭강정, 맥주 이런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눠먹지 않아도 되는 햄버거 같은 게 최고인 듯하다. 흘리거나 나눠 먹는 문제도 없고 쓰레기 처리도 간편하기 때문이다. 야구가 시작할 때쯤 빠르게 음식을 먹어치우고 응원을 하다가 중간중간 간식을 채운다. 잠실 유명 먹거리는 김치말이국수 일명 ‘김말국’이 있다. 이걸 어떻게 먹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진짜 더운 날 김말국을 한 입 먹어보고 알았다. 야구장에선 김말국이야. 이 시원한 국물이 없었으면 나는 녹아내려버렸을 것이다. 여하튼, 날이 덥다면 햄버거가 아니라 김말국을 한 사발씩 먹어줘야 한다.
야구장에 처음 가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여러 번 가본 나는 신경 써야 할 것이 조금 더 생기기도 한다. 친구에게 어떻게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유니폼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유니폼은 챙겨줄 수 없다. 주변 롯데 팬들의 유니폼을 모아 본다. 하지만 없어도 된다. 혹시나 다른 유니폼이 있어도 괜찮다. 엑소 플래닛? 괜찮아. 손흥민도 괜찮아. 오늘 롯데랑 엘지 경기인데 기아 유니폼도 상관없냐고? 괜찮아. (근데 기아 유니폼은 왜 있는 거야...?) 짝짝이를 챙긴다. 롯데 전매특허 응원도구 짝짝이. 이건 가격에 부담이 없어 두세 개씩 사뒀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쥐어준다. 나는 목소리로 응원하면 되니까.
응원가를 미리 알아가면 더 신나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괜찮다. 롯데 응원곡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이름’ ‘안타’ ‘오오오’ 말고 별다른 가사가 없다. 신나지만 정말 쉬운 응원가 중 하나이다. 선수들이 모두 한 타석에 서고 나면 아마 거의 다 알게 될 것이다. 박자와 음가의 문제이지 가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른다 해도 그냥 대충 따라 하는 척만 하면 된다. 어차피 유니폼 입은 팬들도 롯데 응원가를 부를 때도 보면 다들 오오오랑 뛰어! 최강롯데만 목소리가 크고 중간은 뭉개면서 부른다.
야구는 공격과 수비가 정확히 나눠져있다 보니, 우리 팀이 수비를 할 땐 일명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그럼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1. 무덤에서 공 던지는 사람이랑 치는 사람은 같은 팀인가?
-유니폼 색을 봐라.
2. 3할이면 10번 중 3번밖에 못 치는 건데 어떻게 에이스인가?
-그게 확률상...
3.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조용히 티빙을 켠다)
그래도 최근엔 야구 예능이 꽤 흥했기 때문에 야구장에 함께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야구룰을 아주 처음부터 설명하는 경우는 잘 없다. 다행이지. 나도 잘 모르는걸.
사실, 처음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을 가장 쉽게 나와 같은 팀을 응원하게 만드는 방법은 야구를 보러 간 날 이기는 것이다. 같이 한 팀을 응원하며 다음에 또 오자!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 하지만 승리는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롯데는 기회의 순간이다. 친구들을 영업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시즌이 없다. 이전엔 롯데 팬들끼리 조용히 야구를 보러 갔었다. 나도 야구 보러 갈래!라고 누군가 말하면 오히려 거절을 하곤 했다. 거의 져서.... 재미없을 거야. 이런 말로 거절했다. 그러면서 나는 몰래 보러 가서 분을 삭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 롯데는 다르다. 초반의 전력분석에서 가장 예외의 길을 걷고 있는 팀이 롯데가 아닐까 한다. 떨어졌어야 하는데, 이제 이런 말 듣는 것도 지겹다. (물론 지금 순위싸움은 치열하기 때문에 몇 경기 삐끗하면 바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안다) 1.5군 자이언츠. 지금 주전 다 빠진 자이언츠 이런 얘기도 싫다. 우리는 오늘 경기 뛰는 바로 그놈이 주전이다.
나도 올시즌이 되어서야 친구들에게 혹시 야구 보러 갈래? 너만 괜찮다면..이라는 말을 한다. 어쨌든 직관은 혼자보단 둘 이상이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힘든 여름이 찾아왔지만, 나는 또 사랑으로.. 친구들에게 영업한다.
야구 보러 갈래? 아니 아니 롯데 경기 아니어도 괜찮아. 고척 갈까?
키움 꼴찌 아니냐고? 그러니까 더 보러 가야 해. 잘할 때 하는 건 칭찬이고 못할 땐 응원하는 거랬어. 누가 그랬냐고? 우리 팀 응원단장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