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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들의 사랑을 시험하는 계절, 여름

-온도, 조명, 습도 모든 게 최악이야.

by 박현경

여름이 시작되었다. 피부에 닿는 햇빛이 따갑다. 저녁이 되면 선선해지길 바라지만, 길어진 해는 쉽게 시원한 날씨를 허용하지 않는다. 야구가 시작하는 시간 6시 30분은 아직 해가 뜨겁다.


야구가 6시 30분에 시작한다면, 관중들은 그 전에 입장해서 자신의 자리를 향해 들어간다. 나의 자리는 어떤 상황일까? 낮 동안 햇빛에 노출되어 있었던 의자는 따끈따끈하게 잘 익어있다. 물티슈로 의자를 닦는 건 의자가 더러워서도 있겠지만 의자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긴급 처방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여기서 빈부격차에 따른 차이가 드러난다. 보통, 야구장에서 비싼 값을 받는 자리들은 야구장의 디자인이나 테이블의 영향 등으로 의자가 덜 뜨겁고 야구장에서도 그늘을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홈경기 팬들은 이 뜨거운 햇빛을 등지고 않는다. 등은 타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해가 조금씩 지고 그늘이 생기면 괜찮아진다.


하지만, 원정팬들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정팬의 좌석도 따라 햇빛이 덜 드는 자리가 존재하지만 내가 예매한 곳이 그 구장에서 가장 저렴한 자리라면? 부잣집 잔치에 동냥밥 먹으러 온 옆 동네 거지나 앉을 법한 자리에 앉게 된다. 해가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더위를 온몸으로 경험 할수 있다.


일단 햇빛을 받아 한껏 달궈진 의자에 앉으면 거기서부터 더위가 시작된다. 야구장의 홈과 원정이 동-서로 정확하게 나눠져 있진 않지만 해가 일찍 지는 곳을 보통 홈 구단 쓰고, 반대편을 원정 구단이 쓴다. 그나마 선수들의 자리엔 대형 선풍기가 있고, 그늘이 있고, 또 선수들끼리 일정 간격도 유지 중이지만 팬들은 그렇지 않다. 좌석의 크기와 간격이야 양 팀 팬들이 다 똑같지만 원정팬들은 입장이 조금 다르다. 달궈진 의자로 열기를 먼저 경험했다면 두 번째, 일주일 치 비타민 디를 모두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오랜 시간 햇빛을 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 번 째 해가 지기 일보 직전엔 해를 정면으로 보는 상황도 생기기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상황도 생긴다.

오후 5시 시작 경기를 하는 날이면 경기를 보는 내내 해가 지지 않는 사태도 발생한다. 야구장의 모양이나 광고판의 위치 등에 따라 그늘이 생기기도 하지만 홈팀 팬들처럼 시원함을 누리기 위해선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한다.


게다가 야구장 의자 간격은 왜 그렇게도 좁은 지. 도무지 바람이 들지 않는다. 땀에 붙은 바지를 떼어내기 위해 그리고 땀을 식히기 위해 자리에서 가끔은 일어나줘야한다. 그 가끔이 언제냐하면 바로 우리 팀이 공격하는 바로 그 때이다.


공격을 할 때 모두 일어나서 응원하는 것을 종용하는데(물론 필수는 아니다. 앉아서 보는 사람도 많다) 더울 땐 지고 있더라도, 힘이 빠졌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의자가 너무 덥다. 팬티까지 젖은 기분이다. 아마 기분만은 아닐 것이다. 너무 더워 계속 무언가를 마시고 또 마시는데 화장실은 그다지 가고 싶지 않다. 내가 보충한 수분은 밑 빠진 독처럼 들이붓는 족족 땀으로 빠지고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엉덩이가 그나마 시원하기 때문에 다같이 일어날 때 일어나서 응원과 함께 옷을 말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반바지를 입고 간다면 무릎 부분만 탈 것이다. 손목에 시계 자국이 남을 것이다. 얼굴에 안경테 자국도 남을 것이다.그리고 머리카락 안은 한여름 더운 것도 모른 채 뛰어논 어린 아이처럼 촉촉해져 있을 것이다.


정말 실망스런 경기력으로 경기를 한 날이면, 팬들에게 표값을 환불해주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온도 높음, 습도 높음, 조명 밝음(벌레 있음) 여름 저녁 최악의 3박자 속에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네 시간 넘게 응원을 했는데 처참하게 졌다? 이건 내 사랑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진짜 달린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저녁 9시쯤이 되면 야외인데도 땀 냄새가 가득하다. 선수들에게 언제나 뛰어라고 외치지만, 누구보다 많이 뛴 것같은 행색인 사람들은 그 습도를 온몸으로 껴안고 야구를 보고 있는 팬들이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행위가 있었던 날은 집에 가는 팬들에게 오늘 마신 음료값이라며 봉투에 돈 오천원씩이라도 넣어서 돌려줘야 한다.


그나마 이기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다. 이 더위를 겸허히 받아들이다. 하지만 지고 있다면? 인사이드아웃의 버럭이처럼 정수리가 터지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버럭이가 되어있다.


내 발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지옥불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야구장 원정 응원석이리라. 예매를 하면서도 생각한다. 내가 대체 이걸 왜 가서 본다고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생각해보면 안 좋은 것들 밖에 없는 여름의 야구장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단 한 순간도 없다. 결과도 생각나지 않는다. 진짜 못 할때였으니까 아마도 졌겠지. 언제 이기고 졌는지 기록은 희미하다. 하지만 여름 날 의자의 뜨거움, 땀범벅이 된 채 불렀던 가장 좋아하는 응원가는 계속 기억을 맴돈다.


여름이 시작된다. 롯데의 홈구장은 부산이고, 애석하게도 나는 부산에 살지 않아 롯데의 많은 경기를 또 원정팬의 신분으로 보러가야한다. 나는 또 그 지옥불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여름날의 야구장이 주는 그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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