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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꼴빠들이 수원에서 쓴 돈은 얼마일까요?

by 박현경

토요일의 비 소식은 주말에만 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야구팬들 달가워하지 않는다. 프로 스포츠 중에 날씨에 가장 예민한 종목이 있다면 야구일 것이다. 비가 와도 진행하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비가 많이 오면 진행하지 않는다. 간혹 구장에 따라서 경기 시작 전에 비가 많이 오면 그라운드에 물이 빠지지 않아 경기가 취소되기도 한다.


지난주 토요일은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토요일 12시. 나와 동생은 야구를 보기 위해 수원으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금요일 경기가 취소되면서 토요일 2연전으로 재편성이 되었다. 하지만 수원행 버스를 타기도 전에 2시 시작 예정이었던 1차전은 취소가 되었다. 우린 5시 시작인 두 번째 경기만 예매해 둔 상태였고, 그 경기의 진행도 어려울 것만 같았다. 오전까지만 오기로 한 비가 점점 늦게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공식적으로 취소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원을 향했다.


“취소되믄 으짜지?”

“글면 보영만두에서 쫄면 먹고, 정지영 커피에서 커피 한잔하고, 진미통닭 포장해 가는거지.”


취소가 된다고 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수원 사람들 혈관에 피 대신 흐른다는 보영만두의 쫄면 소스. 그 소스에 잘 비빈 쫄면을 군만두에 돌돌 말아 먹어 허기를 달랜다. 그런 다음 지금의 행궁동을 ‘행리단길’로 만든 시작 정지영 커피에서 커피를 마신다. 수원화성을 따라 행리단길이라고 하여 카페와 맛집이 즐비한 거리가 있다고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성곽을 보는 재미가 있을것이다. 배가 남아있다면 통닭을 먹고 아니라면 포장해서 오면 되니까. 계획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수원에 ‘온 김에’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걱정거리는 없었다.


오히려 수원에 도착한 후 생긴 다른 고민거리는 추위였다. 5월의 13도는 추워도 너무 추웠다. 5월이라는 숫자가 주는 느슨함에 두꺼운 옷을 입거나 챙기지 않았다. 패딩을 입은 사람이 부러웠고,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걱정이었다. 우리가 먹어야 할 쫄면도 걱정이었다. 도무지 차가운 면이 먹힐 날씨가 아니었다. 급하게 칼국숫집으로 향했다. 전설의 노포라는 칼국숫집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좌식에,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오는 집이었다. 으어으어 소리가 절로 나왔고 추워서 긴장된 온몸을 녹이기에 딱 맞은 가게였다. 사회적 체면을 생각하며 눕지 못하고 상 밑으로 다리를 뻗으며 몸을 데우고 있는데 익숙한 옷이 가게로 들어온다. 자이언츠의 유니폼이었다. 말은 붙이지 않았지만,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묵묵히 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를 먹고 향한 행리단길에서는 어렵지 않게 롯데 팬들을 찾을 수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야구장 앞 지하철 역까지는 평범한 사람처럼 도착해 야구장앞에서 유니폼을 갈아입는게 아니었던가! 물론 요즘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발견되지만 이렇게까지 많다니. 심지어 그다지 멀진 않지만 행리단길과 야구장은 버스로 5-6정거장 정도 떨어져있어서 매우 가깝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거리였다.

추측해보건데, 모두 다 똑같은 이유로 입고 있는 듯했다. 가지고 있는 옷을 하나라도 입지 않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유니폼을 껴입고, 머플러형 슬로건은 다 목에 묶여있다. 커피를 기다리는 잠깐도 수없이 많은 롯데의 유니폼이 카페에 들어왔다가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나갔다.


어딜가나 잘 먹는 두산 ‘베어스’팬들 만큼 먹지는 못하더라도 롯데 ‘자이언츠’팬인만큼 롯데 팬들도 여기저기서 무언가를 많이 먹고 있었다.


추위는 더 심해져서 결국 야구가 시작하기 전 다이소를 향했다. 담요를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겨울 시즌이 끝난 다이소에서 담요를 찾는 건 어려웠다. 결국 수건만 몇 장 사서 가방에 넣었다. 수건을 사는 동안도 야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계속 들어왔다. 휴지, 물티슈, 방석 등 야구장에 챙겨가면 좋은 물건들을 하나둘씩 손에 쥐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행궁동 장안문 근처 버스정류장. 야구장으로 향하는 버스는 버스마다 사람이 가득했고 바로 앞 택시승강장도 택시가 서는 족족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탔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안내 방송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이 사람들 다 똑같은 곳에서 내릴 것이다.


만약에 야구가 취소되었다고 해도 수원까지 ‘온 김에’ 맛집을 찾아보고 수원에서 뭐라도 하고 가지 바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창원 구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며 창원을 연고지로 하는 ‘NC 다이노스’는 오랜 기간 원정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자체의 관리 소홀로 일어난 사고인데 이 일로 인해 여러 가지 지자체의 갑질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창원 시 의원의 “야구단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다.”라는 말은 야구팬들의 분노를 사게 했다.


수원을 거니는 수없이 많은 롯데 팬을 보며 창원시의원의 말이 생각났다. 작년에 기아가 우승해서 발생한 경제효과가 얼마고, 올해 롯데가 잘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가 된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 이런 효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야구만큼 인기 있는 종목이 아니더라도 ‘원주 농구단’을 검색하면 자동 완성에 ‘근처 카페’가 뜨고, ‘창원 농구장’을 검색하면 ‘맛집’이 뜬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체육관, 농구장, 배구장 모든 검색어 자동 완성에 먹거리가 포함되어 있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쉽게 해결하는 요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프로 스포츠다. 라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대구 실내 체육관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집의 딸이 쓴 글이었다. 대구 실내 체육관의 좌석 수는 3,461석이다. 평일 평균 관중 수 이천 명, 주말 삼천 명. 이 숫자는 자영업자들이 매출을 체감하기에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올해 기준 NC는 평균 관중 16,681명으로 자영업자들의 숨통이 트이기에 충분한 숫자이다. 그리고 NC는 지역 내 주니어 야구단 지원, 수술비 지원 등 지역 사회에 직접적인 사회공헌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산, 창원, 진해가 창원시로 통합되긴 했지만, 창원 자체는 관광에 특화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야구단이 들어오며 야구를 보기 위해 먹고 놀고 자는 것들이 모두 지역을 살리는 일환이다. 수만 명의 야구팬들이 야구를 보기 위해 지역을 넘나든다. 직접 가지 않더라도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기도 한다.


나와 동생이 이날 수원에서 쓴 돈은 티켓값 포함 약 8만 원이다. 우리는 가장 저렴한 자리에 앉았고, 야구장에서 아무것도 사 먹지 않았다. 18,700석의 좌석은 매진이었다. 순수하게 내가 쓴 돈 중심으로 계산하면 이날 위즈파크를 찾은 사람들이 쓴 돈은 약 7억 5천만 원이다. 조금 더 좋은 자리에 앉고, 야구장에서 뭔가를 사 먹었다면 이 금액은 더 올라갈 것이다.


사실 이런 말은 관심을 끌기 위한 일종의 '어그로'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창원의 대응 태도를 보고 있자면 '어그로가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7행시의 편지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쳐가는 사람들은 주변 상인들과 창원에 있는 수없이 많은 야구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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