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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응원

야구장이 지겹지 않은 곳으로 기억되길

by 박현경

이렇게 야구를 자주 보러 갈 생각이 없었는데, 무섭게 치고 올라와 쉽게 떨어지지 않는 팀 순위에 매일 취소표를 노리며 예매 사이트를 어슬렁댄다. 어슬렁대는 사람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닌지 요즘은 취소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럴때면 은밀한 카르텔이 형성된다.


-우리 회사 롯데팬이 오늘 야근한다고 못 간다는데 오늘 야구 보러 갈래? 네이비 2장

-갈래


-외야표 두 장 구했는데 가실래요?

-네


-1루인데, 노래 안 부를 자신 있어요?

-없어요. 근데 상대팀 노래도 다 알아요.


사직에서 롯데를 응원할 땐 다른 팀의 응원가는 잘 알지 못했다. 다른 팀 팬들이 많이 오지도 않고 스피커도 열악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며 내가 응원하는 팀이 원정팀이 되고서야 알았다. 전광판은 홈구단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 팀의 정보가 잘 뜨지 않으며 모든 응원가는 가사를 외워 가야한다. 등장곡도 경기장 가득 울리지 ㅇ낳아 응원단장석에 설치된 스피커의 소리에 맞춰서 직접 불러야한다.


또 하나 알게 된 건, 햇빛의 방향이다. 낮 경기는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쥐약이다. 자리도 따닥따닥 붙어 있는데다가 햇빛이 그대로 내리쬔다. 의자는 열선을 켠 것 처럼 익어있고 야외공간임에도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이럼에도 원정팀 팬들은 야구장을 찾는다. 좋아하는 팀이 잘해서 칭찬을 하기 위해, 못하고 있으니 더 큰 소리로 응원하기 위해서.



지난 경기에서 롯데 선수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이적 이후 롯데에서 큰 활약을 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선수였다. 머리를 향한 공에 야유가 흐르던 경기장은 앰뷸런스의 등장으로 얼어붙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기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올라오지 않았다고한다. 하지만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이 다음 날 오후쯤에 올라오며 비어있던 좌석들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초대권을 나눠주고 남은 좌석이라 자리가 떨어져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비어있어서 같이 앉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판단했지만 경기 두 시간 전, 우리가 표를 받은 자리까지도 모두 예매가 끝난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자리에 앉지 못한 채 경기장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네 시간 내내 서서 응원을 할 요량이었다.

경기장 가장 높은 곳은,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친구들과 자리를 따로 예매한 다음 의자가 없는 곳에 서서 응원을 하는 사람들이 맨 뒷 공간을 채웠다. 응원단상과 멀긴 했지만, 우리도 목청 높여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두 팀 팬들이 섞여 앉아있고, 워낙 가파른 고척구장이라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름 신나게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앞 쪽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맨 뒤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의식을 하고 보니 부모님께 안겨 있는 아기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정도의 아기. 안겨서 뒤를 보고 있는데 뒤에서 춤추고 노래부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기했는지 눈을 떼지 못했다.

게다가 체력은 어찌나 좋은지 경사가 가팔라 절대 어린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는 계단을 왔다갔다하며 놀기 시작했다. 우리를 보기 위해서인지, 체력이 남아돌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와서 놀다가 내려가고를 여러번 반복했다.


그렇게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면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인지상정. 우리의 응원은 그라운드가 아니라 아기를 향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를 때면 아이를 보지 못했지만, 응원동작을 할때면 어깨를 들썩이며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양 옆으로 서서 응원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앞뒤로 서서 한 명씩 얼굴을 빼꼼 내밀며 응원을 했다.


먹으면서도 우리와 눈을 떼지 않았지만 안녕, 이라는 인사는 절대 받아주지 않는 귀여운 아기였다. 그래도 어찌나 순한지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은 야구장에서 칭얼거리지도 않고 두시간 넘게 잘 놀며 야구장을 즐겼다. 꽤 시끄러웠을텐데도 인상 한 번 안 찌푸리는 걸 보니 부모님이 야구장에 한두 번 데리고 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좋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눈을 여러번 마주치며 싫은 기색은 없었던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며 어릴 때 야구장을 갔던 기억이 떠 올랐다. 그래도 난 초등학생때였는데, 여자애가 야구장에 왔다며 주변에서 먹을 것들도 많이 쥐어주고 응원가도 가르쳐줬다. 아쉽게도(?) 파울볼은 받은 적이 없지만, 내가 잡아서 주변의 꼬맹이에게 쥐어 준 적은 있다.


승패의 짜릿함도 좋지만, 이 곳의 즐거움부터 알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그 아이-아이라고 말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였다-를 보며 많이 웃어주고 즐겁게 응원했다. 그 아이에게 오늘은 사진으로만 남아있을 것이고, 우리는 당연히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즐거웠다는 감정만은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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