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커피를 내려 온기 가득한 잔을 손에 쥔 채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오전을 보내고 있을 때면, 지나온 장면이 겹쳐질 때가 있다.
길 위에서 머물렀던 순간들이, 온종일 고민했던 생각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여겼던 어느 날의 위로가 창밖의 햇살 아래로 얼굴을 비춘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가 고요한 시간 위에서 자취를 드러내고, 다시 그날의 길 위로 풍경을 바꿔놓으면 어느새 그때의 공기와 온도,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던 빛의 자리, 말로 꺼내지 않았던 마음들까지도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삶이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느껴졌던 순간들도 지금 내게 주어진 것 위에 겹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 눈앞에 펼쳐진 길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함께 투영하면서 지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매일 지나치던 골목이 조금은 낯설게 보이고, 처음 걸어보는 길이 왠지 익숙하게 느껴질 때 ' 지금 이 길 위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낯섦과 익숙함 모두 현재 내게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고 내 안에 무언가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음을.
어쩌면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는 일 보다도 삶의 많은 장면들을 떠올리며 가장 빛나던 순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더 많이 비교하며 온전히 보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흔들림이 삶에 무수히 겹쳐진 장면이 되어 두터운 문처럼 지금의 삶을 가로막고 있기에 마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마음을 느낀 뒤로 삶을 거니는 걸음은 아주 더디게 이어졌다. 세세히, 지금 내가 바라보는 것들에 머물기 위해.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지금 필요한 마음을 바라보기 위해서.
바쁘게 지나가던 하루 속에서도 아주 짧게 멈춰 서게 되는 시간들. 그저 스쳐 지나가던 장면 앞에서 잠시 시선을 두고 머물게 되는 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그 짧은 순간들이 생각보다 깊게 남아 나의 결을 바꿔놓는다는 것을 삶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작은 머묾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만 계속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잠시 머물러보는 일.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고,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을 그대로 두는 일.
그 시간들이 쌓여 두터운 문이 되지 않도록 조금씩 삶의 방향을 바꾸고,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으로 치환되면서.
이미 지나고 있는 하루 속에서도 조용히 이어지는 삶을 거닐면서 하나의 문장이 마음에 내려앉으면, 다음 나아갈 길을 알게 된다.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도 너무 앞서가려 하지도 않으면서, 지금에 가까이 닿은 장면을 세세히 바라보고 만지며 살아가다 보면 어지러이 겹쳐지던 장면이 마치 퍼즐처럼 하나의 또렷한 장면이 되어 축적되듯이.
그렇게 10대, 20대, 30대의 시간들이 하나의 필름처럼 이어지고 있다. 길을 거닐며 사진처럼 남겨진 장면들이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의 조각으로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걸으며 빛과 어둠도, 나와 나 사이를 비교하지 않는 일도, 꽉 막힌 것 같던 길의 문턱에서 다시 길을 내는 일도 배웠다. 걸으며 나를 사랑하는 일은 그렇게 삶을 사랑하는 일을 온 계절 속에서 깨닫게 한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먼 길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길을 고르던 시간을 지나 어떤 길에서도 주어진 장면을 거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길은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건넨다. 걸으며 마주하는 마음들을 창으로 삼아 두터운 삶의 벽을 뚫고 걸어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