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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북스 Jul 19. 2019

단편 <바지락 봉지> 3화

설재인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 중

본 연재는 카멜북스 소설 <내가 만든 여자들> 중 단편 <바지락 봉지>의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일부 내용을 발췌하였기 때문에 연재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도서 <내가 만든 여자들>에서는 전체 이야기를 자세하게 만날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검사가 끝났다.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라는 간호사의 말에 몸을 일으켰는데 거기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간호사의 얼굴에, 당혹스러움과 미안함이 어른거리는 것을 그녀는 보고야 말았다. 아무것도 듣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지 않을까. 말이 먼저인가 현상이 먼저인가. 현상이 먼저인가 말이 먼저인가. 그녀는 거기 그대로 서 있는 듯했는데, 몸이 쑥 맘대로 들어가 의사 앞에 앉아 버렸다.


죄송합니다.


그게 첫마디였다.





무어라, 병명이 있었다. 열 자도 넘는 병명이 귓바퀴를 흐르다 머리 뒤로 그냥 지나가 버렸다. 원인을 모른다고, 추정만 할 수 있다고 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발생하기 시작한 케이스입니다. 의사는 안경을 벗고 안경알을 닦았다. 양국에 쉰여섯 건 정도…… 보고된 게 다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그녀는 의사의 손목을 잡았다. 선생님. 최대한 성대를 누르려는데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선생님. 누가 그런 말을 믿어요? 선생님. 어떻게 그런 병이 있을 수 있어요? 선생님. 그게 말이 되나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런 병이 어디 있어, 소설이라고 해도 안 믿겠다, 하고 모두 비웃을 거야. 복도를 걸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 아주 오래 전의, 역사서에서만 봤던 일, 그 일 때문에 생긴 희귀병, 그 병에 내 남편이 걸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다는 거……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남편이 이 주 만에 눈을 떴다...


다음 주 월요일, 다음화가 이어집니다.




갑자기 쓰러진 남편의 병명은 생소했습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남편의 병과 관련되어 있다니. 너무 오래전 이야기이고, 심지어 이웃나라의 사고인데 말입니다.


왜 그저 평범한 우리 남편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설재인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



독특한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여성의 이야기들


낮에는 복싱, 저녁에는 암벽을 등반하며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작가 설재인.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 후 교사로 일하다

퇴직하고 무급의 복싱 선수가 된

소설가가 선보이는

여성이 주인공인 12개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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