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스위스(라틴어로 헬베티아이다). 초콜릿과 하이디의 나라. 동화 같은 스위스에서 역사상 많은 위인이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들이 알프스에서 받은 값진 영향과 도움을 살펴보기 위해 2017년 연말연시 열흘 동안의 꿈속으로 돌아간다. 남들은 경제 포럼에 간다지만 난 문화예술 포럼에 다녀왔다
《마의 산》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다보스의 요양원으로 사촌을 문병 온다. 3주일을 계획하고 왔던 한스는 그곳에서 무려 7년을 보내게 된다. 《마의 산》을 읽는 시간은 정말 7년과 같이 ‘눈 깜짝’ 사이에 지나간다. 이런 아이러니가 바로 소설의 핵심을 이룬다. 한스를 다보스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징집영장이다. 그러니까 그가 다보스에서 보낸 시간은 1907년 림스키코프사코프가 세상을 떠나고부터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과 <나이팅게일>을 초연하는, 바로 전쟁 직전 1914년까지에 해당한다. 곧 스트라빈스키가 파리의 총아가 되던 시간과 일치하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 게르트루트와 아르놀트 쇤베르크 부부, 작곡가 데이비드 라스킨
뒷날 스트라빈스키와 토마스 만은 나란히 두 번째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고, 찰리 채플린이 있는 비벌리 힐스 근처에 모여들었다. 세 사람뿐만 아니라 프란츠 베르펠과 알마 말러 부부, 말러의 제자이자 12음 기법의 창시자인 아르놀트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의 선배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 등이 모두 근처에 살았다. 이들이 타지에서 온 예술인이었다면, 토박이로는 월트 디즈니와 조지 거슈윈이 이웃이었다.
자연히 독일인은 독일인끼리, 러시아인은 러시아인끼리 가까울 법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알마-베르펠 서클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토마스 만과 쇤베르크는 소원했다. 만은 오히려 스트라빈스키와 가까운 편이었고, 음렬 음악이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따위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는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사이였다. 그만큼 서로를 의식했다는 말이다. 반면에 채플린과 거슈윈, 쇤베르크는 함께 테니스를 칠 만큼 가까웠다. 이렇게 꼬인 관계의 정점은 위스턴 휴 오든과 에리카 만의 결혼이었다. 오든은 헉슬리의 추천으로 스트라빈스키에게 오페라 <난봉꾼의 행각>의 대본을 써주었다. 에리카는 토마스 만의 장녀이다. 오든과 에리카 모두 동성애자였고, 둘은 합의 결혼만 했지 함께 살지 않았다. 에리카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오는 데에 영국 여권이 필요했기 때문에 맺은 합의였다.
위장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 <그린카드>
어쩌면 이들 모두를 조종하는 ‘마성’의 존재는 월트 디즈니였을지 모른다. 디즈니는 콘서트 장편만화영화 <판타지아>에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따위를 넣고 싶어 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앞서 1920년대에도 <불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러나 <백설공주>의 성공에 이은 <판타지아>의 제안은 흥행에 동물적으로 반응하는 스트라빈스키의 귀를 솔깃하게 했으리라. 그는 이번 인연이 자신의 여우 이야기 <르나르>를 만화로 만들 기회라고 생각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디즈니와 음악감독 레오폴드 스토콥스키가 <봄의 제전>을 공룡시대 이야기로 만든 것이 난센스라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봄의 제전>의 저작권은 당시 미국법으로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에 디즈니는 원작자의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영화 <대부> 방식으로 말하자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던 셈이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양철북>의 말대가리와 함께 가장 쇼킹한 장면. 연소자 노약자 임산부는 보지 마시길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는 일단 빠졌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20세기 말에 <판타지아> 속편이 제작되었을 때 그것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디즈니가 맨 처음 의도했던 <불새>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화마로 잿더미가 된 숲에서 말라가던 물의 요정 스프링 스프라이트에게 아름드리나무와 같은 뿔을 가진 사슴이 다가간다. 사슴의 뿔에 매달린 물의 요정이 흘린 눈물 한 방울이 황야에 떨어지자, 점차 세상은 녹음으로 우거진다. ‘마왕 카셰이의 춤’과 ‘불새의 피날레’가 미키마우징되는 순간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쿵후 판다>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디즈니는 자신의 제국 영토로 몰려온 세계의 재주꾼들에게 발 빠르게 접촉했다. 바로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가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악마와 영혼을 거래하는 뿌리 깊은 중세 ‘파우스트’ 이야기는 토마스 만을 통해 음악가 소설로 거듭난다.
《파우스트 박사》의 주인공 아드리안 레버퀸은 사랑을 포기한 대가로 악마로부터 작곡의 능력을 얻는다. 토마스 만은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음악 자문으로 이 소설을 썼다. 철학자인 아도르노는 쇤베르크의 제자였던 알반 베르크에게 음악을 배우기도 했기 때문에 당대 음악의 동향에 훤했다. 문제는 쇤베르크가 소설의 주인공을 자신으로 오해한 데에서 불거졌다. 곧 자신의 12음 기법이 악마와 거래해서 얻은 것이라고 읽은 것이다.
쇤베르크와 토마스 만은 이 일로 서로 등진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소설의 문제의식은 사실 20세기 모든 작곡가에게 해당된다. 나는 책을 처음 읽으며 깜짝 놀랐다. 아드리안 레버퀸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장면이 너무 낯익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한 하녀 한네에게 노래를 배우는 부분이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민요를 가르치며 그것을 돌림노래로 부르게 했다. 이것이 아드리안이 첫 번째로 경험한 고차원적인 다성음악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1936년에 자서전 《내 삶의 연대기Chronique de ma Vie》를 내놓았다. 첫 기억으로 그는 유년시절 추레한 벙어리 노인이 길에서 저속한 소리를 내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다가 부모에게 혼났던 기억을 말한다. 토마스 만은 스트라빈스키의 이 추억이 자신의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또한 아드리안 레버 퀸은 데뷔 무렵 클롭슈토크의 시에 붙인 <봄의 향연 Die Frühlingsfeyer>이라는 음악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다. 바리톤과 오르간,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독일어 표기는 ‘Die Frühlingsweihe’이다. 토마스 만은 몸의 언어를 위한 <봄의 제전>을 <봄의 향연>이라는 성악곡으로 바꾸어, 아직도 말로 전할 것이 남았음을 이야기한다.
아드리안 레버퀸의 <선택된 인간>은 <봄의 제전>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제목이지만, 그 내용은 그리고루스 교황의 삶을 그린 것이다. 그는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버려졌지만, 뒷날 어머니를 모르고 아내로 맞아 두 번째로 천륜을 거스른다. 토마스 만은 《파우스트 박사》로부터 이 이야기를 독립시켜 별개의 소설로 다시 소개했다. 저주받은 운명의 그리고루스가 용서받고 선택받기까지의 이야기는 자연히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을 떠올리게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곡의 초연 뒤에 아드리안이 서재에서 지인들에게 들려주는 생각이다.
아드리안은 “음악 자체가 구원을 필요로 하는데 오랫동안 음악이 구원의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음악이 종교의 대체물이라는 지위까지 오른 나머지, 이른바 교양 있는 청중과 더불어 고립된 상태를 자초한다. 왜냐하면 그런 청중은 결국 사라질 것이고 음악이 보통 사람과 만나지 못하면 끝에 가서는 고사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술 환경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예술이 스스로 다른 공동체에 봉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고뇌 없는 예술, 정신이 건전하고, 화려하지 않고, 비감하지 않고, 친근감을 주며 보통 사람들과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예술”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곧 한글자막 버전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는 바그너의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모든 시대 음악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바그너가 스트라빈스키의 영원한 ‘안티 히어로’라는 점이다. 스트라빈스키가 ‘하바드 대학 노턴 강의’에서 바그너를 얼마나 적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여행을 마무리하며 다시 돌아보겠다.
성공한 작곡가 아드리안은 또 한 사람 악마의 하수인을 만난다. ‘일류 음악가들의 매니저’를 자칭하는 유대계 폴란드인 사울 피텔베르크이다. 그는 최근에 나온 아드리안의 작품을 눈여겨보고 그와 일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소개했다.
폴란드 피텔베르크 콩쿠르 우승자인 함신익의 최근 공연 실황
한편으로 그는 빈의 한 하늘 아래 살았던 브루크너, 브람스, 볼프의 예를 들어 선택받은 예술가들은 대중 앞에 나서지도, 심지어 그들 상호 간에도 교류를 갖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악마의 하수인은 아드리안 또한 거장들과 같은 반열이라 추켜올리며 자신과 같은 거간은 불필요하다고 짐짓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이런 ‘선택받은 자’에 대한 이야기는 선택받은 두 민족, 유대와 독일에 대한 관계로 확대된다. 프랑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한 역량 때문에 두 민족은 같은 운명이자 라이벌 관계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가리지 않고 떠들고 스스로 비하하기를 오가던 피텔베르크는 마치 그러려고 왔다는 듯이 순순히 물러난다.
개판이군
피텔베르크는 말할 것도 없이 발레 뤼스의 단장 세르게이 댜길레프를 상징한다. ‘피텔베르크’라는 이름도 폴란드 지휘자였던 그제고시 피텔베르크로부터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그는 피에르 몽퇴 뒤에 발레 뤼스의 지휘자가 되어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마브라>를 초연했다. 피텔베르크는 자신이 “댜길레프에 이은 파리의 이인자”라고 말하며 그가 언급하는 동료들, 곧 장 콕토, 레오니드 마신, 마누엘 데 파야야말로 댜길레프 사단의 핵심 멤버들이다. 결국 토마스 만은 피텔베르크와 아드리안의 만남을 통해 스트라빈스키 진영의 속물적인 예술을 비꼼과 동시에 쇤베르크 진영의 고립된 예술관을 꼬집고 있다.
아드리안 레버퀸은 바이올리니스트 친구를 위해 협주곡을 작곡해 준다. 그처럼 자의식이 강한 작곡가가 남이 돋보이도록 협주곡을 써주는 일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악마의 계획이다. 그는 협주곡을 통해 친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부리게 된다. 두 사람은 파울 자허의 초대로 스위스에서 이 협주곡을 연주했다.
또한 협주곡 연주 자리에서 성공한 파리의 디자이너 마리 고도를 만난다. 아드리안은 생애 처음으로 그녀와 진지한 교제를 하고 결혼을 마음먹는다. ‘파리의 성공한 디자이너’라면 바로 샤넬이 아닌가!
이상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에 등장하는 스트라빈스키의 그림자들이다. 그런데 왜 쇤베르크가 발끈했느냐고? 내가 쇤베르크를 연상케 하는 부분은 따로 요약하지 않았으니, 궁금한 분은 책을 읽어보면 된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매우 많다. 심지어 아드리안 레버퀸은 차이콥스키에까지 닿아 있다.
결국 마성의 존재는 디즈니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왔던 모든 인물이 결국은 스스로 인형극의 조정자이자 동시에 인형이다. 세르게이 댜길레프, 파울 자허, 토마스 만, 에른스트 바이엘러, 조지 발란신, 모리스 베자르 그리고 무엇보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사람들이 핵심적인 등장인물이다. 호들러에서 샤갈에 이르는 숫한 회화의 거장들부터 20세기 최고의 무용수였던 니진스키와 누레예프, 그리고 파울 자허를 뒷바라지했다가 버림받은 클라라 몰리나리(실명인지도 모를)까지 줄로 촘촘히 이어진다.
호텔 앞 ‘토마스 만 길Thomas Mann Weg’에서 《마의 산》의 한 구절을 새긴 표지를 보니 이런 생각이 더욱 또렷해진다.
인간은 유일한 존재로서 각자의 삶을 살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알게 모르게 자신의 시대와 시간 공동체를 살아간다.
나는 이런 예술사 인형들을 매단 끈의 가장 말단에 간신히 매달린 거미 같았다. 그러나 순간 그마저 끊고 자유롭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나는 정해진 루트를 이탈했다. 마의 산에서 갑자기 만난 눈폭풍 때문에 환영에 빠지는 한스 카스토르프. 나 또한 갑자기 닥친 겨울 폭풍우 때문에 다보스에 오게 되었고, 마법에 끌리듯 토마스 만의 자취를 되짚었다. 순서대로라면 근처에 있는 샤츠알프 요양소에 가야 한다. 실제 한스 카스토르프가 베란다에 나와 누에고치처럼 담요로 몸을 돌돌 말고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고치를 뚫고 나왔지만 또다시 실에 의지하는 거미인간. 철가면은 그에게 쫄쫄이 수트 없어도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고 허언을...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한스 카스토르프가, 토마스 만이 되어 본 것이다. 물론 프랑스 알프스 상셀모즈 요양원에 머물렀던 스트라빈스키도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토마스 만 길 끝까지 걸어 다보스 플라츠에서 산악열차에 올랐다. 해발 1500미터인 다보스에서 2600미터인 ‘바이스플루요흐Weissfluhjoch’까지 열차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주변의 많은 봉우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마의 산》의 등장인물만큼이나 많은 마의 산들이다. 멈춘 듯한 시간을 뒤로하고 다보스와 이별할 때가 다가온다.
마의 산이 하나가 아니군
올라갈 때는 빈틈없이 만원이었던 열차가 내려올 때는 나 혼자이다. 모두가 스키를 타고 내려갔기 때문이다. 용케 스키 없이 하루를 버틴 나는 결국 작은 예배당 앞에서 제대로 미끄러져 넘어졌다. 스위스 아주머니가 괜찮으냐고 묻는다. 다행히 손바닥에 찰과상을 입은 정도이다. 그제야 알았다. 나도 H처럼 장갑을 잃어버렸구나! 도대체 언제였지? 상처가 제법 깊어 바로 앞 편의점에서 일회용 밴드를 샀다. 응급처치라도 하려고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이번 여행 중 만난 가장 작은 예배당이다. 아마도 키르히너가, 토마스 만이, 한스 카스토르프가 찾곤 했던 곳이리라. 벽에 쓰여 있는 독일어가 나도 읽을 만큼 매우 쉽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 아드리안 레버퀸이 악마에게 줘버린 바로 그것이다. 앉아 있노라니 손바닥의 아픔도 덜해진다. 따뜻한 온기가 감싼다. 다보스에 온 표식이다. 요정의 입맞춤이다.
미술관 옆 극장
나는 7년이 아닌 하루 만에 마의 산에서 돌아왔다. 취리히에서 오후 동안 쿤스트하우스를 돌아보기로 했다. 스위스에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이곳은 25년 만이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찬찬히 정리된다. 루벤스가 그린 <플루토와 페르세포네 앞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에 스트라빈스키의 주요 작품이 녹아 있다. 앙드레 지드의 대본에 붙인 멜로드라마 <페르세포네>와 발란신을 위한 발레 <오르페우스>가 그것이다.
루벤스가 그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터너의 스승 클로드 로랭
클로드 로렝이 그린 <아폴로와 쿠마의 무녀가 있는 해변 풍경>. 뒤에 보이는 원주형 신전에 열두 뮤즈가 있음에 분명하다. 발레 <뮤즈를 거느린 아폴론> 또한 발란신이 안무했고, 코코 샤넬이 의상을 맡았다. 무엇보다 그 낭만적인 음악을 듣는 사람은 곧바로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떠올릴 것이다.
서서 연주해야 제맛인데
25년 전, 오드리 헵번과 루돌프 누레예프가 연달아 저세상으로 간 그 겨울에는 몰랐겠지만 역시 이곳에도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그림이 많다. 곧바로 스트라빈스키 발레의 배경으로 써도 되겠다. 세간티니의 목가적인 풍경화는 이미 앞서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소개할 때 사용했다.
앞서 몇 번을 얘기했던, 코로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프랑스 회화 특별전’을 위해 휴스턴에서 날아온 곳이 바로 여기이다. 그 또한 휴스턴의 석유 재벌이 미술관에 기탁한 것이다. 시슬리가 그린 풍경화 속 농부가 악마의 약속을 믿고 공짜 땅을 확보하러 길을 가는 바홈처럼 보인다. 이것으로 이틀 간의 ‘마의 산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