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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Nov 07. 2019

토리노의 성배 순례

수페르가 성당, 국립 영화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멀고 먼 옛날 토리노의 부활절에 있었던 일이다


동양 남자가 토리노로 간다고 하자 현지 사람들도 사업차 가는 것이냐고 묻는다. 여행이 일의 일부이니 사업이 맞긴 하다. 그만큼 관광객이 가는 도시는 아니다. 과연 토리노는 뜨내기가 별로 없는 비교적 조용한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자동차 피아트와 알파 로메오, 란치아의 본사가 여기 있다. 그런 경제력과 알프스의 자연을 배경으로 2006년 동계 올림픽도 치렀다. 월드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벤투스 축구팀에 온 뒤로 한국 관광객도 느는 추세이다. 토리노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래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가 난립했다. 중앙의 교황령, 그 아래로는 나폴리 왕국이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토스카나는 피렌체 중심의 공국이었고 밀라노도 같은 지위였다.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베네치아는 공화국이었다.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완수한 사람은 북부 사르데냐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였다.

위가 사보이아, 아래가 사르데냐, 프랑스도 아니고 이탈리아도 아니고, 섬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르데냐 왕국의 전신은 사보이아(영국은 사보이, 프랑스는 사부아라고 부른다) 공국이다. 사보이아는 15세기 이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사이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궁전들을 보면 프랑스나 오스트리아가 부럽지 않을 만하다. 실제로 토리노 사람들은 베르사유나 쇤브룬과 같은 궁전을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도심의 왕궁과 시 외곽의 베나리아 궁전, 스투피니지 사냥 궁전 모두 그 못지않은 규모이기 때문이다.


사보이아가 배출한 가장 걸출한 인물은 외젠 공(1663-1736)이다. 어머니가 프랑스 재상 마자랭의 조카였던 외젠은 파리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야심이 커서 루이 14세의 왕비가 되려 했지만 실패한 뒤 국왕 독살 음모에까지 연루된다. 때문에 군인으로 프랑스에서 성공하려던 외젠의 꿈은 벽에 부딪힌다.


외젠은 프랑스의 라이벌 합스부르크로 갔다. 마침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을 받던 황제는 먼 친척이던 외젠을 반갑게 맞았다. 외젠은 전과로 보답했고, 그의 이름은 오스만 튀르크에게는 공포를, 서유럽에는 승리를 뜻했다.

빈의 영웅광장에 있는 외젠 공의 기마상. 우리로 치면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이다

뒷날 외젠은 자신을 거부했던 루이 14세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에 쓴맛을 보인 것이다. 특히 모국 사보이아 공국의 독립을 놓고 토리노에서 벌어진 전투(1706년)에서 승리하며 6촌인 빅토르 아마데우스 2세 대공을 사르데냐 왕으로 만들었다. 뒷날 통일 이탈리아의 초석을 놓은 셈이다.


외젠의 전승을 상징하는 두 개의 유명한 건축물이 있다. 먼저 빈의 벨베데레 궁전이 바로 황제가 내린 상이다. 클림트의 <입맞춤Der Kuss>을 비롯한 분리파 화가들의 걸작을 소장한 명소이다. 오스트리아의 턱밑까지 침범한 오스만튀르크를 외젠이 무찌른 덕분에 서유럽이 안전할 수 있었다. 그의 무공이 비단 합스부르크뿐만 아니라 전 독일어권에 자자했음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북유럽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이던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이 1738년에 쓴 <함장음악Kapitänsmusik> 가운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음반이 딱 한 종인데, 유튜브에 없어서 내가 올려야 한다.. 바빠서 가사만..) 

독수리가 군대를 이끈다
이스탄불의 끔찍한 문 앞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다
터키를 폐허로 만들 칼이다
외젠의 정신이 우리 앞에 있다 

<함장 음악>은 무역도시로 해군을 중시했던 함부르크가 매년 군창설일을 기념해 갖던 행사를 위해 쓴 곡이다. 아직 ‘국민’과 ‘민족’이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던 시절, 어쩌면 외젠이라는 국제적인 인물이 그 씨앗이 된 건 아닐까?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서명할 때 ‘에우제니오 폰 사보이Eugenio von Savoy’라고 적었다. 에우제니오는 이탈리아 이름, 폰은 독일어 전치사, 사보이는 영어식 표기이다.

벨베데레 궁전, 저기 나도 있다, 빨간 모자

외젠 공을 기념하는 또 하나의 건물은 토리노 수페르가 언덕의 전승기념 성당이다. 남산 높이 산 정상에 범상치 않은 돔이 보인다. 이곳의 푸니쿨라를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열차와 비교한 어느 블로거는 좀 과했다. 내보기엔 남산 케이블카 정도이다. 병풍 같은 알프스를 뒤로 하고 포 강이 흐르는 토리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위험 성당'의 풍모 아닌가?

열차에서 내려 성당까지 가는 길은 동안 마치 성배 기사들의 순례 행렬이라도 만날 듯한 고즈넉하다. 독일 화가 한스 토마(Hans Thoma, 1839-1924)가 그린 <성배 성 Die Gralsburg>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오늘 저녁에 그 순례를 간접 체험할 것이다.

개인 소장이라 아무나 볼 수 없다. 성배 전설을 믿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저기 빨간 망토가 나다.

토리노 왕립 극장은 푸치니가 <라 보엠>을 초연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찾았던 부활절 기간은 오페라가 쉬어가는 때이다. 다행히 이탈리아 공영 방송(RAI)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있다. 오페라 극장에서 멀지 않은 콘서트홀은 지금까지 내가 본 전 세계 공연장 중 가장 볼품없었다. 이곳이 이탈리아 최고의 라디오 교향악단이 상주하는 곳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런 면이 성배 음악을 듣기에 알맞아 보이기도 한다. 인디애나 존스가 성배를 고를 때도 가장 허름한 잔을 고르지 않았던가! 또한 이탈리아가 오페라 아닌 교향악단에게 큰돈을 쓰는 것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 남산자락에 스모 경기장 짓는 격이다.

아우디토리움과 몰레 안토넬리아나

저녁때까지 근처를 둘러본다. 음악당 뒤의 높은 첨탑이 토리노의 랜드마크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이다. 원래 꼭대기 전망대가 인기이지만, 줄만 두 시간은 서야 한다. 이미 수페르가를 한적하게 돌아본 나는 지층의 토리노 국립 영화 박물관(Museo Nazionale del Cinema)만 보아도 충분하다. 이탈리아야말로 ‘시네마 천국'의 나라 아닌가! 굳이 토리노나 이탈리아와 관련 없는 영화라도 여기 자료는 충분히 관객을 추억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유성영화의 탄생을 알린 두 작품 <재즈싱어The jazz singer>와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는 진짜 클래식이다. 알 졸슨이 “지금까지는 들은 것이 아닙니다Ain't Heard Nothin' Yet"라고 말한 순간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가 활동하던 뉴욕 이디시(Yiddish, 동유럽 유대어) 극장의 극장장 보리스 토마솁스키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할아버지이다.

툿시!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데비 레이놀즈는 진 헤이건을 더빙한다. 그런데 정작 ‘우 듀Would you’를 녹음하는 장면에서 데비의 목소리는 다시 베티 노예스라는 가수가 더빙했다. 데비보다는 베티의 음성이 좀 더 윤택하지만, 데비의 장점은 풋풋함 아니던가. 어떤 유튜버가 오리지널을 올렸다.

베티 노예스가 더빙하기 전 데비 레이놀즈의 노래

더 기막힌 건, 내내 비웃음을 사는 진 헤이건의 목소리이다. 데비가 더빙한 것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실제 헤이건의 목소리이다. 내내 진성을 숨기고 웃음거리를 자청한 것이다.

지긋한 저음의 헤이건이 째지는 소리를 열연한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서 첫 무도회를 경험했는데, 또 처음이라고 속이고 왕실 무도회에 가는 일라이자 둘리틀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헵번도 같은 신세이다. ‘밤새도록 춤출 수 있다’는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원래 목소리는 이미 밤새도록 춤추고 돌아온 것처럼 들린다.


https://youtu.be/5KGMA-ghPUA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 - Audrey Hepburn 's own voice)


이 이야기를 다 하려면 마니 닉슨(Marni Nixon)이라는 목소리 대역 배우를 소개해야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가는 곳마다 이런 자료들을 보여주며 신나게 떠드는데, 가끔 그런 뒷이야기(사실 이건 뒷이야기가 아니라 인형극 이론의 주제이다)가 있냐고 신기해하는 분도 있지만, 대개는 그런 영화가 있냐는 반응이 더 많다. 하물며 클래식 음악이야!


몰레 안토넬리아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집트 박물관(Museo Egizio)이 있다. 이곳은 이집트 밖의 이집트 박물관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그러나 소장품이나 전시관 크기보다는 개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피라미드까지는 아니겠지만 거대 석상이라도 볼 줄 알았던 나는 솔직히 좀 실망했다. 그래도 몇 층 높이로 걸린 나일강 유역의 지도를 보니 저 아래 사막 어딘가에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추락한 비행기와 주인공 라즐로 알마시가 발견한 <수영하는 사람들>의 벽화가 있을 것만 같다.

삼각주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드는 나일강

반갑게도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 1790-1832)도 이곳 파피루스 연구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내가 오래전 읽은, 이 나폴레옹 비슷한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샹폴리옹은 처음 이집트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자기가 살던 곳에 돌아온 듯이 일행을 안내했다고 한다. 일본에 가본 적 없는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은 하물며 나 같은 사람도 종종 현지인보다 아는 것이 많을 때가 있는 ‘덕후 보편화' 시대이다. 웅크린 미라의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준 모양이다.

이집트 하면 떠올릴 음악은 하나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니까!

<마술피리>의 시공간 배경은 고대 이집트이다. 모차르트는 터키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았지만, 아직 이집트까지 관심이 미칠 때는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모차르트 사후에 이뤄진다. 때문에 모차르트의 이집트는 보편적인 시대를 지향한다. 더욱이 고대가 시간적인 배경 아닌가? <스타워즈>를 여는 설정, “멀고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서는"과 같은 의미이다. <마술피리> 가운데 현인 자라스트로(조로아스터)가 노래한다.

오,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이시여
새로 맺어진 한 쌍에게 지혜를 주소서!
정처 없는 발걸음을 이끄시고
위기에서 인내하는 힘을 주소서!

노력한 결실을 보게 하소서
그들이 무덤을 향해야 한다면
철없이 행한 용기를 가상하게 여기어
높으신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코르넬리우스 하우프트만 노래

고대 이집트의 신왕 오시리스는 여동생 이시스를 아내로 맞는다. 농경의 신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오시리스를 질투한 동생 세트(Seth)는 형을 산 채로 관에 넣어 죽인다. 이시스가 관에서 나온 나무와 관계하여 호루스를 낳았다. 관을 발견한 세트는 그것을 열세 토막 내어 나일 강에 던져 버렸는데, 이시스가 그것을 모두 찾아 부활시켰다. 이시스는 물고기가 먹어버린 오시리스의 생식기를 흙으로 빚어 대체한다. 오시리스의 남근은 오벨리스크로 대체되어 하늘과 땅이 교통 하는 매개가 된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에 태어난 호루스가 세트를 이기고 뒤를 잇는다.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으로 추앙받는다.

샹폴리옹은 이런 그림을 보고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이야기를 밝혀냈으니...

영화 박물관과 이집트 박물관을 보는 사이 저녁이 되었다. 이제 성배의 순례 차례이다. 미국 출신 음악감독 제임스 콘론이 RAI 음악당 무대에 선다. 나는 콘론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그는 천편일률적인 레퍼토리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대신 숨은 걸작을 알리는 데 매진하는 지휘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바그너의 <파르지팔> 가운데 관현악과 <탄호이저> 서곡,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러시아 부활제 서곡>을 연주했다. 시의적절한 음악 아닌가! 얼마 뒤 피렌체 5월 음악제 때는 마르티누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 레스피기의 <보티첼리 삼부작>,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할 예정이다. 르네상스 예술의 본고장을 음악으로 환기할 선곡이다.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한 <마술피리> 가운데 병사를 위로하는 장교로 깜짝 출연한 제임스 콘론

콘론은 <파르지팔> 연주에 앞서 그리스도 수난 전야에 듣는 엄숙한 음악이니 박수를 삼가 달라고 청했다. 바그너 최후의 작품 <파르지팔>은 사악한 마법사에게 당해 불치 불모의 상처를 입은 성배의 왕과 그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성혈(聖血)을 받은 성배(聖盃)의 힘으로 치유된다는 이야기이다. 마법사를 이기고 성배를 되찾아 오는 사람은 어리숙하고 순진한 기사 파르지팔이다.

이 안에 타미노와 파파게노, 파르지팔과 구르네만츠, 스카이워커와 오비완까지 다 들어 있다

때 묻지 않은 파르지팔은 기사장에게 묻는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멀리 왔네요?” 기사장은 “이곳은 시간이 곧 공간인 곳이다”라고 답한다.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전 3막에서 가져온 관현악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 데 50분이 걸렸다. 그 눈 깜짝할 사이에 허름한 공연장은 성배의 전당이 되었다. 낮에 본 수페르가 성당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공했다.

<파르지팔> 가운데 이른바 전환의 음악이다

사실 토리노 음악당은 거드름 피우는 허세꾼을 모을 것이 아니라면 굳이 다시 지을 필요 없을 정도로 음향도 별 문제없었다. 잔잔한 감동을 방해하는 박수도 나오지 않았다. 손흥민과 호날두 출전 챔피언스리그 8강전 날 누가 바그너와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들으러 가겠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한 번 더 들어야 한다! 이 곡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러시아 영주권이라도 줘야 하지 않나?

이른바 ‘인생 샷’을 찍으려는 물결로 몇 시간 줄을 서야 하는 다른 이탈리아 관광지에 비하면, 토리노는 붐빌 게 없는 곳이다. 수페르가에 오르는 푸니쿨라도 다 차지 않았고, 나 말고 돔 전망대에 오른 다른 사람은 동유럽에서 온 할머니와 손녀뿐이었다.

시골 강당 같은 수준이지만, 프랭크 스텔라의 캔버스 닮은 저 파이프오르간이 마술피리나 다름없다

만일 토리노 음악당이 여느 유럽 공연장이나 서울처럼 화려했더라면 나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 또한 니체가 비판한 바그너의 맹목적인 추종자 가운데 하나가 되었더라면 말이다. 예술을 과시와 겉치레의 도구로 삼는 것이야말로 가장 저급하고 볼썽사나운 일이다. 속물에 누구보다 환멸을 느낀 니체가 1889년 쓰러진 곳이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이다. 채찍질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니체는 그로부터 11년을 요양원에서 보내다가 쓸쓸히 최후를 맞는다. 내일은 그곳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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