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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20. 2020

대문 옆에 흔들리는 소나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불새> 가운데 가장 유명한 ‘피날레’는 민속 선율에서 온 것이다. 1850년대 중반에 콘스탄틴 빌보아Konstantin Vilboa는 시인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와 함께 볼가강 유역에서 민요를 채록했다. 빌보아는 이를 1860년에 『100개의 러시아 민요Sto russkikh narodnykh pesen』라는 책으로 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도 1879년 이를 토대로 민요집을 냈는데, 그 가운데 ‘대문 옆에 흔들리는 소나무U vorot sosna raskachalasya’라는 노래가 있었다.


나는 이 노래를 글이나 악보로만 보았지, 실제로 들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2019년에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Valentina Lisitsa가 낸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전곡집에서 이 곡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알렉세이 쿠즈네초프와 이중주
저것은 해가 아니다, 달이다

<50개의 러시아 민요> 가운데 8번이 바로 이 곡이었다. 더욱이 이 민요집은 1869년에 유르겐손Pyotr Jurgenson이 출판했으니 림스키코르사코프보다 10년이나 앞선다. 스트라빈스키가 정확히 어느 판본을 참조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러시아 민중에게 사랑받았던 곡조일 것이다.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정문 앞에 선 소나무들이 이런 것 아닐까? 남산 위의 저 소나무와는 생김새도 크기도 다른 러시아 소나무이다.

지루하면 11분 50초부터.. 호른이 소나무를 그린다

2018년 런던 트래펄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선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새로 맡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독일 자동차 회사가 후원한 연례 콘서트를 가졌다. 불새의 광채라도 가리기 위한 것인지 단원들은 선글라스를 썼다.

이 건물도 화재로 지붕이 탔었지

래틀의 후임으로 키릴 페트렌코와 새롭게 시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도,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구스타프 두다멜이 지휘하는 LA 필하모닉도 <불새>로 2019-2020 시즌 예고 영상을 올렸다.

영감님이 알을 품으시나

여러 <불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디즈니의 <판타지아 2000> 피날레이다. 제임스 러바인이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의 연주에 디즈니가 준비한 그림 인형극은 화산 폭발과 물의 요정 이야기이다. 자연재해가 대지에 미친 영향을 그린 것이지만, 보는 사람은 환경에 대한 경각심으로 시야를 확대하게 된다. 물의 요정이 메마른 땅에 흘린 눈물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숲을 이루는 장관에 스트라빈스키 아니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소나무’가 말 그대로 총천연색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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