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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un 28. 2020

결투와 자유의지

차이콥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4)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오네긴의 친구 푸시킨이 그의 곁에서 지켜본 내용을 회고한다. 첫머리에서 푸시킨은 독자를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친구’라 부른다. 푸시킨의 출세작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미하일 글린카가 오페라로 썼다. 제대로 된 러시아 오페라의 출발이다. 『루슬란과 류드밀라』에서 호메로스를 모델로 삼았던 푸시킨은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당대의 아이콘 바이런과 경쟁한다. 영국 태생의 시인 바이런은 해럴드 공자, 돈 환, 만프레드, 마제파라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지배층의 위선을 비웃고, 개인의 자유를 찬양하며, 시대의 우울을 아파했고, 무정부적인 호연지기를 추구했던 낭만주의자였다.


푸시킨과 예브게니 오네긴의 관계는 바이런과 그가 만든 인물 사이의 관계와 같다. 차이콥스키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니, 글린카의 성과를 뛰어넘는 것과 푸시킨과 한배를 타는 것이었다.

볼쇼이의 현대적인 연출이 맘에 든다

글린카는 그 유명한 로시니 류의 서곡으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시작하고, 곧바로 음유시인을 등장시킨다. 그는 주인공의 결혼식에서 앞날을 축복하고, 신화와 역사 너머의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들이는 이야기꾼이다. 서곡에 엿보인 이탈리아풍을 완전히 씻어버리는 러시아의 기운이다. 차이콥스키는 요란한 서곡 없이 간단한 전주로 막을 올린 뒤에 곧바로 자매의 노래를 시작한다. 어머니와 유모는 자신들이 젊었을 때 부르던 노래를 딸들이 똑같이 부르는 것을 들으며 격세지감이 든다. ‘인생유전’의 대화는 글린카가 늙은 음유시인에게 맡긴 역할을 대신하며, 19세기 초 러시아라는 배경을 초 시대적으로 만든다.


차이콥스키는 <예브게니 오네긴> 뒤로 푸시킨의 역사시 『폴타바』를 오페라 <마제파>로,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을 역시 동명 오페라로 만든다. 더욱이 그는 번호 없는 교향곡 <만프레트>로 푸시킨의 영웅, 바이런의 또 다른 주인공을 그렸다. 차이콥스키는 푸시킨, 바이런과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푸시킨 최후의 서재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결투로 헛되이 목숨을 잃는 렌스키처럼, 푸시킨도 똑같이 결투로 이생과 작별한다. 렌스키가 올가의 장난스러운 바람기와 오네긴의 모욕을 참을 수 없었듯이, 푸시킨도 아름다운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프랑스 장교 당테스 사이의 염문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푸시킨은 나탈리아와 결혼하기 전 사귄 여성 수만큼, 결투도 숱하게 치렀다.

누군지 참 잘 만들었다

『예브게니 오네긴』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이르기까지 결투는 문학 작품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제정 러시아 시대에 만연한 결투는 결코 악습이거나 무모한 기사도의 남용이 아니었다. 무도회가 양식화한 짝짓기이자 공인된 일탈의 배출구였던 것처럼 결투도 공동체의 명예를 관리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결투는 불필요한 유혈 충돌을 조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모스크바 푸시킨 박물관

푸시킨은 키시나우에서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스타로프 대령과 결투를 벌였다. 한 발씩 주고받은 총탄은 두 사람을 모두 비껴갔지만, 애당초 복수가 아닌 명예회복이 목적이었다. 두 사람은 결투의 의례를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서로의 인품을 인정했고, 스타로프는 푸시킨이 문학적인 재능만큼이나 총알을 피하지 않는 용기도 빠지지 않는 신사라고 치하했다. 화해는 이뤄졌다. 며칠 뒤 결투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스타로프를 깎아내리자, 푸시킨은 대령에 대한 모욕은 곧 자신에 대한 모욕이니 모두 대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려고 한 결투 같다.


유리 로트만은 『러시아 문화에 관한 담론』에서 이 실화와 『예브게니 오네긴』의 결투를 꼼꼼히 비교한다. 오네긴은 자신 때문에 화가 난 친구 렌스키의 충동적인 결투 신청을 피할 수 있었고, 또 피하려 했다. 다만 두 사람은 피에 굶주린 결투광의 손에 놀아났을 뿐이다. 렌스키는 마을의 한량인 자레츠키라는 입회인을 택했다. 자레츠키는 오네긴에게 결투 의사를 전하며 관례대로 화해를 청해야 했지만, 집안일이 바쁘다며 그러지 않았다. 오네긴은 결투 당일 1시간 늦게 도착했다. 원래 15분을 넘기면 결투 의사가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는 자레츠키와 같은 신분의 입회인이 아닌 자기 하인을 데려갔다. 역시 자레츠키로서는 의식을 거부할 충분한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괘념치 않고 저승사자 역할에 충실했다.


차이콥스키는 파티를 망친 다음 날 올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렌스키를 걱정하는 장면을 뺐다. 그러나 자레츠키에게 필요한 대사는 모두 주었다. 그는 오네긴이 늦는 것을 기다리고, 신분에 맞지 않는 상대방 입회인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 사이 렌스키는 오페라에서 ‘편지의 장면’ 다음으로 유명한 ‘어디로, 어디로 사라진 걸까’를 부른다. 쿠다, 쿠다...

오네긴 네가 왜 벌써 나와? 아직 도착 전이라야 한다

그러나 렌스키의 죽음이 자레츠키의 농간 때문이었을까? 오네긴은 마지막 순간 왜 총알을 제대로 쏘았을까? 그나 렌스키 모두 밤새 바보 같은 운명의 장난에 대해 고민하고 피하려 했지만, 정작 사선에서 그것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총알은 각자 두 발씩이며, 늘 두 사람이 선의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푸시킨 자신이 마지막 결투에서 복부 관통상을 입었고, 이틀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죽었다.

푸시킨이 결투에서 썼던 권총

무도회와 결투의 공통점은 바이런이 추구했고 푸시킨이 열광했던 ‘자유의지’의 실현이다. 문제는 둘 다 무대에 서는 순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당사자의 자유연애를 장려하는 듯한 무도회는 결국 신분과 경제력의 거래였고, 공동체의 명예를 유지하는 장치였던 결투 또한 그것이 자유의지에 맡겨진 순간 자기 뜻과 다른 결과를 낳았다. 푸시킨이 타티아나의 편지를 번역하며 <마탄의 사수>를 들먹일 때부터 알아봤다. 총알은 쏜 사람의 의지대로 날아가지 않는다. 렌스키가 올가와 체스를 두며 자기 말을 잡는 오수를 둘 때 그의 운명은 결정 난 것이다.

사냥꾼은 물방앗간의 적

만년의 차이콥스키가 동성애를 심판하는 명예 법정으로부터 자살을 강요당했다는 설이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심경도 오네긴이나 렌스키와 똑같은 것이었으리라. 죽지 않고 불명예를 안고 살거나,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다시, 정말 자살로 알려지도록 하는 방법과 콜레라로 알려지도록 은폐하는 방법이 있었다. 모두가 가정일 뿐이나 어느 쪽이더라도 결국은 운명의 카드에 맡긴 신세였다. 차이콥스키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택할 때부터 <스페이드의 여왕>을 쓸 운명이었던 셈이다. 푸시킨이 렌스키처럼 죽을 운명이었던 것처럼...

로스트로포비치 비시넵스키야 음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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