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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ug 28. 2020

욜란타, 어두움에 빛을...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은 1890년 차이콥스키의 나이 50세에 초연되었다. 게르만과 리자를 부른 성악가는 니콜라이 피그네르와 메데아 피그네르 부부였다. 각각 33세와 31세였던 부부는 차이콥스키와 매우 가까웠다. 카잔 가까이에서 태어난 니콜라이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고, 보로딘의 <이고르 공>, 다르고미시스키의 <루살카>, 루빈스타인의 <데몬>의 주역으로 노래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메데아 또한 16세에 베르디의 <레퀴엠> 독창을 부를 정도로 조숙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188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처음 왔고, 곧 차이콥스키가 아끼는 목소리가 된다.

니콜라이, 메데아와 함께 한 차이콥스키

<스페이드의 여왕> 초연 무렵 임신한 메데아가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자, 남편 니콜라이도 대역과는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피그네르 부부가 돌아올 때까지 오페라를 중지할 정도로 작곡가는 이들을 신뢰했다.


차이콥스키는 두 사람을 위해 다음 오페라를 준비했다. 90분가량의 짧은 <욜란타>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한날 상연할 작품으로 구상되었다. <스페이드의 여왕>에 이어 동생 모데스트가 대본을 맡았다. 원작은 덴마크 극작가 헨리크 헤르츠가 1845년에 쓴 희곡 <르네 왕의 딸Kong Renés Datter>이다.

1913년 무성영화 <르네 왕의 딸>. 정말 없는 게 없구나!
배경은 중세 프로방스 깊은 산골의 비밀 정원. 그곳을 지키는 베르트랑은 기사 알메리크에게 국왕의 딸 욜란타가 은둔한 이곳에 아무도 들여서는 안 된다고 명한다. 공주는 앞을 못 보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가까운 몇 사람뿐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빛과 색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아서 욜란타도 자신이 공주이고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아기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이래 무어인 의사 이븐 자히아가 곁에서 돌봐 왔다. 가진 재주를 동원해 이븐 자히아는 그녀가 16세에 눈을 다시 뜰 것이라 예언한다. 욜란타는 보드몽 백작 트리스탄과 정혼한 사이이나, 트리스탄은 그녀가 맹인임을 모른다. 막 16세가 지난 욜란타는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시와 음악에 젖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알메리크가 베르트랑에게 왕과 의사가 곧 도착할 것이며, 트리스탄 백작도 혼례를 위해 오는 중이라 알린다.

르네 왕과 이븐 자히아가 도착했다. 의사는 왕에게, 욜란타가 낫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맹인이라는 것과, 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왕은 딸이 불행해질까 두려워한다. 의사는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시력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왕은 고뇌하고 의사는 부적으로 공주를 재워둔다.

트리스탄이 친구 조프리 경과 도착한다. 트리스탄은 만나보지도 못한 여인과 결혼하기는 싫다고 말한다. 그는 그저 의무로 여기 왔을 뿐이다. 두 사람은 정원의 신비에 끌리고 트리스탄은 잠든 욜란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트리스탄이 부적을 떼자 공주는 잠에서 깬다. 욜란타는 낯선 손님에게 마실 것을 대접하며, 세 사람은 즐겁게 노래한다. 조프리가 계곡에 수비대를 배치하러 나가자 트리스탄과 욜란타는 얘기를 나눈다. 트리스탄은 그녀가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맹인임을 안다. 그는 빛과 색에 대해 설명하지만 욜란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가 청혼하겠다고 말하고 떠난다.

욜란타는 베르트랑에게 손님에게 들은 이야기 탓에 혼란스럽다고 털어놓는다. 왕과 의사가 도착해 공주에게 앞을 못 본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주자, 그녀는 넋을 잃는다. 의사는 그녀가 곧 치료될 것이라 말하고 데려간다. 알메리크가 트리스탄의 편지를 가져온다. 진실한 사랑을 찾았기 때문에 욜란타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르네 왕이 당황했을 때 트리스탄과 조프리가 도착해 왕을 찾는다. 트리스탄은 그에게 이 정원에 사는 아가씨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왕은 그녀가 자신의 딸이자 트리스탄의 약혼녀 욜란타라고 설명한다. 의사가 시력을 찾은 욜란타를 데려온다. 행복한 결말이다.

헤르츠 희곡의 주인공은 15세기 로렌의 실제 인물 욜랑드 공비이다. 앙주 공의 딸이던 그녀는 보드몽 백작과 결혼해 로렌 지방을 상속한다. 그녀가 비밀의 화원 속 잠자는 공주라는 설정이 희곡의 내용이다.

요술공주 샐리 친구 봉순이 닮은 욜랑드 공비

차이콥스키와 동생 모데스트는 마지막이 될 오페라 <욜란타>를 통해 <오를레앙의 처녀>의 무대였던 프로방스로 돌아갔다. 1431년 19세의 잔 다르크가 화형대 위에서 삶을 마감했을 때 로렌의 욜랑드 공주는 두 살이 채 못 되었다. 충격에 눈이 멀었던 것은 아닐까? 형제는 <스페이드의 여왕>에 이어 다시 원작에 과감하게 손을 댔다.

욜란타의 처지와 시력 회복의 조건은 그대로이다. 무엇보다 그녀와 맺어질 보드몽 백작은 애초에 정혼한 사이가 아니었다. 르네 왕은 딸을 숨겨둔 숲 속 비밀의 정원에 침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를 써두었다.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와 그의 친구 보드몽 백작이 도착한다. 오페라에서 욜란타의 정혼자는 로베르이다. 그러나 로베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욜란타가 아닌 마틸드를 사랑한다. 왕이 써 둔 경고를 떠올린 로베르는 친구를 둔 채 친위 군대를 데리러 간다. 그 사이 보드몽은 욜란타의 아름다움에 반하며, 욜란타도 처음 맞는 손님에게 호감을 갖는다. 보드몽에게 빛과 색에 대해 처음 들은 욜란타는 자신도 꼭 그것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사이 돌아온 왕은 딸이 금지된 비밀을 안 것을 보고 당황한다. 왕은 딸에게 의사의 치료를 받겠느냐고 말한다. 그녀는 꼭 보고 싶다고 청한다. 의사가 그 정도로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왕은 만일 공주가 눈을 뜨지 못하면 보드몽은 죽은 목숨이라고 선언한다. 욜란타는 너무 가혹하다며 반드시 낫겠다고 맹세한다. 공주가 치료받는 동안 보드몽은 왕에게 청혼을 넣는다. 그러나 왕은 정혼자가 이미 있다고 거절한다. 그때 군대를 거느린 로베르가 돌아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마틸드이니 욜란타와의 약혼을 취소해 달라 청한다. 왕이 마다할 까닭이 없다. 치료를 마친 욜란타는 처음 보는 왕과 연인의 얼굴을 목소리로 구분한다. 모두 감사의 합창을 한다.

언뜻 보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나 <백설공주> 류의 뻔한 줄거리인 듯하지만, 차이콥스키 형제는 여기에 정교한 인과 관계를 주입했다. 단순한 예언이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목숨이라도 걸 진정한 사랑만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고 보면 전작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푸시킨의 원작을 훼손해가며 두 주인공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로 만든 까닭을 이해할 만하다.

<스페이드의 여왕>이 <돈 조반니>를 예찬했다면 <욜란타>는 <마술피리>와 상통한다. 순수한 사랑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되찾는다는 믿음이야말로 계몽주의의 핵심이다. 도입부가 끝나고 막이 오르면 욜란타와 유모의 대화에서 차이콥스키는 현악 앙상블을 등장시킨다.

네트렙코 전에는 갈리나 고르차코바였다

그는 마침 이 부분과 동시에 현악 육중주 <피첸체의 추억>을 작곡했다. 두 곡이 같은 느낌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추억하며

오페라 속 현악 앙상블은 뒷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카프리치오> 육중주 서곡에서 이어받았다. 

피렌체의 그림을 모사한 배경 앞에서

욜란타는 자신을 측은히 여긴 유모가 우는 것을 알고는 눈이란 눈물을 흘리기 위해만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녀는 애초에 눈의 기능이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여자 ‘파르지팔’인 셈이다. 또한 그녀는 손이 미치는 세상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이콥스키의 또 다른 영웅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을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 가운데 무인도에서 태어나 사람이라고는 아버지밖에 모르고 자란 미란다가 그녀이다.

의상은 하녀인데, 모든 역할을 소화하심

시작부터 이런 신파이면 곤란하다. 차이콥스키는 얼른 분위기를 바꾼다. 유모와 시녀들은 자장가를 불러주며 온갖 들풀을 찬양한다. <예브게니 오네긴>의 타티아나가 돈 강가에서 <오를레앙의 처녀>의 잔이 로렌에서 사랑했던 바로 그 자연이다.

미나리아재비와 수레국화를 가져왔어요. 미모사와 장미, 패랭이도요, 은방울꽃과 은은한 봄의 백합, 향기 그득한 재스민도 받으세요.
노래에 언급된 꽃들
십자군 원정 막바지에 알라를 찬양하는 의사가 프로방스에 왔다. <곡성> 느낌
- 눈만 뜨게 해달랑께요 - 돈이 중헌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은 여성이지만, 오페라의 비중은 남성이 압도적이다. 아버지 르네 왕의 아리오소는 처연한 러시아 민요처럼 들린다. 마치 오래전 프로방스가 러시아 땅이었다가 잃기라도 한 것처럼 동토의 감수성으로 앞 못 보는 딸 가진 아버지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이름부터 들었다 놨다 하는, 일다르 압드라자코프

이어지는 무어인 의사 이븐 하키아의 독백은 아라비아 문양이 담쟁이처럼 휘감듯이 점증하는 감정을 이어간다. 빛이 어둠을 물리칠 것이라는 하키아의 확신 끝에 다시 르네 왕의 모티프가 더해지면서 드라마를 고조시킨다. 의사의 존재감은 <마술피리>의 의인 자라스트로를 떠오르게 한다.

왕과 의사가 나간 자리에 로베르와 보드몽이 들어온다. 마틸드를 찬양하는 로베르에게 욜란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는 욜란타가 앞 못 보는 처지라는 것도 모르는 채, 오만하게 콧대 높은 공주일 것이라 예단한다.

반면 보드몽은 감각이 아닌 영혼을 채우는 사랑을 기다린다. 차이콥스키는 이 러시아 테너에게 이탈리아나 독일보다는 프랑스 테너의 감성을 요구한다. 이곳은 프로방스 아니던가!

세르게이 스코로호도프라는 어려운 이름을 쓴다

그런 보드몽의 눈에 욜란타는 천사와 같다. 욜란타에게 붉은 장미를 달라고 청했던 그는 그녀가 두 번 세 번 흰 장미를 건네고 나서야 비극적인 현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그는 욜란타에게 ‘빛’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보드몽을 부르는 테너는 기교나 뽐내는 가수가 아니라 뚫을 듯한 빛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욜란타: 선한 기사님, 빛이 무엇이죠?

보드몽: 영원한 자연이 주는 놀라운 선물이지요
소중하고 성스러운 선물입니다
무한한 원천으로 아름다움의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태양, 하늘, 빛나는 별이 세상을, 우리 지상의 집을 채웁니다
삼라만상을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요!
빛이 주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삶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세상이 검은색이라면 그분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암흑은 빛이 없으니까요
그분의 빛으로 보잘것없는 영혼인 내가 당신을 보았습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당신의 꾸밈없고 가녀린 모습, 사랑스럽고 귀여운 표정을요
그래요, 그것은 첫 번째 창조물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에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멕시칸 테너에게 과한 걸 시킨 네트렙코. 보드몽을 트롯맨으로 만들었다

길이가 길지 않고 복잡한 장면 전환이나 화려한 무대가 필요하지 않은 <욜란타>는 작은 극장에게도 인기 있는 레퍼토리이다. 유튜브에도 여러 오페라단이 전곡을 올려놓았을 정도이다. 더 규모가 큰 극장들은 이 곡을 차이콥스키의 원뜻대로 ‘더블빌’로 상연했다. 마드리드 왕립 극장은 스트라빈스키의 <페르세포네>로 뒤를 이었고, 메트로폴리탄에서는 버르토크의 <푸른 수염 연주의 성>을 공연했다. 파리 오페라가 초연과 같이 <호두까기 인형>을 함께 공연했지만, 일반적인 ETA 호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연출가 드미트리 체르냐코프의 각색에 따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클라라가 호두까기 인형의 도움으로 쥐의 왕과 싸워 이기는 대신, 체르냐코프의 평소 관심사인 인류 종말 이후 세계가 그려진다.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연출가 체르냐코프는 라르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에 나오는 것과 같은 혜성과 지구의 충돌에 대한 꿈을 꾼 여주인공이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식으로 <호두까기 인형>과 <욜란타>를 연결한다.

"까서 놓으세" 호두까기 인형의 불어이다

그보다는 테오도르 쿠렌치스 지휘와 만난 피터 셀라스의 연출이 훨씬 설득력 있다. 셀라스는 스트라빈스키의 <페르세포네>가 지상과 지하를 오가는 계절 순환의 신화임을 간파했다. 체르냐코프처럼 원작을 비틀지 않고도 한 무대에 녹아드는 두 곡이다. 쿠렌치스는 <욜란타>의 마지막 합창에 들어가기 전, 차이콥스키의 다른 음악을 삽입한다. <요한 크리소스톰 전례> 가운데 ‘케루빔 찬가’이다.

내 사진을 따라하다니...

신비로운 무반주 합창은 욜란타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올 충분한 시간을 준다. 그 광채가 다 퍼진 뒤에 오는 피날레는 훨씬 밝지만 결코 눈을 부시게 하지 않는다. 그리스 태생의 쿠렌치스는 뒷날 파리 생 샤펠 예배당을 정교회 성가로 채운다. 빛과 소리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https://youtu.be/CSn0qvYJsCs

(유로아츠는 전곡을 올리는 대신 끌어가지는 못하게 해 둔다)


안나 네트렙코와 표트르 베차와를 주역으로 내세운 메트로폴리탄 연출도 군더더기 없다. 비밀의 정원을 영상으로 장식하는 솜씨는 환상적이다. 정육면체로 된 욜란타의 방은 필요에 따라 회전하며 극의 진행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안나 네트렙코는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욜란타이다. 

젊음이 아쉽다

네트렙코는 처음 서방에서 공연하게 되었을 때 러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욜란타>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한다. 그녀는 에센에서 가진 콘체르탄테 무대 녹음에서 세르게이 스코로호도프와 호흡을 맞췄다. 막 궤도에 오른 러시아 오페라의 발견에 박차를 가할 목소리이다.

제목을 점자로도 표시했으나, 단지 인쇄뿐인 DG의 헛발질

이렇게 해서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열한 개의 오페라 가운데 해피엔딩은 <신발Cherevichki>과 <욜란타> 둘 뿐이다. 행진곡풍의 결말은 행복을 위해 내딛는 힘찬 걸음과도 같다. 1892년 12월 18일 <욜란타>와 <호두까기 인형>이 초연된 다음 날, 차이콥스키는 동생 아나톨리에게 편지했다.


오페라와 발레 모두 큰 성공이었어. 오페라는 특히 모두가 좋아했지 …
둘 다 무대도 굉장했단다.


사흘 뒤 아나톨리에게 보낸 편지에는 언론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건 전부 관심 없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리고 언젠간 딛고 일어설 것을 아니까. 그런 비평에 화내지 않을게. 그렇지만 기분은 좋지 않아. 이런 상황에선 당연하지. 오래 살면서 중요한 일에 몰두했는데, 기대했던 일이 벌어질 때 그것이 냉소와 반감을 불러온다면, 우리 열망이 덧없게 느껴지지 않겠니.


차이콥스키는 언제나처럼 <욜란타>도 언젠가 빛을 보리라 확신했다. 이듬해 함부르크에서 이 곡을 지휘한 사람은 구스타프 말러였다. 막 교향곡 3번에 착수했을 때였다. 말러 교향곡 3번 각 악장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판이 깨어나고 여름이 행진해 온다
    들판의 꽃이 내게 말한 것
    숲의 동물이 내게 말한 것
    사람이 내게 말한 것
    천사가 내게 말한 것
    사랑이 내게 말한 것  

정확히 <욜란타>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글린카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쓴 지 불과 반 세기 만에 바야흐로 러시아 음악이 오스트리아 독일 음악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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