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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Sep 30. 2020

발레가 될 뻔한 무용 교향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3번 D장조, Op 29

교향곡 2번의 부제 ‘소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교향곡 3번의 ‘폴란드’라는 제목 역시 작곡가의 뜻과 무관하다. 작곡가 사후 1899년 런던에서 어거스트 만스August Manns가 초연할 때 5악장의 장엄한 폴로네즈를 가리켜 붙인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 역사를 떠올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소러시아라 일컫는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왕국은 이웃 리투아니아 공국과 1569년부터 1796년까지 연합 국가를 이뤘다. ‘두 국민의 공화국’이라 부르던 이 국가의 최대 판도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포함한다. 드네프르강 동쪽 외곽을 차지하던 부족이 자포로지 코사크였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국과 코사크 사이의 대립을 그린 것이 그 지역에서 태어난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타라스 불바』이다. 코사크 족장 불바는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교훈을 가르치려 두 아들을 적국 폴란드로 유학 보낸다. 초원을 떠난 두 아들이 도착한 폴란드의 거점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이다.

교향곡 2번이 그랬듯이 3번도 우크라이나에서 작곡되었다. 1875년 6월 초 차이콥스키는 모스크바를 떠나 우소보Usovo로 향했다. 니지가 니콜라이 콘드라톄프의 영지라면, 우소보는 또 다른 친구 실롭스키Shilovsky 집안의 영지였다. 중앙 러시아 탐보프 지역의 우소보는 모스크바에서 500㎞ 이상 떨어졌고, 그나마 가깝다고 할 보로네슈Voronezh(위 사진)  정도의 소도시도 300㎞는 가야 만나는 오지이다. 그만큼 자연에 묻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오카강과 돈강 사이 드넓은 흑토 평야에서 차이콥스키가 뿌린 창작의 씨앗은 아무런 방해받지 않고 무럭무럭 자랐다.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3번 악보에 “1875년 6월 5일 우소보에서 시작. 1875년 8월 1일 베르봅카Verbovka에서 완성”이라 적었다. 베르봅카 또한 카멘카 근처 동생 집이다. 우소보에서 스케치를 마친 그는 베르봅카로 가기 전 니지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시작했으니, 교향곡 2번과 역순으로 장소를 옮긴 셈이다.

스테판 실롭스키 소령과 아내 마리야에게는 예술에 재능이 많은 두 아들, 콘스탄틴(1849-1893)과 블라디미르(1852-1893)가 있었다. 가족 모두 차이콥스키와 친했고, 특히 블라디미르는 15세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한 차이콥스키의 제자였다. (형제 모두 차이콥스키와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형제의 재능은 특출했다. 형 콘스탄틴은 시도 썼고, 그림과 조각에도 능했다. 그는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이 상연할 때 거대 머리를 만들었다.

콘스탄틴과 블라디미르 실롭스키 형제

콘스탄틴 실롭스키는 연금술과 마술에도 관심을 가진 엉뚱한 친구였다. 그는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대본을 차이콥스키와 나눠 작업했고, 빛을 보진 못했지만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에프라임Ephraim>이라는 오페라 대본을 써 차이콥스키에게 건넸다. 차이콥스키는 1872년에 쓴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소품, Op 10>에 이어 1875년 우소보의 추억을 담은 교향곡 3번도 동생 블라디미르에게 헌정했다.

거대 머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파리 공연

독일 교향곡은 높고 견고하게 쌓은 고딕 건축물이었다. 탄탄한 토대에 견고한 기둥과 대들보를 올려 까마득하게 세운다. 그런데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은 그렇게 수직적이지 않다. 그는 엄청난 유량을 만들어 끝없이 흘려보낸다. 구조는 엉성해 보일지 모르지만, 마치 독일이 만든 둑을 허물기라도 하듯이 거대한 물줄기에 듣는 사람의 넋을 빼버리고 만다. 이미 첫 두 교향곡에서 잔뜩 가둔 물이 둑 위에 찰랑찰랑하더니, 마침내 교향곡 3번에서 가볍게 이를 넘어 단숨에 대양까지 흘려보낸다.

몬테카를로 카지노 앞

교향곡 3번의 최고 해석자는 조지 발란신이다. 그는 반 클리프 앤 아펠의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의 3부로 된 <보석>을 안무했다.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붙인 ‘에메랄드’는 프랑스, 스트라빈스키의 <카프리치오>에 붙인 ‘루비’는 미국,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3번에 붙인 ‘다이아몬드’는 러시아에 헌정했다. 발란신의 생각이 탁월한 까닭은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3번을 첫 발레 <백조의 호수>와 거의 동시에 작곡했기 때문이다. 그가 뒤에 쓸 네 관현악 모음곡이 교향곡이 되려다 모음곡이 되었다면, 이 다섯 악장 교향곡은 무용 모음곡을 교향곡이라 칭한 경우이다.

Orchestral Suite No. 1 in D minor, Op. 43 (1879)
Orchestral Suite No. 2 in C major, Op. 53 (1883)
Orchestral Suite No. 3 in G major, Op. 55 (1884)
Orchestral Suite No. 4, Op. 61, "Mozartiana" (1887)

다섯이라는 악장 수와 세 번째라는 교향곡이라는 순서에서 차이콥스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과 연결 짓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를 모델로 한, 다섯 개 춤곡이라 보는 편이 낫다. 슈만의 4악장은 장송 행진곡이지만, 차이콥스키의 4악장은 2악장과 같은 스케르초로, 함께 느린 3악장을 감싼다.

슈만 라인 교향곡의 4악장 가운데

앞선 두 곡처럼 교향곡 3번의 시작도 매우 조심스럽다.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하는 베토벤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하이든풍의 도입부를 거쳐야 주제를 만난다. 교향곡 3번은 차이콥스키의 전체 교향곡 가운데 유일하게 장조이지만, 이 느린 장송 행진곡 탓에 시작은 단조이다. 이어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예고하는 황실 무도회가 시작된다.


발란신은 전 다섯 악장 가운데 가장 길이가 긴 이 악장을 발레 <보석>에서 제외했다. 아쉬운 일이나 이해는 간다. <보석> 가운데 ‘다이아몬드’는 나머지 두 보석을 합친 것에 맞먹는 길이이다. 첫 악장까지 더했더라면 다이아몬드에 너무 무게가 기울었을 터이다. 또 앞에 두 보석을 다루고, 3부에서 다시 느린 도입부가 있는 교향곡을 시작하는 것도 짜임새에 맞지 않는다. 발란신에게 세 보석이 의미하는 것은 앞서 보았듯이 프랑스-미국-러시아라는 세 조국에 대한 헌정이다. 나는 만일 발란신이 직접 겪은 삶 대로 러시아-프랑스-미국 순서로 안무했더라면, 전체적인 길이가 길어지더라도 교향곡 3번의 첫 악장으로 넣어 발레를 시작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국어와 같은 러시아 황실 발레의 찬양을 전체 발레의 대단원 삼고 싶었을 것이다. 만일 러시아, 곧 다이아몬드가 제일 처음에 오는데, 지금처럼 교향곡의 2악장으로 시작했더라면 그 또한 뜬금없었을 것이다.


https://youtu.be/8ArLbpD38sc?t=21

(마린스키 극장의 다이아몬드 전곡)


2악장 제목은 ‘독일풍Alla Tedesca’이다. 알라 테데스카의 대표적인 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5번 첫 악장과 현악 사중주 Op 130 네 번째 악장이다. 

한창 때이심
이제는 거울 앞에 서심...

베토벤의 독일 춤곡 ‘테데스카’는 바흐가 모음곡에 넣은 느린 ‘알르망드(역시 독일이라는 뜻이다)’와는 다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프랑스 모음곡 4번 가운데

차이콥스키의 스케르초이자 발란신의 첫 악장이 되는 ‘알라 테데스카’는 <백조의 호수> 가운데 백조의 군무(群舞)에 해당한다. 차이콥스키가 발레와 나란히 작곡한 두 음악의 공통점을 발란신은 정확히 집어냈다. <백조의 호수>가 독일의 전설을 토대로 했다는 사실도 이 독일 춤곡과 자연스러운 연결 고리이다. ‘알라 테데스카’는 1891년에 극부수음악 <햄릿>을 쓰면서 오필리어의 첫 등장으로 다시 사용한다.

오필리어가 거기서 나오네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4악장에 허밍을 넣어보라!

이와 대칭을 이루는 4악장 스케르초는 <호두까기 인형> 가운데 ‘눈송이의 춤’을 떠오르게 한다. 눈의 결정처럼 반짝이는 플루트의 속삭임과 현의 피치카토를 들으며 발레리나의 잰걸음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1872년 표트르 대제의 탄생 200주년을 기려 모스크바에서 열린 공예 박람회를 위해 칸타타를 작곡했다. 교향곡 4악장 가운데 ‘트리오’는 그 <모스크바 칸타타>에서 가져왔다.

런던 로열 발레단의 3악장 파드되

발레 평론가 클레멘트 크리스프Clement Crisp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가운데 3악장 ‘안단테 엘레지아코’의 느린 이인무는 글라주노프의 발레 <라이몬다Raymonda> 가운데 ‘헝가리 변주Grand Pas Classique Hongrois’를 떠오르게 한다. 차이콥스키 사후 스트라빈스키가 나오기까지 최고의 발레로 꼽을 작품이 마리위스 프티파가 안무한 글라주노프의 <라이몬다>이다. 그 가운데에도 3막 결혼 피로연의 ‘헝가리 변주’는 백미로 꼽힌다.

볼쇼이의 <라이몬다> 가운데, 중간에 나오는 비둘기 색 옷 입은 산드라 불럭 같은 언니가 주인공이다

발란신이 1946년 몬테카를로에서 <라이몬다> 전막을 공연했고 ‘헝가리 변주’는 뉴욕 시티 발레단과 세 차례(1955, 1961, 1973)나 다시 공연했다. 차이콥스키의 3악장이야말로 글라주노프의 모델이고, 장차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Lev Ivanov의 발레 예술에 로열젤리를 제공할 개화(開花)였다.

율랴나 로파트키나를 위한 마린스키의 대단원

5악장 ‘알라 폴라카Alla polaca’는 다시 발란신이 제외한 첫 악장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로 돌아간다. 부챗살을 폈다 접었다 할 때마다 그림이 바뀌는 것처럼, 또 만화경을 돌릴 때마다 작은 보석이 마치 자연이 빚은 듯한 오묘한 결정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찬사를 끊이지 않게 한다. 혹자는 이 폴로네즈에서 1877년에 작곡될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3막을 여는 무도회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차이콥스키는 교향곡을 쓰기 직전 해에 오페라 <대장장이 바쿨라>(1885년에 <체레비츠키>로 개작)에 폴로네즈를 넣었다. 정식 무도회의 시작 춤이 바로 ‘폴로네즈’이다. 콘스탄틴 실롭스키가 우소보 시골집에서 펼쳐 보인 마술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차이콥스키는 그로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푸가’까지 동원하며 ‘무용 교향곡’의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체레비츠키>에 대해서는 아래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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