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왼쪽으로

소설 『작은 아씨들』 속의 음악 (3)

by 정준호

‘손을 잡고 왼쪽으로 빙빙 돌아라’라는 가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니, 못 알아보겠어요 Johnny I Hardly Knew Ye>는 원래 아일랜드 민요이다. 영국에 징집되어 실론(스리랑카)에서 싸운 아일랜드 농부 조니가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슬픈 내용이다.

이 노래는 남북전쟁 때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부르면서 <조니가 고향 앞으로 행진할 때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라는 사기 진작 군가로 바뀐다. 이후 <스미스 씨, 워싱턴으로 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멋진 인생>, <위대한 독재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다이하드 3>에 이르는 숱한 영화에서 라이트모티프로 사용되곤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마블 히어로인 줄 알까 봐

그러나 미국 토박이 음악가 찰스 아이브스(1874-1954)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말랑말랑한 편곡이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보험 영업으로 성공했고, 작곡은 어디까지나 부업이었기 때문에 베토벤처럼 출판사와 실랑이할 이유도 없었다. 그 결과 정확히 100년 전 베토벤처럼 어떤 출판사라도 부담스러웠을 시장성 없는 걸작을 내놓았다. 민요와 군악을 어릴 적 뛰놀던 추억과 버무린 <뉴잉글랜드의 세 곳Three Places In New England>과 같은 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뉴잉글랜드의 세 곳> 가운데 2곡 매사추세츠, 레딩, 퍼트넘 장군 진영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미국을 깨어나게 하려고 애썼던 선각자들의 노력이, 잔잔하지만 가장 호소력 있게 드러난 것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이다. 그에 호응하듯 소설이 나오고 몇 년 뒤인 1875년 10월 25일 보스턴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초월주의자들이 동경하던 독일의 거장 한스 폰 뷜로가 러시아에서 버림받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고 와 세계 초연한 것이다.

끼릴 꼰드라신 동무 죽인다!

보스턴에서 뷜로의 초연을 지휘한 사람은 1863년 1월 1일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기념 연주회를 이끌었던 벤저민 존슨 랭Benjamin Johnson Lang이었다. 그 기념 연주회 때 자작 시를 낭독했던 에머슨을 랭이 보스턴의 차이콥스키 콘서트에 초대했을까? 에머슨은 친구의 딸 올컷에게 괴테를 선물했을 때처럼 독일 거장 뷜로의 연주는 꼭 들어야 한다고 권했을까? 차이콥스키가 1869년에 괴테의 미뇽 시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에 곡을 붙였음을 올컷이 알았다면 매우 기뻤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1949년에 나온 머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조가 엿들을 베어 교수의 노래이다.

Nur wer die Sehnsucht kennt

차이콥스키가 미국을 찾은 것은 올컷이 세상을 떠나고 2년 뒤인 1891년 4월이었다. 아일랜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뉴욕에 희사한 콘서트홀 개관 음악회에 초대받은 그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지휘하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했다. 다음 해인 1892년 9월에는 보헤미아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국립 음악원의 원장으로 신대륙을 밟았다. 야구를 좋아하던 코네티컷 고등학생 아이브스는 독립 기념일을 위한 오르간 곡 <아메리카에 붙인 변주곡>을 썼다. 혹자는 그해에 드보르자크가 쓴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국은 바야흐로 자생 음악을 쏟아낼 준비를 마쳤다.

앨턴 존의 대선배 버질 폭스. 누구는 독일 국가, 누구는 여왕 찬가라 하겠지만, 미 대통령 취임 때도 이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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