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가치 (3) - 알테피나코테크
(이어서)
서울서 지난 부활절 유럽 여행을 연재하는 동안, 현지에선 잘츠부르크 여름 축제가 한창이다. 직접 가지 않아도 구독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주요 공연을 가까이 볼 수 있다. 현장감을 제일로 삼는 사람은 관심 없겠지만 나처럼 ‘바로 지금 여기’가 더 중요한 사람에겐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영상물이 그 못지않게 의미 있다. 심지어 객석에서는 얼굴도 잘 안 보이는 오페라 가수가 화면으로는 표정까지 낱낱이 드러난다. 결국 현실과 가상의 절충을 통해 우리는 더욱 너른 세상을 경험한다.
바이에른 방송에서 생중계하는 오데온 클래식 콘서트와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파르지팔>을 손바닥처럼 살펴보며 부활절 뮌헨의 여정을 추억한다. 원래는 린더호프에 갈 계획이었다. 린더호프는 독일 남부의 동화 같은 성이다. 달력 그림으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비스콘티의 영화 <루트비히>에 나오는 헤렌 힘제처럼 바그너 신봉자였던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 국왕이 지은 성인데, 다른 두 곳과 달리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뮌헨에서 린더호프에 가려면 오버아머가우라는 소도시를 거쳐야 한다. 목각 성물(聖物)로 유명한 이 도시에선 10년에 한 번 도시의 역량을 총동원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는 무대 공연을 펼친다. 무려 400년 가까이 계속된 오버아머가우 수난극은 2020년 시즌이 코로나로 연기되는 바람에 작년에야 겨우 열렸다. 다음 공연은 (또 다른 환란이 없다면) 2030년에야 다시 볼 수 있지만, 수난극이 없어도 부활절을 맞아 이곳에 가는 기분은 색다르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인가! 날씨도 궂고 차도 놓치는 바람에 오버아머가우며 린더호프며 다 물거품이 되었다.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낯익은 시내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뮌헨이다. 대개 우리나라 사람에게 독일의 관문은 프랑크푸르트이지만, 내겐 뮌헨이 그러하다. 늘 우선 찾는 곳은 ‘피나코테크(회화관)’이다. 고전 미술 위주인 ‘알테’, 근대 미술을 전시하는 ‘노이에’, 현대 미술관 ‘모데르네’ 가운데 나는 알테 피나코테크를 가장 좋아한다. 더욱이 이번엔 노이에와 모데르네가 내부 단장 중이라 알테만 문을 열었고, 다른 곳의 주요 작품도 이곳으로 옮겨 전시 중이다.
좌우로 나뉜 높은 계단을 오르면 첫 방에서 화사한 여인의 전신화를 만나게 된다. 온통 장미로 꾸민 비취색 비단옷을 입은 사람은 루이 15세의 ‘왕실 정부’(Maîtresse-en-titre)였던 퐁파두르 여후작(1721-1764)이다. 왕비로부터 후사를 얻은 국왕에게 연인이 공인되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퐁파두르 부인은 단순한 애인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뛰어난 식견으로 대외 정책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서 짐작하듯이 당대 유행과 예술을 선도했다. 원래 알테 피나코테크는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인 루트비히 1세가 왕세자일 때부터 재위 시까지 모은 보물들의 수장고이다. 그러나 1756년 프랑수아 부셰르가 그린 <마담 퐁파두르 초상화>는 비교적 최근인 1971년 뉴욕에서 왔다. 언제 가도 미술관 안주인인 듯 맞이하는 모습이 이번에도 반갑다.
알테 피나코테크에서도 첫째로 치는 그림들은 퐁파두르 부인 반대편 끝에 있다. 수많은 방을 지나서야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수스 전투>, 한스 멤링의 <성모 마리아의 일곱 기쁨>, 렘브란트의 <그리스도 생애 연작> 따위를 만난다. 공통점으로 말하자면 아마 그림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일 것이다.
알트도르퍼가 1529년에 그린 <이수스 전투>는 기원전 333년의 고사를 언제나 오늘로 소환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정예군을 이끌고 페르시아 국경을 넘는다. 네 배나 많은 병력과 지리에 밝다는 이점에 방심한 다리우스 3세 왕은 마케도니아군을 섣불리 대했다가 큰코다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해가 질 무렵까지 추적하며 페르시아 군을 도륙했다고 전한다. 장엄한 산세와 바다 너머로 해가 지는 전장의 한가운데에 황금 갑옷을 입고 박차를 가하는 알렉산드로스가 있다. 그의 추격에 어마 뜨거라 하며 전차를 타고 도망치는 이가 다리우스 3세이다. 역사나 성경의 정경을 이렇게 대자연에 녹인 화풍을 ‘세계 풍경화’(Weltlandschaft)라고 부른다. 하이라이트를 더 큰 그림 속에서 조망하려는 인간의 오랜 열망을 다시 확인한다.
멤링의 <성모 마리아의 일곱 기쁨>(1494) 또한 세계 풍경화이다. 수태고지와 동방박사의 경배,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승천과 같은 이야기가 한 폭의 풍경 위에 빽빽이 자리한다. 마치 당대 신비극을 위한 ‘스토리보드’처럼 보인다. 렘브란트는 주인공을 바꿔 그리스도의 일생을 여섯 폭으로 나눠 그렸지만, 방식은 멤링과 같다. 이 연작의 특징은 렘브란트의 몇몇 그림과 마찬가지로 화가 자신을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렘브란트는 그리스도의 주검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무리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수난의 현장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코러스’의 일원이다.
‘세계 풍경화’와 예술가 자아의 확대는 근대 ‘세계문학’(Weltliteratur) 및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등장에 상응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주창한 세계문학이란 그저 각국 언어로 된 전집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과 현대의 문학을 통해 세계사를 조망하자는 거대한 청사진이다. 대개 주인공은 영웅호걸이 아니라 편력으로 ‘교양’을 쌓는 작가 자신이다. 세계 풍경화와 세계문학이 결합하면 좀 더 큰 짜임새가 완성된다. 20세기 들어 도상학을 연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는 ‘세계극장’(Theatrum Mundi) 이론을 제시하는데, 앞서 바그너는 이미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을 ‘무대신성축제극’(Bühnenweihfestspiel)이라 칭해, 연극과 음악 등 모든 예술을 하나로 결합했다. 장차 올 영화의 이론적 토대가 오랜 세월 차곡차곡 싸였음을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다시 확인한다.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보수 중이라 몇몇 작품을 이리로 옮겨 전시 중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반니 세간티니의 <밭갈이>로 종종걸음 한다. 두 필의 말에 쟁기를 달고 고랑을 파는 농부들은 가족일까, 이웃일까? 세간티니의 치열한 붓질에는 농부의 땀방울에 부끄럽지 않을 노력이 배어 있다. “귀족도 제 먹을 것은 제 손으로 얻으라”라는 톨스토이의 당연한 일갈을 세간티니는 알프스의 넉넉한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늘 보던 그림 외에 특별히 새로 발견한 것도 많다. 익숙한 ‘이집트로의 피신’을 소재로 그린 아담 엘스하이머(1578-1610)라는 화가는 그간 간과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나온 고음악 앨범 표지가 이 그림의 ‘월출’ 장면을 가져온 것임을 알고 실물을 접하니 매우 반가웠다. 음반의 첫 곡은 르네상스 작곡가 피에르 베르델로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희곡 <만드라골라>의 소네트에 붙인 ‘오 달콤한 밤’이다. 이 또한 오페라 예술의 첫 씨앗 가운데 하나이다.
(아래 그림)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옥토버페스트나 자동차 박물관을 보러 뮌헨에 온다. 이제 막 나폴리에서 뮌헨으로 이적한 축구선수 때문에 한국 관광객은 더 몰릴 것이다. 나는 좀더 뮌헨만의 것을 보고 들으러 이곳에 온다. 더 오래되었고, 더 오래 남을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관을 나와 호텔로 걸어오는 중에 그런 고집을 뒷받침하는 동상이 서 있다.
루트비히 1세는 프로메나덴플라츠에 뮌헨에서 업적을 남긴 다섯 인물의 동상을 세웠다. 그 가운데 르네상스 작곡가 오를란도 디 라소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그의 명성은 알프스 너머에도 자자했다. 여러 곳의 부름을 받던 라소는 뮌헨의 처우에 매우 만족해 그곳에 정착했다. 라소의 음악은 르네상스 음악이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20세기말 이후 더욱 중요성을 더해간다. 흥미로운 것은 라소의 동상이 온통 팝가수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사진과 꽃다발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잭슨이 뮌헨을 찾을 때마다 공원 앞 바이에른 호프 호텔에 투숙했는데, 팬들이 이를 기억하고 라소의 동상을 추모 공간으로 삼았다.
아직은 잭슨을 기억하는 사람이 라소를 아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라소가 서거 500주기를, 마이클 잭슨은 타계 100년을 헤아릴 다음 세기라면 어떨까? 다시 묻자. 마이클 잭슨이 400년 뒤에도 지금의 라소만큼 기억될까? 라소가 뮌헨에서 남긴 마지막 작품 <베드로의 눈물>(Lagrime di San Pietro)의 감동은 바로 어제 작곡된 것처럼 생생하다. 마치 알트도르퍼와 렘브란트의 그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