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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y 17. 2024

신전의 계곡으로

2023년 이탈리아 기행 마지막 회

2024년 6월호 노블레스 게재


<스타워즈 7>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해리슨 포드가 <인디애나 존스> 최신편(Indiana Jones and the Dial of Destiny, 2023)으로 부활해 시칠리아에서 아르키메데스를 만나고 올 줄이야! 사후 키케로가 어렵사리 발견했다가 잊힌 그의 무덤을 인디애나는 ‘디오니시우스의 귀’라 부르는 채석장 안에서 다시 찾는다. 

해리슨 포드가 대장 내시경 받을 때도 따라왔다는 그 테마

그러나 시칠리아를 여행한 사람 대부분이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타오르미나의 반원형 극장이나 아그리젠토(Agrigento)의 ‘신전의 계곡’은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기 힘들다. <불의 여인>(Blood Feud, 1978)은 소피아 로렌,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잔카를로 잔니니라는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역시 아는 사람이 적다. 가장 길기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원제목(‘시쿨리아나 공동체에서 두 남자 사이에 한 과부를 놓고 일어난 피의 사건. 정치적 동기가 의심된다’)이 영화의 내용을 함축한다. (진짜 제목은 이렇다: Un fatto di sangue nel comune di Siculiana fra due uomini per causa di una vedova. Si sospettano moventi politici. Amore-Morte-Shimmy. Lugano belle. Tarantelle. Tarallucci e vino.. 밑줄 부분 생략)

유튜브 대여: 1500원 (부가세 별도)

남편을 마피아에게 잃은 과부 티티나는 복수를 위해 늘 엽총을 지니고 다닌다. 변호사이자 사회주의자 스팔로네는 ‘주노 신전’ 앞에서 마피아에게 겁탈당할 뻔한 티티나를 구하다가 뭇매를 맞는다. 상처를 치료하던 티티나는 스팔로네의 구애를 뿌리치지 못한다. 그때 죽은 남편의 사촌 니콜라가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해 돌아온다. 그 또한 어릴 때부터 티티나를 좋아했다. 미묘한 삼각관계 중 니콜라는 티티나가 남몰래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외간 남자와 통정하는 것이라 오해한 그는 티티나를 경멸하지만, 사실은 낙태를 도우러 간 것이라는 말에 용서를 빌고 그녀와 동침한다. 무솔리니가 집권하면서 마피아는 파시스트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겁박한다. 복수심에 불탄 니콜라와 스팔로네는 각각 마피아를 찾아 ‘원형극장’으로 간다. 

시라쿠사의 그리스 반원 극장. 구경꾼은 하나 없는데 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

총격 끝에 니콜라가 스팔로네를 구하고 이들은 티티나와 미국으로 탈출하려 한다. 쫓아온 마피아에게 결국 총을 맞고 죽어가는 스팔로네와 니콜라에게 티티나는 “당신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티티나 자신도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면서 두 애인을 위로한 말이다. 줄거리를 보면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치정극을 배경으로 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더 어울리겠지만, 감독은 벨리니의 <노르마> 가운데 ‘정결한 여신’을 주제곡으로 골랐다. 벨리니가 시칠리아의 카타니아 태생이기 때문이었을까?

아그리젠토 준호 신전의 실경과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

<불의 여인>의 마피아와 파시스트, 사회주의자와 노조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 극히 혼란했던 이탈리아의 구성원들이다. 해묵은 시칠리아 가부장제의 씨앗에서 정치 경제적 긴장 관계라는 물을 먹고 자란 이들이 한밭을 이뤘다. 모두 한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 또는 가족 사이라는 데에서, 곧 뿌리가 하나라는 데에서 해결점을 찾기 힘들다. 영화의 배경이 된 세제스타(Segesta)와 아그리젠토에는 폐허만으로도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 그리스 신전이 즐비하다. 특히 나는 아그리젠토에서 주노 신전을 보는 것이 시칠리아 여행의 주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 때문이다. 기독교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프리드리히는 폐허가 된 신전을 통해 신들의 황혼을 명상적으로 묘사했다. 

준호 신전을 배경으로 한 파르지팔 영화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Hans-Jürgen Syberberg)가 감독한 바그너의 <파르지팔>(Parsifal)에는 성찬의 전례 가운데 이 그림이 배경으로 나온다. 이교도 신의 자리를 기독교가 대신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비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황혼’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은 없다고 도발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신들이 오고 간 자리에는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만이 변치 않고 끈끈이 들러붙어 있다.

‘디오니시우스의 귀’라고 불리는 채석 노역장. 조지 루카스는 이 안에 아르키메데스를 묻었다가 살렸다

역삼각형 시칠리아의 아래 꼭짓점을 돌아 시라쿠사(Siracusa)에 도착한다. 역시 고대 그리스의 번창한 식민지 중 하나였던 시라쿠사는 시칠리아의 부속 섬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다리 가운데는 도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동상이 서 있다. 

유레카를 외치기엔 너무 부동자세이다

부력차이로 금관의 진위를 밝혀냈을 때 그가 외친 “유레카!”는 앎의 기쁨을 한마디로 요약한 감탄사이다. 해를 가린 적장에게 일조권을 요구하다가 비명횡사했다는 일화 탓인지 사라쿠사의 볕은 유독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리스 식민지답게 아폴로 신전이 있던 자리가 나오고 디아나 여신의 분수가 광장의 중심에서 휴식을 제공한다. 

겉은 교회이나 안은 신전, 결국은 그게 그거 아닌가?

그 뒤론 기독교의 차례이다. 산타 루치아를 섬기는 시라쿠사 대성당은 아테나 신전의 뼈대를 그대로 이용해 지었다. 화려한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겉모양과 대조적으로 내부는 웅장한 그리스식 기둥과 투박한 로마 벽체로 되어 있다. 기독교가 이교도의 토대 위에 안착한 것을 기념하는 장소랄까! 바로 곁에는 같은 양식의 더 소박한 산타 루치아 알라 바디아 교회(Chiesa di Santa Lucia alla Badia)가 자리한다. 카라바조가 그린 <산타 루치아의 매장>과 카라바조 작업을 활인화(Tableau vivant)로 촬영한 토니 마차렐라의 <산타 루치아에게 바침>이 숙연함을 자아낸다. 영화 <말레나>에서 소년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말레나는 마치 산타 루치아처럼 죄 없이 핍박받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말레나를 연기한 모니카 벨루치가 거닐며 뭇 남성의 눈길을 받는 곳이 바로 성당 앞 광장이다.

카라바조 그림의 카피와 카라바조 따라하기 사진

이제 골몰길을 따라 바닷가에 면한 아레투사의 샘(Fonte Aretusa)에 도착했다. 시칠리아 여정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이다. 올리브 나무 아래 거대한 우물처럼 보이는 샘은 바닥이 훤히 비치는 물빛부터 건너편 쪽빛 바다와는 사뭇 다르다. 

보면 별 것 아닌데 구라는 삼만리

보통의 경우 민물이 바다로 흘러가지만,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따르면 이곳은 그 반대이다. 아르테미스의 시녀인 아레투사는 강의 신 알페이오스의 구애를 뿌리치려고 샘물이 되었다. 수원(水源)은 그리스의 아크로세로니아 산맥인데 알페이오스 강과 섞이지 않으려고 이오니아 해를 건너 이곳으로 피했다는 이야기이다.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가 신화를 시로 썼고 오토리노 레스피기는 그 시를 오페라와 교향시를 결합한 ‘포에메토 리리코’(Poemetto lirico)로 작곡했다. 

누구나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마시게 할 수는 없다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는 침대가 아닌 ‘카우치’에서 자라는 집주인 스미스의 말을 듣고, “아레투사가 눈 덮인 카우치에서 일어났다”라는 시구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셸리와 키츠 중 누구의 시인지 옥신각신한다. 영화에서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니 사족을 얹자면 스미스가 맞았다.

밀라노에서 출발해, 베로나,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를 거쳐 시칠리아까지 돌아본 이번 여정을 다시 로마로 돌아가 마치려고 한다. 사려 깊은 독자는 내가 유독 레스피기라는 작곡가를 자주 들먹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바야흐로 간과되었던 그의 때가 되었다. 나는 며칠 뒤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레스피기의 로마 삼부작을 들을 것을 학수고대 중이다. 

맙소사: 지휘자 와병으로 전부 바뀌었다!

빈 필하모닉 황금홀에 울릴 교향악의 장관을 요약하는 것으로 로마를 담아낼 수 있다. ‘빌라 보르게세의 소나무’ 아래에서 괴테와 키츠가 베르니니의 조각을 논한다. ‘카타콤의 소나무’는 어쩌면 그 옛날 세바스티안 성인이 화살을 맞고도 신앙을 꺾지 않을 때 묶인 나무인지 모른다. 

한 떨기 소나무

로마에서 가장 높은 ‘잔니콜로 언덕의 소나무’는 크리스티나 여왕이 꽃피웠던 바로크 문화를 굽이 내려다본다.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는 자유를 위해 죽은 수많은 스파르타쿠스의 증인이다. 여기까지가 <로마의 소나무> 네 곡이다.

메디치 빌라에서 본 소나무와 분수

이어서 <로마의 분수>가 “음악 분수란 이런 것”이라며 솟구친다. ‘새벽녘 줄리아 계곡의 분수’, ‘아침의 트리토네 분수’, ‘한낮의 트레비 분수’, ‘해 질 녘 빌라 메디치의 분수’는 마치 영화 속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하루를 예고하는 듯하다. 

막센티우스 경기장의 구름 관중. 줄이 끝이 없다

가장 덜 알려진, 그래서 제일 중요한 <로마의 축제>가 마지막이다. ‘치르첸세스’는 이름 모를 검투사들의 사투와 군중의 광기를, ‘희년(禧年)’은 로마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감격을, ‘시월제’는 풍요를 기원하는 이교도의 축제를, 끝으로 ‘베파나’는 주현절 전날 나보나 광장의 축제를 그렸다. 산타클로스의 원조 격인 베파나는 양말에 선물을 주는 노파이다. 역시 고대 이교도의 선물 나눔 풍습에서 비롯된 축제를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에 접목한 것이다. 이탈리아 인문 기행을 계획한다면 단테나 괴테, 미켈란젤로나 베르디가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레스피기를 벗하려면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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