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사랑 (2)

움베르토 조르다노

by 정준호

움베르토 조르다노는 자코모 푸치니보다 아홉 살 아래로 1867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직후부터 이탈리아 문단과 음악계에는 ‘리얼리즘 운동’이 일어난다. 낭만주의 사극의 주제나 신화를 벗어나 현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그중에서도 서민들의 삶이 소재가 되었다. 이를 ‘베리스모’라 한다. 특히 음악계에서 이 운동을 장려한 것은 에도아르도 손초뇨의 단막 오페라 경연이었다. 문학이라면 단편소설 신춘공모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회는 음악 출판사를 경영하는 손초뇨가 1883년에 시작했다.

PiazzaGiordanoFoggia.jpg 포자의 조르다노 광장, 작곡가의 동상과 오페라 속 인물들. 위피피디아

1888년에 피에트로 마스카니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공모에서 우승하면서 일약 주목받았다. 같은 해에 <마리나>라는 작품을 출품한 조르다노는 일흔세 명의 응시자 가운데 가장 어렸지만 6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에게 진정한 명예를 가져다주는 <안드레아 셰니에>가 나오기까지는 다시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오페라는 4막으로 되어 있다.


1막: 쿠아니 백작 집의 살롱. 저택은 귀족들의 파티 준비로 바쁘다. 귀족들을 위해 노예와 같이 일하는 신세를 한탄하던 시종 제라르는 백작 부인과 함께 등장한 딸 마달레나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만다. 손님들에게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가 소개된다. 시를 청하는 마달레나에게 그는 시심(詩心)이란 사랑과 같이 변덕스러워 아무 때나 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사랑이라는 말에 코웃음을 짓는 마달레나를 향해 셰니에는 ‘즉흥시’(Improvviso)를 낭송한다.

Un dì, all'azzurro spazio

어느 날 푸른 하늘을 정신없이 바라봅니다

그리고 꽃이 가득 핀 초원을

태양이 금빛 줄기를 내리쬐니 대지도 황금빛으로 물드는군요

세상이 소중한 보물과 같고 창공은 보물 상자와 같아요

대지가 나를 애무하고 내 얼굴에 생생하게 입맞추지요

사랑에 압도된 나는 외칩니다

사랑합니다. 내 얼굴에 입 맞춘 당신을

나의 아름다운 조국이여!

그리고 사랑이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나는 교회 문턱에 섰습니다

거기에는 신부님이 한 분이 성인과 동정녀 상 주위에 선물을 쌓고 계셨지요

하지만 그는 빵을 달라고 손을 흔들며 내미는 나이든 사람의 청을 못 들은 척했어요!

나는 허름한 오두막에 들어가 한 사람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는 소작을 내기에 충분한 소출을 거둘 수 없는 땅을 욕하고 비참한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천인을 모두 저주했지요

그런 가난함과 맞선 사람에게 귀족이 뭘 해줄 수 있을까요?

그대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인간의 동정심이 표현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천사와 같은 그대를 바라보며 생각했지요

참된 인생의 아름다움이구나!

그러나 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충격에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당신과 같이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 시인에 대해 그리 조롱하다니요

명심하세요. 당신은 사랑이 뭔지 모르는군요.

사랑은 신의 선물입니다. 그것을 얕보지 마세요.

세상을 움직이는 정신이 사랑입니다!


마달레나는 감동하여 사과한다. 그때 제라르가 나타나 제복을 벗어 던지며 더 이상 하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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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복원 전후의 <민중을 끄는 자유>

2막: 5년 뒤 혁명이 한창인 파리 시내. 모든 것을 잃은 마달레나가 거리를 헤매고 셰니에가 그녀를 찾아 보호해 줄 것을 약속한다.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심복이 된 제라르가 지나간다. 제라르 또한 맘속에 둔 그녀를 찾고 있던 터. 그러나 셰니에가 보호하고 있음을 알고는 잘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3막: 혁명 재판소. 수배 중인 셰니에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은 제라르는 정의와 사랑을 두고 혼란스러워한다. 마달레나가 나타나 셰니에를 구해달라고 탄원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자기 몸이라도 내놓겠다고 말한다. 순수한 사랑에 모질지 못한 제라르는 셰니에의 석방을 변호하나 군중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사형이 선고된다.

La mamma morta

4막: 성 라자로 감옥. 투옥 중인 셰니에는 아름다운 기백을 담은 ‘5월의 아름다운 어느 날처럼’이라는 시를 낭송한다. 제라르와 함께 온 마달레나는 다른 여죄수 대신 자신이 사형당하도록 해달라고 간수를 매수한다.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는 두 연인을 제라르는 회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조르다노를 비롯한 베리스모 작곡가들은 멜로디와 악절, 라이트모티프를 예쁘게 꾸미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실어 나르고자 했다. 서민 계층에 무심한 북이탈리아의 베르디가 <오텔로>로 엘리트주의에 빠져있을 때, 남부의 청년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시골의 기사도’(<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쇼를 계속해야 하는” 광대의 비극(<팔리아치>)에 주의를 기울인 것이다. 이렇게 현실주의를 표방한 베리스모 오페라의 음악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현실적인 바그너의 악극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하나의 막을 독립적으로 제시하는 바그너의 방법은 베리스모 작곡가들의 장면 구성에 고스란히 전도되었다. <니벨룽의 반지> 가운데 <발퀴레>의 1막과 <지크프리트>의 3막은 베리스모 오페라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줄거리는 4년 뒤에 나오는 푸치니의 <토스카>를 예견한다고 할 정도로 닮았다. <토스카>와 마찬가지로 두 연인의 목숨은 권력의 하수인에게 달려 있다. 또한 그 어둠의 인물 역시 여주인공을 사랑한다. 제라르에게 셰니에의 석방을 애원하며 부르는 마달레네의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는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를, 의연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셰니에의 ‘5월의 아름다운 어느 날처럼’(Come un bel dì di Maggio)은 카바라도시의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과 대칭을 이룬다.

Come un bel dì di maggio

물론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보다는 <안드레아 셰니에>의 제라르가 훨씬 양심적이고 따뜻하다. 셰니에의 기소장에 ‘조국의 적’(Nemico della patria)이라는 죄명을 쓰는 제라르는 개인적인 욕망과 큰 뜻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신의 그릇됨을 자학한다. 이탈리아 바리톤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다. 1막에서 셰니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정신이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제라르의 사랑은 일방적인 욕망으로 몸부림치고 만다.


조국의 적?

낡은 이야기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직 먹히는 수법이지

콘스탄티노플 태생? 외국인!

생시르 사관학교에서 수학? 군인!

반역자! 뒤무리에와 공범!

시인? 미풍양속을 문란케 한 죄!

한때 증오와 복수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강인한 것이 내 기쁨이었지

나 자신을 거인이라고 생각했어!

언제나처럼 난 종복이야!

주인이 바뀌었고 과격한 열정에 굽신거리며 빌붙어 있지!

더 나쁜 것은 죽이고 떠는 것이지, 죽이고 나서 뒤에서 우는 것!

자유를 위한 전쟁의 아들로서 먼저 부름을 들었고 내 목소리를 거기에 더했지.

이제 내 운명이 꿈꾸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인가?

영광에 타오르는 길을 걷곤 했지!

인간의 마음속 양심의 목소리를 다시 깨우고 짓밟힌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신에게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신으로 바꾸고 한 번의 입맞춤으로 사랑의 포옹으로 모두를 끌어안는 것!

나는 지금 이 신성한 부름을 거부하고 있어!

내 마음은 증오로 가득 차 있어. 그리고 씁쓸하게도 그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야! 나는 음탕한 자요, 내 새로운 주인은 욕정이야! 모든 게 글렀어! 정열만이 옳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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