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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oprlej Jun 28. 2019

메리 이야기

나의 이름은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할 때 그 '메리'.

"늘 맑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라며
부모님께 받은 이름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야기의

시작이겠지만,
아쉽게도 내 인생은

이름처럼 그다지 예쁘고 해맑지 않다.

열일곱이 되던 해에, 나는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라는 건 처음부터 없었고,
엄마라는 사람은
늘 술에 찌들어 남자나 밝히는 최악의 여자였다.
그 여자가 죽고 나서 내게 남겨 놓은 거라고는
가난과 우울과 술병,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
결핍, 불안,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같은 것들 뿐이었다.

나에게는 늘,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분노가 있었는데,
누구에 대한, 무엇에 관한 분노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믿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나를 원하는 남자는 어디에나 있었다.
그저 지독하게 외로우면,
그들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향기도 없이 몸을 섞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조금 괜찮았으니까.





내가 그곳을 처음 가게 된 건,
비가 정말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는 몹시 지쳐있었고, 목이 말랐었다.
한참을 걷다가 그곳을 발견했는데,
지금 무조건 이 곳을 들어가야만 할것 같은
이상하고, 강렬한 느낌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진한 향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우리는 눈이 마주친다.
아무렇게나 난 수염에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후드티,
대충 눌러쓴 비니,
날카롭고 긴 두 눈.

"어서 오세요"
하며 활짝 웃는데,
그가 웃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그만 우울해졌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 웃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서.
아무런 구김살이 없었다.

미움이라고는 한번도 받아본적 없는 사람처럼

눈부시게 웃었다.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면 할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한 번도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사랑받은 적이 없어서,
무서웠다.
한 번은 그가 자는 모습을 하염없이 보다가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너무 불안해서
혼자 꾸역꾸역 운 적도 있다.
나에게는 정말이지 이 사람 하나밖에 없는데,
이렇게도 사랑스럽고 해맑은 그에게는
언제나 주변에 사람이 넘쳤다.
털털하고, 젠틀하고, 똑똑한 그를 모두가 좋아했다.
그냥 그게 너무 무서웠다.

푸근하고 인자한 어머니.
자상하고 친구 같은 아버지.
철없고 귀여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동생.
주변엔 늘 좋은 친구들.
나에게는 모두 없는 것들이었다.

만일 그가 이런 내 모습을 안다면,
얼마나 내가 끔찍할까.
내가 얼마나 징그러울까.

나는 한 번도 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인적이 없다.
늘 웃었다.
마치 처음부터 사랑받고 자란,

해맑고 향기로운 아이처럼.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의 축축하고 지독한 우울들을

자꾸만 뒤로 숨겼다.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가도,
결국 끝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최대한 멀리,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를 사랑하는 내 모습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 날은,
눈부시게 눈이 내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것이 내가 그에게 건넨 마지막 말.


나의 우울도, 분노도, 욕심도 모두 던져버리고
있는 힘껏 웃었다.
최대한 사랑스럽게.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해서.






나의 이름은 '메리'.
열일곱이 되던 해에, 나는 다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은 이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의 이름은 메리다.
메리 크리스마스 할 때 그 메리.
사랑스럽고 어여쁜 사람이 되라고,
내가 나에게 그렇게 지어주었다.

오늘은 2016년 12월 25일.
내가 그를 떠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는

어떤 우연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늘 그랬듯,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그림을 그리고,
그저....
그저 살아내면 된다.



바깥엔 첫눈이 내린다.

익숙한 그 겨울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사랑했던,

사랑스러웠던 나의 하나뿐인 연인이여.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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