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진짜'를 알 수밖에 없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아무리 나를 포장하고, 감추고, '척'을 해도,
원래의 나라는 사람을 절대로 숨길 수 없는
그런 찰나 같은 순간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어떤 행동의 패턴들.
그를 알 수 있는 말의 무게들.
그거 되게 무서운 거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찰나같은 순간들로 상처를 주고,
기대하게 하고,
실망을 안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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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가 없었다.
그 애에게서 내가 느꼈던 찰나의 느낌.
너무 너무 차가워서,
얼음장 같아서,
따뜻하려고 노력하는 그 행동들에게서
조금의 따스함도 느껴지지 않아서,
좀 의아했고, 슬펐다.
그는 늘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냉정하고 싶지만 냉정할 수 없는 나와
따뜻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너.
내가 그 구멍을 메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아주 조금은.
"나는 언니를 잘 알잖아. 오래 봐왔고.
언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못돼.
상대가 작정하고 책임 전가해도,
누가 봐도 상대의 잘못이어도,
언닌 항상
'내가 잘못했나?'
'내 문제인가?'
하면서 미안해하고 안쓰러워했잖아.
그래서 난 그런 사람 안 만났으면 좋겠어.
언니가 언니를 또 자책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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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을 보듬는 것은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었다.
참고, 참고,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재채기처럼 터져버린 나의 순수함도,
이상하게 그 차가움 앞에서는 도무지 힘을 못 썼다.
다 태워버리고 돌아서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것도 감당하지 않으려 하는
그 비겁한 차가움 앞에서,
나는 나를 감히 태울 수 조차 없었다.
작별인사는 언제나 힘들다.
미워했던 사람이라도 더 그렇다.
나는 항상 미련이 많은 사람이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난 늘 마지막 순간을 붙잡고 싶어 했다.
몇 번을 잃어버리고,
울고,
지켜냈다가,
다시 또 홀연했다가
멋대로 사라지고,
망가지고,
그러고 나서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약간의 체념과 의연함.
어떤 변화를 위한 용기.
놓아야 할 땐 놓을 수 있게 된 작은 현명함.
내가 가진 작은 현명함으로
나는 우리를 체념했고, 체념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담백한 끝맺음이었다.
그에게 내가 조금은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기억되기를 바랐으니까.
또한 착각이고, 욕심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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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좋아하던 드라마 한 편이 끝이나도
괜시리 섭섭하고 공허한데,
하물며 사람이라고 오죽할까.
그래.
괜찮아.
절대 내가 이상한 게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