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스의 거리를 걸어 지중해 바닷가로 나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체스 영화제의 들썩이는 어깨와
저 너머 어딘가 마요르카 섬도 가만히 엎드려 있고
해변가 긴 산책로 곳곳에 앉아 숨 고르기 하는 지친 영혼들
길 잃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고개 숙인 인어 동상과 손바닥 맞추기를 하는
중년의 나그네가 있다 반드시
다시 여기에 와야 할 이유는 없지만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줄리엣 동상에 눈길을 흘리며
여기저기 산책하는 강아지처럼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삶은 짧고 시간은 가속도가 붙으니
언제 다시 이 지중해의 작은 도시에 올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아마도 기억이 길을 잃지 않아
한 번쯤 꿈속에서 이곳을 찾아온다면
저기 떠 있는 요트에서 내가 발견될 수도 있겠지
여기 오기까지 내 전 생애가 걸렸으니
마음은 쉬이 길을 떠나지 못한다
제주 바다에 언젠가 다시 간다면
작은 나뭇잎 하나 바닷물에 띄우리라
여기 시체스의 해변에서 뛰놀던 아이가 혹
발견할 수도 있겠지 멀리 극동에서 흘러온 마음의 흔적
스쳐가면서도 문안하지 못하는 이 거리의 이웃들에게
바닷가 이름 모를 성당을 지나며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그대들 삶이 권태로울 만큼 평화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