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by 차거운

여름 내내 집에서 멀리 떠나지 않다가 드디어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기 위한 3차 일정을 시작한다. 스스로 다짐했던 올해 도전 목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울릉도 독도 답사였고 지난 5월에 완료했다. 제주도 올레길 완주는 내년 3월에 한 차례 더 가서 나머지 구간을 완주하기로 마음먹고 있다. 이번에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모두 돌고 나면 또 하나의 약속을 스스로에게 지키게 되는 셈이다. 10여 일에 걸친 일정이라 걱정이 되지 않는 바도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럼 출발하기로 한다. 출발 시간은 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 되었다. 지난 며칠간 집사람이 가서 먹을 음식이랑 남은 아이들 먹을거리를 이리저리 준비하고 챙기느라 잠을 설치다시피 한 것을 알고 있다. 아내가 없는 우리 가족의 삶이 어떠할지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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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여정의 끝지점이 삼화실이다. 하동군에 속한 곳인데 이번 구간은 삼화실에서 시작해서 남원의 인월센터까지 가야 끝나게 되어 있다. 거의 지리산 둘레길 절반에 해당하는 구간이 된다. 지리산 둘레길은 총 289km가량 된다고 한다. 정 선생 집에서 2박을 하고 나머지 일정은 구례 산동면에 있는 더케이지리산호텔에서 5박 6일을 묵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서울을 벗어나는 구간이 생각보다 아주 막히지는 않아서 천안을 지나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준비한 점심을 차에서 먹고 정 선생과 통화하니 우리가 상당히 일찍 도착할 것으로 알고 정 선생이 놀라는 눈치였다. 11시 전후에는 도착할 것 같아 먼저 점심을 먹고 정 선생과 만나기로 했다. 아마 정 선생이 오전에 영업을 하기로 계획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하고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재첩국과 칼국수 다슬기 해장국 등을 추천해 주는데 일단 우리는 하동으로 이동해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남원에서 구례를 거쳐 섬진강을 따라 하동군 읍내로 들어서는 내내 집사람은 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감탄을 연발한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을 떠올리게 된다. 강은 모든 생명을 살리는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존재다. 모든 문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11시 조금 넘겨 하동읍 내로 진입하는 로터리 근처에 있는 식당 가릉에서 다슬기 해장국을 점심으로 먹었다. 특이한 점은 내 고향 충주에서는 된장을 풀고 시래기나 아욱을 넣고 끓이는데 여기서는 맑은 재첩국과 같은 방식으로 부추(정구지)만 조금 띄워서 준다. 국물은 진국인데 아무래도 머슴밥 스타일인 나에게는 양도 그렇거니와 든든한 포만감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약간 아쉬움을 달래며 정 선생과 통화하니 자기 집으로 곧장 오란다. 점심은 어찌했나 물어보니 일하랴 우리 방문에 미리 준비하랴 제대로 못 먹고 빵으로 때우는 게 아닐까 싶다. 혼자 생활하면서 나와 같은 생존지수 바닥인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부실하게 먹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된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스박스 크기를 보고 정 선생이 기함을 한다. 열흘 가까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가 없다. 정 선생 집의 냉장고에도 이미 물건이 가득한지라 긴급한 것 몇 가지만 빼곤 아이스박스 채로 거실에 보관하기로 한다. 짐을 대충 풀고 안방까지 내준 정 선생의 후덕한 마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낯선 곳에서 비빌 언덕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새삼스레 곱씹어 본다. 그래서 우리는 홀로 고립되어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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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의 점심이 부실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옷차림을 여미고 우리는 함께 삼화실에서 서당을 거쳐 하동 읍내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걷기로 한다. 두 대의 차를 갖고 함께 이동하여 지리산 둘레길 하동센터에 들러 스탬프를 찍고 그 근처에 내 차를 두고 정 선생의 차에 셋이 타고 삼화실로 출발했다. 지난 4월에 도착해서 일단 걷기 여정을 멈췄던 곳에 도착하니 분위기는 크게 다를 것이 없고 하동호를 향해 역방향으로 걸었던 그 길들이 새록새록 기억에 솟구친다. 아, 사람이란 이렇게 길에 물들고 풍경에 젖고 기억에 스미면서 한 세월을 살다가는 거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 선생은 왕년의 한문 선생답게 또 현직 개인 택시 기사답게 조곤조곤 다양한 화제를 쉴 새 없이 풀어낸다. 우리 부부만 가면 이렇게 대화가 풍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란 사람은 그렇게 재미가 별로 없을 만한 인물이다. 아무튼 아내도 그런 나에게 불만은 있을지언정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듯하다. 삼화실에서 이정마을을 거쳐 버디재를 넘어 내려가니 둘레길 서당마을 안내소가 자리하고 있다. 음료수를 한 모금씩 하고 대축으로 가는 길과 하동읍으로 가는 길의 분기점에서 오늘의 목표인 하동읍을 향해 걷는다.

지난봄에 중산리 숙소에서 정 선생과 둘레길을 걷고 있다고 통화한 이래 정 선생 역시 토요일마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거의 반 바퀴 이상을 이미 걸었다고 한다. 서울집에 올라가면 또 코리아 둘레길 DMZ 평화의 길을 걷는 계획도 실행해 옮기겠다고 하니 이번 우리가 걸어야 할 구간은 대부분 정 선생은 이미 걸은 곳이고 함께 걷기로 한 구간은 남겨 둔 곳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모레 원부춘에서 가탄 구간을 우리와 함께 걷겠다고 한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한 대로 두 구간을 하루에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를 해준다. 나도 처음 걷는 길이라 일정이 길고 걷기 난도가 높은 구간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 완주를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조금 마음이 복잡해진다. 집사람의 몸 상태가 상반기보다 더 약해진 것 같기도 해서 지난번 울릉도에서처럼 힘들어하면 내 욕심만 부릴 수는 없으려니 각오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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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마을이란 명칭은 참 전국적으로 많기도 하다. 밤골이니 그럴 수밖에. 우리나라에 밤나무 없는 곳이 있겠는가. 바람재에서 큰 개를 데리고 걷기를 하는 여성 한 분을 지나치다가 갈림길을 헷갈려 한참 걷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산에서 가던 길을 되짚어 와야 하는 것은 많이 힘 빠지는 일이다. 하동중앙중학교를 보며 읍내로 내려오니 아침에 갔던 하동 둘레길 센터 근방이다. 내 차를 타고 먼저 하동 송림에서 진행되는 축제장을 들러서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정원도 살펴보고 난 후 다시 삼화실 주차장으로 가서 정 선생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차려 먹었다. 정 선생은 한 끼를 대접 삼아 나가서 외식을 하고 싶어 하지만 폐를 끼치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준비해 온 음식을 먹자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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