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오늘은 숙소에서 얼음을 얼리고 짐도 정리하고 퇴실할 준비를 다 마친 후 짐을 차에 싣고 아침 일찍 삼화실 마을로 출발한다. 우리가 3일을 묵은 이 숙소에 주말을 맞아 등산하러 온 손님이 몇 늘었다. 삼화실 마을에 주차장이 널찍하게 잘 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니 과연 그렇다. 옆에 바로 초등학교가 있고 여기에 삼화실 안내소가 있단다. 오늘은 역방향으로 가야 해서 벅수의 표시가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을 따라가야 한다. 사람의 관성이란 것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늘 순방향으로 돌다가 거꾸로 가려니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오늘 가야 할 구간은 역시 두 구간인데 삼화실-하동호, 하동호-위태까지이다. 우선 삼화실에서 존티재를 넘어 명사마을 거쳐 관점마을, 화월마을, 평촌마을을 통과해서 하동호의 둑길을 올라서면 하동호 도착점이다. 화장실과 주차장이 잘 갖추어져 있고 풍광도 볼 만하다. 물이 그렇게 많이 차 있지는 않고 소수력발전 설비가 있고 호수가 자리한 유역 자체는 꽤 넓게 보인다. 지난번에 비해 날씨와 공기질이 아주 좋은 편이어서 얼굴이 햇빛에 사정없이 타들어간다. 물론 선크림을 수시로 발라주니 나는 괜찮은데 집사람의 얼굴이 시골 촌댁이 되어가서 ‘깜순 씨’라고 놀렸더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 모자를 갖고 왔어야 하는데. 한 시간 차이로 배달이 되다니. 울릉도 갈 때나 커플 모자로 쓸 수 있겠다.
하동호를 끼고 양이터재를 넘어 궁항마을, 오율마을, 지네재를 넘어 위태 마을에 도착했다. 이 길도 산자락을 뚫고 가는 숲길이 가장 좋다. 대나무가 우거진 길도 좋고 오솔길 같은 구간도 좋은데 배수로를 덮은 낙엽을 깔끔하게 치운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져서 사진으로 몇 장 찍었다. 산림청과 사단법인 숲길이 지리산 둘레길을 관리하는 주체인 것으로 아는데 보이지 않게 이정표를 관리하고 길을 살피고 낙엽을 치워 배수로를 관리하는 노력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배려를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무엇이든 삶에서 혼자 독불장군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사회를 겁박하는 태도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데 가진 자들,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거친 목소리와 유무형의 갑질은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고 비참하게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위태에서 삼화실까지는 25,000원을 주고 택시로 이동했다. 이렇게 해서 2차 둘레길 걷기 여행을 통해 지리산의 거의 반을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정 선생에게 연락하니 하동 구간을 걸을 때는 자신의 집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리라고 한다. 그래도 될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자신도 한 구간 정도 함께 걷고 싶다고도 하니 그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삼화실에서 뱀사골 야영장까지 거의 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고 안내가 나와서 놀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하동읍을 지나 구례를 통과하여 남원으로 가서 인월 거쳐 산내면으로 들어가니 그 거리가 만만하지 않다. 아, 이렇게 지리산의 품은 광활하구나. 그걸 걸어서 한 번 돈다는 것은 참으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지 싶다. 건강이 허락할 때 해볼 수 있는 일이겠다. 뱀사골 야영장에서는 저녁 식사만 하고 내일 아침은 생략하고 바로 집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서사 중독증으로 ‘눈물의 여왕’을 루프탑 텐트에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드라마를 한 번 써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