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 2024년 4월 21일, 4월 24일, 4월 25일

by 차거운


4월 21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 먹고 플라이를 걷고 텐트를 접고 바로 출발하기로 한다.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고 최대한 서둘러 집에 도착하니 시간이 11시 조금 넘었다. 빨래를 하고 정리를 하고 어수선하지만 휴식도 하고 저녁 6시 청년 미사에 참석하고 드라마를 보고 1차 둘레길 걷기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리산 둘레길 22구간 중에서 3구간을 걸었고 하루는 관광을 했고 캠핑도 하는 등 나름대로 알차게 보냈으며 지리산 둘레길 걷기에 대한 감각을 조금은 잡을 수가 있었다. 내일 월요일, 화요일 이틀을 쉬고 2차 둘레길 걷기를 24일에 또 떠나려고 한다. 집사람도 함께. 한 번 다녀와서 그런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조금 감을 잡을 수 있게 된 셈이다.


4월 24일 수요일.

지난번 일정을 통해서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일에 대한 요령과 함께 적절한 준비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터득할 수 있었던 셈이다. 집에서 아이들 먹을거리를 챙겨두고 10시 40분쯤 출발했다. 같이 커플 모자를 쓰려고 주문한 것이 배달 문제로 도착하지 않아 집사람은 모자 없이 가기로 했다.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이번에는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오후 4시 넘어 3일간 예약한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지리산 00 펜션에 도착했다. 평일이고 사람이 없어서인지 다소 활기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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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겸 숙박 사무소 역할을 하는 곳에 계신 분에게 싱크대가 있는 방으로 변경을 부탁하니 사장님과 통화 후 예약한 방이 아닌 같은 규모의 302호실로 바꿔주었다. 싱크대가 있고 냉장고가 제법 큰 것이 있어 만족스럽다. 금계마을의 민박보다 더 좋아진 셈이다. 물론 비용이 그만큼 더 나가긴 했지만. 결국 둘레길을 걷고 여행을 하는 것에도 비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건강에도 좋고 시간을 보내기에도 생산적인 측면이 있는 데다가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여행은 살면서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다른 부분의 과소비나 지출을 절약하면 1년에 한두 번 제한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가능할 정도의 비용은 염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편안함을 추구하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불편함과 낯섦과 돌발적인 상황들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삶 자체도 그러하겠지만.


4월 25일 목요일.

오늘부터 시작되는 걷기 일정에서는 지난번보다 좀 더 짜임새 있게 걷기를 계획해 본다. 하루에 2구간씩을 규칙적으로 걷기로 한다. 중산리 숙소에서 지난번 마무리 지점인 수철마을까지는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그만큼 멀다는 것이겠지. 오늘 걷는 구간은 수철-성심원, 성심원 운리까지 두 구간이다. 수철마을에서 주어진 이정표를 따라 걷다가 선녀탕을 거치지 않고 지나는 길을 택해 성심원에 도착해서 간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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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은 짐작대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었는데 나환우가 생활하고 있고 지역 요양센터와 피정 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프란치스코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이런 시설이 자리 잡고 지역사회의 인정을 받기까지 나름대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에서 사회적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을 묵상하게 된다. 음성에서 시작된 꽃동네가 세계 곳곳에 퍼져 있고 소록도의 나환우 시설에서 봉사하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사람의 수녀님들의 존재도 생각난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타인을 위한 봉사에 투신한 사람들은 자신의 몫을 신으로부터 분명히 받게 될 것이다. 위대함은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이 끝난 뒤에야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이웃 사이에 성자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화두가 아니겠는가. 지금 가자지구나 미얀마, 수단, 우크라이나 등등 많은 분쟁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고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봉사자들이나 다른 선의의 봉사자들이 희생되는 사례들을 통해 이웃을 위한 순교를 보게 된다. 그런 것이 진정한 순교이지 폭력을 수단으로 싸우는 권력 투쟁의 싸움을 순교라고 미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는 의정 갈등의 상황에서 국민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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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에서 운리까지 가는 길은 난도가 꽤 높은 구간이 있다. 웅석봉 하부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산길이 가파르게 이어져서 힘들었다. 그 고비를 넘어서면 내려가는 길이 쭉 이어진다. 헬기장 직전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옛날 겨울철 도시락 방식으로 밑에는 김치 볶음 양념이 된 부분을 깔고 위에 밥을 덮은 형태로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이고 든든하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에 아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고 행복하다. 보통 이런 길을 따라나서려고 하는 여자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내 건강을 염려(?)해서 걸어준다고 하는데 나름 걷는 자세가 나보다 더 단단해 보인다. 어쨌든 아내 덕분에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잘 먹고 잘 쉬고 걷는다. 제주 올레길에서부터 이런 호사를 누리다 보니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남들이 들으면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 아닐까.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은 구한 것이 맞겠지(?) 아닌가.

운리마을에도 주차장이 꽤 잘 조성되어 있다. 운리에서 수철까지 가는 택시비는 28,700원 미터기로 찍은 요금을 정확하게 내보기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만난 개인택시 기사님들은 퇴직한 분들이 많고 퇴직 후에 노후 대책으로 택시를 시작한 분들이다. 나름대로 지역에서 오래 터를 닦은 분들이 그대로 정착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일인데 내 친구인 정 선생을 떠올려보니 그런 선견지명이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결심으로 백수가 되기를 선택했으니 다소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다. 큰소리친 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남이 읽어줄 만한 그런 글을 말이다. 수철마을에서 차를 회수하여 오다가 덕산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왔다. 발이 화끈거린다. 내일도 걸어야 하는데 체력이 이래서야 하는 자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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