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2일에서 3일까지(일요일-월요일)
작년에 제주에 보름을 갔었다. 그리고 꼭 1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 다시 제주 한달살이를 내일 떠나게 되었다. 퇴직을 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제주도 올레길을 1/3 정도 걸었고 지리산 둘레길을 4월에 두 차례, 10월에 길게 한 차례 가서 완주하고 완주증을 받았다. 하동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정00 선생 집에서 3일 정도 숙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5월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다. 우여곡절 끝에 독도의 선착장에 닿았을 때는 참 가슴 벅찬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부성당의 영성센터에서의 7박 8일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6월에는 행정실 정00 과장 결혼식이 목포에 있어서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의 세월호 선체를 방문하는 일정을 함께 넣어서 증도의 엘도라도 리조트와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전장포구 등을 거쳐 오기도 했다. 8월에는 경주와 포항을 결혼식 참석 겸 다녀왔고 추석에는 처고모부님의 황망한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이렇게 금세 지났고 책도 읽고 이렇게 일기나 기행글도 정리하고 하면서 보냈다. 아직 나이가 있어서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최대한 시간을 자유롭게 확보하여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날들을 경험하고 싶다고 여전히 희망한다.
2024년 연말인 12월 3일에 느닷없이 현직 대통령에 의해 선포된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계엄은 이런 일상적 흐름에 엄청난 파열음을 내게 만들었다. 이 사회 전체에도 핵폭탄과 같은 파괴적인 후폭풍을 발생시켰고 박근혜 정권 때와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상식이 배반당하고 논리가 무너지고 억지와 폭력이 사회적 문제 해결의 도구인 것처럼 횡행하는 불면의 밤들을 초래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무언가 위태위태하더니 결국 이렇게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타인에게 칼을 겨누는 검사는 그 칼날을 자신에게 돌릴 각오를 하여야만 그 하는 일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거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말과 특정한 인물을 정치적 입신의 발판으로 삼아 대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어 올라선 현직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결국 친위적 성격의 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하느님께서 이 민족에게 자비를 베푸셨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그날 국회에서 군대에 맞서 의사당을 지킨 시민들. 국회 담을 넘어 회의장으로 들어간 국회의원들. 80년 광주에서처럼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그나마 소극적으로 임한 군인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이 지난 재판과 변론 과정에서 드러났듯 그 밤이 그대로 새고 날이 밝았으면 우리가 직면했을 지옥 같은 폭력의 시간과 피의 시간들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순간의 갈림길이 이 사회에 가져왔을 질적인 변화들과 타락으로의 내리막길. 누군가는 같은 하느님을 들먹거리면서 계엄을 옹호하고 두둔하지만 나는 그런 자들의 목소리를 인정할 수 없다.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시지 폭력과 독선과 아집의 목소리를 옹호하는 근거로 될 수가 없다. 거짓 예언자들. 거짓으로 일관된 정치인들. 눈먼 자들이 눈먼 자들을 인도하면 모두가 구렁텅이로 빠지는 법이다.
이런 무거운 마음을 갖고 제주로의 출발을 앞두고 있을 때 강풍으로 인해 3월 3일 3시경에는 배가 뜰 수 없어 새벽 00시나 2시 중에 선택할 것인지 전화가 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확실하게 떠나기 위해 자정에 떠나는 걸로 답변을 하고나니 그때부터 정신없이 출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짐을 챙겨서 싣다 보니 짐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입을 것 먹을 것 등을 포함하니 많기도 하다. 시간에 맞춰 완도항에 도착하려고 오후 2시가 지나 출발하였다. 아들내미 먹을 것이랑 우리가 먹을 것을 미리 얼리고 준비하고 하느라 아내가 거의 2주 전부터 부산스럽게 새벽마다 움직였다. 딸내미는 제주공항에서 3일 저녁 6시쯤 만나기로 했다. 완도까지는 참 멀다. 그래서인지 완도에서 제주로 넘어가는 시간은 카페리라는 점을 감안해도 2시간 4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어쩌면 차를 싣고 가는 거리로서는 체감적으로 가장 빠른 것 같다. 물론 이는 다른 곳에서 가보지 않은 한계가 있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밤에 운전하는 것이 점점 힘들고 두려움마저 생긴다. 어쨌든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금과옥조처럼 따르면서 이리저리 길을 갈아타면서 완도항에 도착하니 10시 조금 넘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하나 먹고 차량을 선적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조금 지루했다. 자연의 위력은 이렇게 사람의 삶의 규칙성을 교란하곤 한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점을 늘 상기시킨다. 배가 조금 흔들리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워낙 큰 배라 대형 화물차도 수십대를 싣다 보니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후포항에서 울릉도를 갈 때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익숙해서 그런가.
제주항에 도착해서 숙소로 바로 직행한다. 전화해서 조금 먼저 입실할 수 있는지 문의했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서 짐을 풀고 현관 비번을 다시 설정하는 등 새로운 숙소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이다. 일찍 도착해서 시간을 하루를 거의 번 셈이다. 방 두 개에 화장실 두 개, 세탁기가 있는데 기대했던 건조기가 아닌 건조대여서 다소 실망을 했고 창문이랑 거실 새시의 잠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전 문제가 다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이소에 가서 창문 열림 방지 장치를 2개 사서 고정시켰다. 숙소는 협재해수욕장에서 직선으로 중산간을 향해 올라오면 금방이다. 근처에는 작년에 동료 선생님들과 퇴임 기념으로 왔을 때 묵었던 ‘000 콘도’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와락 든다.
2층으로 된 단독 형태의 타운하우스 같은데 1층에 한 가구 2층에 한 가구를 빌려주는 것 같고 동일한 구조의 집이 연달아 네 채 정도가 있고 또 추가적으로 패널 구조의 작은 집에 두세 채 더 있다. 이름하여 협재 0000 펜션이라고 할 수 있고 에어 비앤비를 통해서도 장기 대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손님들이 계속 교체되는 느낌을 받았고 2층에는 하루 이틀 뒤부터 우리처럼 한달살이를 하는지 장기 손님이 묵어서 나란히 주차를 하게 되었고 간단히 눈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떠나오는 날 새벽에 그분들도 떠난 것 같았다.
한 달 숙소 비용이 160만 원 조금 넘고 공과금을 위한 보증금 30만 원을 추가로 송금했다. 완도 제주 왕복 비용이 거의 40만 원 정도 하니 일단 230만 원 정도를 기본적으로 미리 지출한 셈이다. 여기에 00이 비행기 운임, 처형들 3박 4일 000 콘도 숙박비 등이 추가로 들었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먹고 쓰는 부대 비용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총지출이 350만 원 조금 넘었다고 정리가 되었다. 이마저도 집사람이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싸서 점심값을 절약하고 하는 노력을 한 덕분이기에 아마 이런 조건이 아니라면 비용은 대폭 늘어났을 것이다.
용두암 주차장 앞 카페에서 대기하다가 저녁에 00이를 제주공항에서 데리고 숙소로 왔다. 서른 먹은 딸내미가 아직도 취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방에 책상이 변변하지 않아 집사람이 제주 숙소로 작은 책상을 주문했다. 사람 사는 일의 이 복잡함이란. 그렇지만 다음날부터 아주 좋은 묘책으로 떠오른 것이 한림읍에 한수풀도서관이 있어서 여기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다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 우리는 한수풀도서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00이는 여기서 책도 여러 권 빌려서 보았고 우리 내외도 아이에 대한 걱정 없이 우리 일정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아침 8시에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밤 10시쯤에 데리러 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도서관은 월요일에는 휴관이어서 우리도 월요일에 맞춰 쉬기로 했다. 다시 제주에서의 봄이다. 그러나 '춘래불사춘'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