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5일 수요일
00이를 한수풀도서관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체류지에서 지도상으로 가장 먼 거리에 해당할 광치기해변으로 이동했다. 광치기해변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종점에 해당하는 온평포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이 익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떤 곳에 대한 인식을 온전하게 하려면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점에 해당하는 특정한 지점을 위주로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 점과 점 사이의 이동 과정 자체가 선적인 측면을 띠게 되면서 비로소 온전한 지리적 인식이 자리하게 되고 거기에 시간적인 변화 즉 문화적인 변화까지 체험할 수 있다면 더 온전한 이해가 될 것이다.
제주의 자연과 제주 사람들의 삶을 4.3.과 일제강점기,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혹은 오늘 걷는 혼인지의 전설이 닿는 시절까지 확장해서 이해할 수 있다면 제주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다가올 것이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바로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같이 제주의 아픔을 글로 기억하는 작업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가 제주를 여행할 때 바로 이런 인문학적이고 역사적인 맥락까지 같이 읽어낼 수 있다면 조금 더 뜻깊은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 올레길은 천천히 걷고 제주의 구석구석을 살뜰히 살핌으로써 이런 요소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제주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못지않은 자산으로서의 올레길의 가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 올레길을 처음 여는데 기여한 서명숙 사단법인 올레 이사장은 제주인에게 두고두고 감사를 받게 될 것이다.
식산봉을 거치고 족지물을 굽이굽이 돌아서 길은 대수산봉 중간 스탬프 지점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멀리 일출봉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이러니 '제주에 푹 빠졌수다.'라고 혼자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산불 감시초소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우리 내외의 사진을 찍어 주신다. 나는 사진발은 영 꽝이다. 자연을 찍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영화배우 안 하길 잘했다. 했으면 굶어 죽었을 듯. 하하.
온평포구를 향해 다가갈 즈음 혼인지가 나타난다. 이번 제주 올레길 걷기를 통해 그전에 알뜰하게 살펴보지 못했던 명소들을 차분히 둘러볼 수 있었던 경험을 하게 된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그런 점에서도 올레길은 꼭 한 번쯤은 걸어보기를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산티아고를 걷기 전에 올레길을 걷기 바란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좋은 길이 있지 않은가. 환해장성을 곁에 두고 종점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주차된 차를 찾으러 간다. 지리산 둘레길에 비해 제주의 올레길은 대중교통 이용이 아주 유리하다.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택시비가 상당히 많이 들었다. 이런 점은 많이 아쉽다. 그런 점에서도 올레길은 경쟁력이 있는 셈이다. 특히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 유치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