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칼적 영혼의 불꽃
분도출판사에서 발간된 시집 크기의 책을 읽었다. 에릭 스프링스티드에 의해 편집된 시몬느 베이유(1909-1943)의 텍스트가 담겨 있다. 그녀에 대해서 애정과 관심을 가진 학자에 의해 신뢰성 있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처음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쉽게 읽히는 책만은 아니다. 간절하고도 끈질긴 갈망을 지녀보지 못한 사람은 그녀의 글을 진정으로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녀의 글에서 나는 유사한 파장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주관적인 생각이니 너그럽게 이해하기를 바란다. 파스칼의 <팡세>에서 들리는 목소리 같은가 하면 또 토마스 머튼의 일기 등에서 발견되는 인식을 생각하게 한다. 유다인의 배경을 지니고 있으면서 중산층적인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수 자격을 받고서도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사회주의자적인 실천과 투신을 하였으며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다가 화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파스칼적인 회심의 계기들이 있어 가톨릭적인 신앙에 마음을 열고 이를 바탕으로 깊은 성찰이 담긴 글들을 남긴 사람이다. 1943년 영국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기에 짧다면 매우 짧은 생을 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에는 뭔가 모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열정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영적 불꽃이 밝게 타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이 세상에서 몇 해를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얼마나 치열하게 살다 가느냐가 사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풍문으로만 듣던 한 영혼을 만나게 되었다. 시몬느 베이유,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지금은 귀를 기울여 들을 시간이다. 나를 이끄는 모든 선한 목소리들은 나의 스승이므로.
그녀의 체험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 변화의 결과는 그 이후에 제시된 말과 글, 특히 그녀의 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선 주목할 만한 사실 하나는 파스칼과 같이 초자연적인 그 무엇에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이며 이성적인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차원에 대해서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필연성의 측면을 아주 냉철하게 인식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구원이 고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특징적이다. 자신을 비움과 신의 사랑에 대하여 수용적인 승인의 자유가 인간에게 허용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어떤 영성가의 글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의 실존적 구원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절실하고 간절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지막 대세의 권유를 거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고통은 한동안 신의 부재를 초래한다. 텅 빈 가운데서도 영혼은 계속해서 사랑하거나 적어도 사랑하기를 원해야 한다. 영혼이 사랑하기를 멈춘다면 그것은 이승에서조차 거의 지옥과 맞먹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58-59쪽 부분 발췌)
신의 은총이 인간의 중심을 관통하여 모든 존재를 비춤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 없이 물 위를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신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는 중력이 법칙을 따르게 된다. (66쪽)
인간은 결코 신에 대한 순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은 순종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설사 순종을 원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영원토록 구조적 필연성에 지배받는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순종하게 된다. (68쪽)
고통은 특정한 사건의 빛깔이다. 붉은 잉크로 쓰인 문장을 볼 때 그것을 읽을 줄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똑같이 붉은 무엇임을 안다. 그러나 붉은 잉크라는 사실이 어떤 이에게는 중요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고통을 견뎌 낼 적마다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 그리고 신의 창조에 대한 순종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선물을 보내신 사랑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가장 아름다운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70쪽)
고통은 신의 놀라운 기술이다. 맹목적이고 무자비하며 냉혹한 힘으로 유한한 피조물의 영혼을 사로잡는 간단하고 교묘한 장치다. 신과 피조물을 떼어 놓은 무한한 거리는 영혼의 중심에 내리꽂히는 이 점으로 집중된다. 이 놀라운 차원에서 육신을 구속하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지 않고도 영혼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신의 현존으로 다가간다. 피조물과 창조주가 교차하는 그 지점은 십자가 가지의 교차점이다.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