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펜 케른, <희망하는 인간>을 읽고

- 호모 스페란스

by 차거운

일찍이 루쉰은 희망이 길과 같다고 했다. 길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꾸준히 걸어가면서 만들어지듯 희망 역시 사람들이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한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이 든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마지막에 세상으로 풀려난 그 무엇이 희망이기도 하다. 희망은 그렇게 뒤에 온다. 천천히 고통받고 아파하며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온다. 환희에 차서 득의양양한 사람들은 희망의 가치에 눈을 잘 돌리지 않는다. 희망은 결핍되고 결여된 그 무엇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에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그 무엇이다.

1973년에 태어나 독일 튀빙겐에서 살고 있는 목사인 저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간직한 희망에 대해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의 영역에 몸 담고 있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상황과 관련하여 논쟁적이거나 설득적인 태도가 아니라 경험적인 차원에서 내적 고백을 하듯 담담하게 그러나 확고한 목소리로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다. 학술적이거나 각주가 많이 달린 그런 책이 아니며 얼핏 생각하면 그렇고 그런 희망에 대한 흔한 이야기라고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독화살을 맞은 사람에게는 그 화살에 대해서 누가 어떤 의도로 쏘았는지를 따지기보다 먼저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부처의 가르침처럼 실존적이고 절박한 고민을 하는 처지라면 이런 고요함과 단단함을 지니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반가움과 놀라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온통 위기 담론이 세상을 횡행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조급함과 공포와 혼란으로 잠식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이토록 견고한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며 그것을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놀랍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 등등 인간을 규정하는 많은 정의들이 존재해 왔다. 이제 하나 더 추가할 필요가 있겠다. 호모 스페란스(희망하는 인간). 얼마 전에 읽었던 프란치스코 교종의 자서전 <희망>에 담긴 생각들과 많이 겹치는 내용들이어서 놀랐고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의 60여 년에 걸친 삶에 대한 탐색의 결과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더욱 인상적이다. 이 요란한 시대에 단단하게 대지에 발을 붙이고 눈을 들어 또 다른 차원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야말로 인간에게 필수적인 덕목이 아닐까 한다. 삶에 대해서 긍정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며 고통에 직면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각자는 자신의 내면에 어떤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꿈꾸는 것 혹은 희망하는 것의 목록이나 내용이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고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질문이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에게 여유롭게 좌고우면 하면서 성찰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고 있는 인류는 다양한 위기들에 쫓겨 미래에 대한 낙관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잃어버린 채 종말론적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간단명료하면서 자기 최면이 아닌 진정한 삶의 근거 행동의 근거가 될 만한 답을 갈망하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확실성에 기초해서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내적인 확신으로서 고백하듯이 제시하고 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일지 아닐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다.

그리스도교인으로서 그는 희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도 있고 희망 없이 살 수도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 사는 것은 진정한 삶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삶은 생기를 갖게 될 것이다. 희망은 사람을 행동하고 살게 하지만 절망은 사람을 얼어붙게 할 뿐이다. 경제적인 차원의 사업이나 사회적인 약자와 동행하는 삶 등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선택하거나 만들지 않았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그래서 인간의 결핍을 궁극적으로 구원할 희망은 밖(신)에서 온다. 불완전한 세상을 견디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짐을 스스로 완벽하게 지려는 오만함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도 한다.


* 세상에 필요한 교회는 강하거나 부유한 교회가 아니라 영적인 교회다.(87쪽)
* 하느님을 더욱 의식하고, 자신은 잊어야 한다! 하느님이 창조주시며 계속 활동하신다는 것을 믿자.(90쪽)
* 뉴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상처 입은 동물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동물처럼 물어뜯을 듯이 의사소통해서는 안 되며, 희망하는 사람답게 해야 한다.(96, 97쪽 부분 발췌)
*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든 게 아님을 깨닫는 것이 은총 체험이다. 이렇게 해서 창조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107쪽)
* 사람은 시작과 끝을 조망할 수 없다. 인간 실존의 의미는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데에 있다. 단지 어제와 타협하고 오늘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앞을 향해 나아간다.(119쪽)
*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많은 결정이 분명해진다. 사람들이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게 내버려두지 말자. 노숙인들이 도망가다가 얼어 죽게 내버려두지 말자. 이방인을 문밖에 세우두지 말고 안으로 들이자. 장애나 제약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게 내버려두지 말자. 이것이 인류의 계명이자 하는님의 계명이며, 희망의 계명이다. 희망에는 세상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222, 223쪽 부분 발췌)


이 책은 살아가는 태도와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희망이 꼭 필요하다고 그렇게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오늘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에서 뒤늦게 나온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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