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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an 18. 2021

눈 온 날 창가에 앉아

눈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

오늘 아침에 눈이 또다시 펑펑 쏟아진다. 올 겨울 눈이 자주 내린다. 겨울답다.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 따뜻한 창가에 앉아 창밖의 부산한 사람들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거나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늘 꿈꿔왔다.


나는 오늘도 휴가다. 드디어 로망을 이루게 되었다. 마침 눈이 내렸고 휴가기간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앉아 뜨개질 감을 만지작 거린다. 겨울엔 뜨개질이 어울린다. 직장 다니다가 맞은 휴가기간에 눈이 펑펑 내리는 바로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가에 앉아 뜨개질을 하면서 눈 내리는 바깥을 구경하는 것을 늘 꿈꿔왔다. 평소 이 시간이면 창 밖의 사람들처럼 늘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겠지 싶다. 오랜만의 게으름을 만끽한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도 눈이 내린다고 한다. 그게 나의 행복을 불안으로 만들고 있다.


딸과 나에게는 겨울의 눈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다.  눈만 내리면 나는 출근하는 딸을 걱정한다, 불과 3년 전, 딸이 입사해서 얼마 지나지 않은 혹독한 겨울이었다. 서울에 폭설이 내리기 보름쯤 전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 동료의 딸이 언덕길 위에서 내려오던 빈 차에 부딪혀 공중 부양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주가 언덕 위에 차를 주차한 후 브레이크를 잘 걸어두지 않아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루 동안 의식이 없던 아이는 다행히 그 후 치료해서 완치되었다. 그 아이는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던 중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딸에게 전화를 했다. 길 갈 때 휴대폰도 하지 말고 옆사람도 보지 말고 주변 잘 보면서 걸으라고 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이었다. 서울에 눈이 펑펑 내렸다.



엄마, 나 119 구급차 타고 병원 가


출근길 주거하던 룸 앞의 빙판에서 쭉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진 것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보호자가 없으면 입원 수속이 어렵다고 했다. 그 시각 작은 딸은 대학에서 시험을 치르던 중이었다.


강남세브란스 병원에 등록하고 입원하여 그곳에 명의로 계신 친척에게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4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발목이 완전히 부러졌다. 게다가 단순 골절이 아닌 복합 골절이라 수술에 시간이 걸렸다. 한쪽 다리 양쪽 발목 부분에 12센티가량의 수술 자국이 남게 되었지만 수술은 잘 되었다. 의사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어려운 수술을 어찌 그렇게 잘하시는지 병원에 소문이 자자했다. 입원 해 있는 동안 환자들로부터 친척 교수님을 칭찬하는 소리만 들었다.


그때 우리 둘 다 모질게도 힘들었다. 연말이라 아이의 회사도 나의 직장도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딸은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 안절부절이었다. 그럴 때 참 서럽다. 딸이 갓 입사해서 의욕이 충만하던 차였다. 동료와 친밀감이 형성되기도 전이기도 한 데다 모두 바쁜데 딸의 일까지 그들에게 얹힌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연말에 자기 일을 남에게 맡겨야 하니 병원에서도 업무 관계 통화를 하느라 애썼다. 업무가 기밀에 속하니 가져와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을 못 하니 좌불안석이었다.


나 역시 내 일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딸은 최소한도로 입원했고 나는 전주에서 서울을 왕복하게 되었다.


KTX를 타고 서울에서 전주로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다시 KTX를 타고 퇴근해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며칠을 한 후 며칠은 휴가를 내고 간병했다.


우리 둘 다 그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6인실에서는 잠을 잘 수도 낮에 쉬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날 아픈데 옆의 골절환자들 할머니들 때문에 쉬지

못하는 딸을 보다가 나는 일을 냈다.


커튼을 사면으로 치고 우리 둘이 이어폰을 낀 후 내가 딸 앞에서 춤을 췄다. 입모양 노래, 무음 노래를 하며 춤추는 내 모습에 딸도 웃으니 내 기분도 훨씬 나아졌었다. 도저히 힘들어서 결국 2인실로 옮기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다 달으면 또 어찌어찌 빠져나올 궁리를 하는가 보다.


우리는 그렇게 그 시간을 견디었다. 지금도 발목이 시큰 거린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아프다.


그 일을 계기로 눈이 내리면 강아지처럼 좋아하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이제 눈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비가 좋다. 눈이 예쁠 때는 우리 가족 모두가 집안에 앉아 평화롭게 쉴 때다. 또는 서울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거나 아이들도 쉰다거나 하면 안심이다. 그 순간은 전주의 눈이 더없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때 나는 내가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덤으로 휴가 상태일 때라면 웃는 마음으로 눈을 껴안는다.


엄마, 서울은 그렇게 눈이 많이 안 내렸어.
출근했어.


아, 이제 안전하게 도착한 딸의 메시지를 보니 안심이 된다. 나는 이제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뜨개질이나 해야겠다. 세상 행복한 여자가 된다.


아이들 어릴 적에 뜨개질을 많이 해줬다. 남은 사진은 몇 장 되지 않는다. 첫 아이 때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다섯 살 터울 둘째 때 그나마 몇 장 사진을 남겼다. 내 자랑을 아주 조금만 하자면, 그 당시 뜨개방에서 내 뜨개 옷을 사려고 했다. 나는 책을 보고 참조한 후 내 아이에 맞게 다시 창조하는 방식으로 뜨개질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는 수줍음이 많았는데 이 날 한 장에 백 원 주고 모델을 세워서 찍은 것이다.

오른쪽 모자와 가디건 뜨개 옷. 우리 예쁜 딸들이 이젠 다 자랐다. 언제나 웃는 아이들 보면 행복하다.


아이들은 자랄 때 실컷 뜨개 옷을 입혀서인지 이제 모자를 떠 준다고 해도 마다한다. 아무도 마다하니 나는 내 것을 만든다. 해마다 겨울이면 금방 끝낼 수 있는 것으로 그만인 내 모자를 뜬다. 나는 키가 작다. 그런데 얼굴도 작아서 모자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해마다 모자를 뜨기 때문에 사진에 있는 것보다 더 많다.


색색의

모자를

매일 바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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