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걷고 마시고 걷고
늦은 오후 군산으로 향한다. 지인들이 '보리 굴비'를 먹자 한다. 굴비를 구워 주나 보다 생각했다.
자리에 앉으니 따뜻하게 데운 녹차를 넓은 그릇에 낸다. 여름에는 냉 녹차를 준단다. 그래서 이건 뭘까 여쭤보니 밥을 말아먹는 것이라고 한다.
보리굴비도 나왔다. 내가 상상했던 형태가 아니다.
굴비를 잘게 찢은 후 살짝 튀긴 형태이다. 소스에 찍어 먹는 반찬인 것이다. 굴비가 뒤끝이 비린 맛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녹차밥을 함께 먹는 것이란다.
고소하고 쫄깃하면서도 질긴 기운 없이 맛있다. 구운 황태 비슷한 맛이다.
녹차에 밥을 말아먹으니 한결 개운하다. 녹두전도 주문해서 동동주와 함께 한잔 한다. 지인들은 건배만 하고 입만 댄다. 나만 두 잔 마신다. 결국 남은 동동주는 가져가는 걸로. 그래도 전이 있으면 막걸리나 동동주가 곁에 있어야 음식궁합이 맞다.
녹두 피를 제거하고 알갱이로만 만든 녹두전은 육안으로는 밀가루 같지만 맛은 녹두 맛이다.
오후 2시 넘어서인지 손님이 없어 우리 셋이 구석에서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참으로 오랜만에 외부에서 식사를 했다. 밖에 나오니 근처에 빵카페가 의리 번 쩍 하게 있다. 나는 빵 배가 따로 있다. 그쪽으로 발이 가려고 하는데 호수공원을 가야 한다면서 나를 잡아 끈다. 오늘 우리를 이끈 주동자가 호수공원 돌고 오면 빵을 사주겠다는 말에 얼른 걷자고 했다.
호수공원은 과거 유원지였다. 이제 명칭을 바꿔 은파호수공원이 되었다. 날씨가 영상의 기온으로 햇볕이 좋았다. 그러나 눈 내린 호수는 아직 단단히 얼어있다.
언 호수 위 오리배 하나가 얼어붙어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다.
오늘은 하늘이 청명하다. 메타세콰이어 나무 같은 나무들이 곧장 하늘로 솟아오른 모습이 아름답다.
호수 위로 난 길을 걷다가 도로를 따라 걷는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이 곳에서 분수쇼가 화려하다고 한다. 물고기들이 놀라겠다.
방금 오리배가 지나간 듯이 호수 위에 길이 나 있다.
이제 호수를 왼쪽에 끼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대숲이 보이면 올라가면 카페가 나온다.
군산 커피 100년을 자랑하는 글처럼 오래되고 맛있는 커피점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여기서 커피 한잔과 박완서 문학을 조금 이야기한다. 카페는 이제 한 시간 앉아있기가 가능하다. 여하튼 코로나로 사람이 많지 않아 역시 구석에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 마실 때만 마스크를 벗고 담소할 때는 쓴다. 이런 식으로 마스크 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독감 환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미세먼지도 줄었다.
다만, 마스크 부직포가 환경에는 좋지 않아서 그게 조금 신경 쓰인다. 천으로 여러 개 만들어서 사용했다. 그런데 천 마스크가 일반 마스크보다 제 역할을 못 한다고 하니 결국 시판 마스크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제 우린 다시 원위치로 가야 한다. 그런데
저렇게 먼길을 다시 가야 한다고요?
아, 난 속았다. 어른 걸음 한 시간 걸린다더니 나 같은 사람은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릴 거리다. 벌써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거의 원위치에 오니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저 멀리 커다란 기와집에 불빛이 요란하다. 명인의 빵집이라 한다. 그런데 상당히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위치하며 대궐 같은 규모에 눌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어디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올라간다. ‘안영순’ 명인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빵집이다.
규모와 빵의 종류에 일단 놀랐다. 다 찍지 못하고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것만 찍는다. 가져와서 맛을 보니 한결같이 맛있다. 군산 빵집 하면 ‘이성당’인데 요즘에는 이 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들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동네 빵집도 40년 넘은 장인이다. 이 곳의 으리으리한 규모가 부럽기도 하겠지만 우리 동네 빵집 사장님께도 엄지 척을 해 드리고 싶다. 제빵을 홀로 지금까지 해 오셨다. 이곳은 이 많은 빵을 명인 혼자 만들지는 않으실 것 같다. 물론 그분의 노하우가 중요할 것이다. 맨 아래의 하얀 시폰 케잌은 오래전 백설 빵을 떠 올리게 한다.
주차장에서 본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 노을은 언제나 조금 슬퍼 보인다.
차에 타서 보니 깜짝 놀랐다. 유리창 색으로 인해 노을이 핑크빛이 되었다.
금세 다녀오면 된다는 말에 신나서 따라갔다가 돌아오니 칠흑 같은 밤이 되었다. 아이고, 다리가 너무 아프다. 맨소래담을 여기저기 바르고 핫팩을 붙인다.
'요즘 운동을 너무 안 했어'하고 자책한다. 역시 매일 조금이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니 좋았다. 영화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 책모임 회원들처럼 소통의 즐거움을 느낀 하루였다.
일제시대 수탈의 장소였던 임피 폐역에 역사관이 들어섰다고 한다. 역사의 현장인 임피역에 가 보고 싶었는데 차후로 미루기로 한다.
보리굴비에 대한 설명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