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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Sep 14. 2020

밥이 뭐길래

도시락

“밥은 먹었어? 오늘은 뭐 먹을 거야?”


딸들과 통화를 하면, 먼저 밥 이야기부터 하게 된다. 실컷 전화해서 겨우 밥 먹었는지 서로 물어보는 게 거의 전부인 경우도 많다. 나에게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살겠다는 의지이다. 또한 미각뿐 아니라 신체의 온 기관을 즐겁게 해서 때로는 짜증과 고통도 잊게 해 준다. 특정 음식을 떠 올리기만 해도 추억이 덤으로 기억되어 나를 슬프게도, 기쁘게도, 마음 아프게도 하며, 때로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백미 김밥이 좋을까? 흑미 김밥이 좋을까?


그런데 직장인으로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전쟁터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먹을지 신속하게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게다가 여럿이 함께 먹는 경우, 마스크를 벗고 먹다 보니, 거리감이 있다 해도 심리적으로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체할 지경이다.


일주일 중 세 번은 주문 도시락을 먹고, 나머지는 개인 도시락을 싸 오기로 했다. 그러면 또 주문은 어디에 해야 한단 말인가? 정보에 능한 젊은 친구들에게 의존해서 여러 업체 중 괜찮다 싶은 곳에 주문한다. 드디어 휴식공간에서 도시락 팀 동료들 다섯 이하로, 가끔은 혼자서 비어있는 공간을 찾아 조용히 먹으니 살 것만 같다.  도시락은 웃고 떠들면서 함께 할 때 즐거웠는데 그런 시절이 오기만을 고대한다.               


아침에 나를 위한 도시락을 싸다 보니 오만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들 자랄 때는 하도 바빠서 내 도시락 하나 장만할 수가 없었다. 내 한 몸 건사하자니 이리 홀가분하고 시간이 펑펑 남아돈다. 이제 두 아이는 자라서 서울이라는 치열한 곳에서 한 녀석은 직장인으로, 다른 하나는 취업준비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어미의 마음은 어찌 되었든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서울은 코로나 19 확진자가 자꾸 늘어나서 거리두기 2.5단계가 되었다. 큰 딸은 업무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어려워 전철을 타고 늘 직장에 다녀야 해서 불안하고, 둘째는 바깥공기도 못 마시고 매일같이 종일 집안에서 공부에 매달려 있다니 안쓰럽다.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때로는 아프다.                 


요즈음은 고등학교까지 점심으로는 무료 급식을 한다. 무료 급식은커녕 급식 시스템이 없던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나의 엄마는 본인 출근 준비하시랴, 5남매 도시락을 싸주시랴 얼마나 힘드셨을까. 바쁘고 고단하셨음을 이제 겨우 이해한다. 그런 엄마 사정이야 우리 어린 남매들에게는 아랑곳없었다. 우리는 오로지 오늘 누구 것에 어떤 반찬이 들어갔는지 따지면서 투정했다. 아마 엄마 본인의 도시락은 자식들 반찬에 다 들어가고 남은 것들을 싸셨으리라 짐작한다.               


  “너는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 반찬 기억하니? 주로 우리 뭘 싸주셨어? 나는 소시지 달걀부침하고 검은콩 자반만 생각나는데.”하고 두 살 아래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내가 정말 도시락만 생각하면 할 말이 많아. 오빠는 우리 집안 장남이라고 맨날 차별하고 무릎이나 깨질까 다칠까 걱정하고, 단발머리에 옆에 핀 딱 찌르고 다닌 언니는 야무지고 공부 잘한다고 예뻐하고, 친척 어른들도 오빠 이름, 언니 이름까지만 알고 내 이름은 건너뛰고, 막내딸 남자 동생 텃 팔았다며 할머니가 예뻐하시고, 언니 새 옷 사 주고 그다음 나 입고 누더기 되어 막내딸은 새로 사 주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처음으로 사 주신 새 옷이 지금도 선명해서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어. 파란색 바탕에 더블칼라 단추가 쭉 있고, 나팔바지였어. 나중에는 귀한 아들 막둥이 의대 다닌다고 자가용 사주고. 나는 긴 가야금을 들고 버스 타고 힘들게 다니고.”


“너는 별걸 다 기억한다. 도시락 반찬 이야기하라니까 왜 다른 소리야. 웃겨 죽겠다.”


“언니가 소시지 달걀부침 이야기하니까 그러지, 나는 그런 반찬 없었어. 엄마 김치는 너무 맛없어서 학교 가면 뚜껑을 열고 싶지가 않았고, 맨날 김치 싸 갔는데 김치 국물이 새서 늘 책에 묻어서 너무 창피했어.”


“그때는 다들 김치 국물 흐르면서 다녔어. 나도 책에 국물 흘렀던 것 기억나는데? 나도 김치도 싸 갔지.”


“내 친구 김도연은 구이 살았는데 유리병이 있었고, 이소연이는 시내에 부잣집이라 찬합에 여러 가지 반찬 싸오고, 또 양조장 집 딸 박진영은 부자라서 계란말이 싸 와서 너무 부러웠어. 애들이 내 반찬은 안 먹어서 슬며시 뚜껑을 닫은 날도 많아. 김치 국물 흐르고 맛없는 엄마 김치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랬단 말이야. 엄마가 나중에 김치 잘 담그시게 되었지 그때는 정말 맛없었어."


“하하하, 알았어. 그래도 엄마가 아침에 우리들 것 도시락 다 싸시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어. 소시지 달걀부침 너도 분명히 해 주셨을걸. 잘 기억해봐."


동탄에 사는 동생과 전화 수다는 계속되어 동생이 자기는 요즘 미스터 트롯의 누구 때문에 얼굴이 활짝 피어서 화장품 값이 안 드네, 트로트 좋아하시는 엄마랑 매일 전화하면서 요즘 트로트 피드백을 해 드린다느니, 자식을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그랬다 후회도 하지만 과거에 if를 달아봐야 어쩔 수 없잖아 어쩌고, 하는데 나의 귀에 꽂은 에어 팟의 배터리가 다 되어 뺀 후, 이어서 핸드폰을 이쪽 팔로 들었다 저쪽 팔로 들었다가 나중에는 팔이 너무 아파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끊었다.


통화시간 2시간 17분. 내가 동생에게 연락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하니,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아이 둘을 훌륭하게 키워 낸 동생은 중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어쩌면 저리도 씩씩할까 싶게 항상 에너지 넘치고 생기발랄한 목소리다.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가 떠 있는데 아직 통화를 못 했다. ‘엄마’라는 단어로 저장된 전화가 걸려오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오늘은 엄마에게 내가 먼저 연락해야지’하고는 밤 10시가 되면 그제야 생각이 난다.


그러면, 벌써 잠드셨을 것 같은 시간이니 내일은 꼭 해야지 하고 또 미룬다. 반면에, 여동생은 하루에 한 번은 꼭 엄마와 통화하고, 엄마가 동생 집에 가셔서 오래 머무르시면, 까다로운 엄마 입맛에 맞춰 별의별 요리를 다 해 드린다. 동생의 주장대로 엄마의 도시락 반찬 사랑을 더 받은 나는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여직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밥상을 차려드리지 못했다.     


엄마는 마치 아빠가 돌아가셔도 당당히 남은 인생을 사실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나 혼자 살면 정말 편할 것 같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 자상하신 점도 있지만 성격이 급하시고 다혈질 기질에 엄마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마는 아침에는 밥 굶으시고 실컷 주무시고 싶어 하셨다. 아빠 눈치 안 보시며 온종일 탁구를 맘껏 치시는 것이 소원이셨다. 엄마는 복지관을 대표하실 정도로 탁구에 대한 열망이 크시고 체력도 좋으셨다. 엄마와 탁구 한번 치다가 내가 나가떨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을, 엄마 당신의 소망을 뒤엎고 정확히 반대로 엄마는 모든 것을 잃기 시작하셨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른 후 갑자기 한 발자국 걷지 못하시는 날들이 지속되다가 급기야 중환자실로 실려 가셨을 때, 나는 엄마도 잃는구나 생각했다.


  “엄마, 저예요! 거기 끝날 시간 되었겠네요?”


“몰라, 그림 다 안 그렸다고 안 보내줘! 다 색칠하고 가래. 에잇, 내 수준도 아닌데 자꾸 귀찮게 하네.”


“엄마, 그림이 치매 예방에 좋대요. 색칠 공부도 하면 손에 힘도 생기고요.”


“나 치매 안 걸렸어. 하기 싫어 죽겠다.”


“그래 엄마, 치매 안 걸렸어. 목소리가 좀 나아지셔서 좋네요.”          


항상 치매 예방이라고 말해도 엄마는 발끈하시면서 당신은 치매 안 걸리셨고, 멀쩡하시다는 것을 꼭 언급하신다. 일상적인 이야기라도 엄마는 전화만 하면 좋아하신다. 그런데도 그 전화 한 통이 힘들다. 바로 3년 전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만 해도 일어나시기만 하신다면, 나와 눈을 맞추고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해 주실 수 있다면, 하고 바랐는데 말이다.


위급한 순간을 여러 번 넘기신 엄마는 지금 주간 노인 재가 복지센터에 다니신다. 혼자 점심을 거르실 일이 없어 다행이다.

추억의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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