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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an 25. 2021

바람이 내게 속살거릴 때

엄마도 처음 학교 가서 떨렸죠?

코로나 19는 수많은 신입생들에게 설렘의 기회와 봄바람의 일렁임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 같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쓴 시점에 가장 안타까운 이들이 누군지 꼽으라면 바로 2020학년도 대학 신입생이라고 대답한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 한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신입생(freshman)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들 사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대학 신입생은 인생의 가장 황홀한 봄바람이 귓가에 속살거리는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닐까. 오늘은 봄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봄 일화 하나

이만큼 살면서 설레었던 순간은 참 많았다. 다양한 설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대학교 간 첫날이다. 아직 삼한사온으로 춥다면서 옷 좀 따뜻하게 입고 가라는 엄마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었다. 연노랑 쟈켓에 베이지 색 폭넓은 치마를 입고 대학교 정문을 지나 우리 강의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봄바람이 나를 휘감고 치마를 날려서 깜짝 놀랐다. 책으로 치마를 눌렀다. 마릴린 먼로처럼 섹시한 몸매도 아니니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바람이 내 귓가에 속살거렸다.


봄바람 맛이 어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대학 캠퍼스에서의 첫날, 내 귓가를 스치며 치맛자락을 휘감은 바람은 그렇게 대학 교정에 온 나를 반겼다.


그 후로는 봄에 계단을 오를 때마다 대학 첫날의 봄바람이 떠 올랐다. 물론 봄바람의 속살거림으로 시작된 대학은 마냥 행복만을 맛보게 하지는 않았다. 지나서 생각하면 부질없으나 한때는 모든 것에 열정을 쏟아붓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하다.



봄 일화 둘


때는 바야흐로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내가 두 딸의 엄마가 되고 둘째마저 초등학교 입학을 하던 날의 일기로 시간여행을 떠나 본다.


아침에 눈을 뜨니 둘째 딸아이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이유인즉 " 떨려서..."
초등 입학.. 항상 시작은 이렇게 떨림과 기대 그리고 긴장이다.
큰아이 역시 배가 조금 아프단다.
둘째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기대와 걱정 때문이다.
아이들이 왜 이리 마음이 약한지.. 엄마를 닮았나 보다.
하지만 누구나 시작은 그렇게 되는 것 같다.
1 이란 숫자는 희망과 떨림으로 시작되고 훗날엔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딸아이 입학식이래도 갈 수 없는 엄마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선생님이셨던 엄마도 아마 이런 나의 마음과 같았으리라..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니 행복하다.(나의 엄마와 아빠가 대신 가 주시기로 했다.)
나의 딸들아~~
씩씩한 엄마의 딸들이 되기를 기대할게.


(둘째 입학 날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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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낮에 직장에서 열어본 딸로부터 온 이메일 (그즈음 입학을 준비하던 둘째 딸과 나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편지 1


엄마 이 표정 귀엽지. ^0^
  

엄마! 나는 학교 가니까 궁금한 게 많아졌어요.
뭐냐면 학교 선생님도 궁금하고, 공부 머할지도궁금하고,
책상과 의자도 궁금하고...그런데 가보면 알거예요.
엄마 그런데... 언니가 할말이 없었나 봐요.
조금 밖에 안 썼어요. 엄마~! 근데...
아이~ 정말. 까먹었다. 나 오늘 여기까지 쓸께.

엄마 답장기다릴께.

편지 2

엄마 저 처음 학교 가니까 떨리고 걱정돼요.
그렇지만 아빠는 벌써 가버렸어요.
엄마 이제 봄이 오려고 하나 봐요.
엄마도 처음 학교 가서 떨렸죠?
엄마! 엄마도 학교 가서 공부 잘하고,
학생들 잘 가르치고 오세요.
  

답장 기다릴께요. 꼭 보내 줘요.


그때, 딸의 이메일을 맞춤법 가감 없이 옮겼다.


그날 이메일을 받은 나는


 '엄마도 학교 가서 공부 잘하고' 때문에 한번 웃고, '   '엄마도 처음 학교 가서 떨렸죠?'덕분에 위로받았다. ' '엄마 저 처음 학교 가니까 떨리고 걱정돼요. 그렇지만 아빠는 벌써 가버렸어요.'라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엄마 아빠의 직장 생활로 아이는 입학식 후 혼자 다녀야 했다. 다행히도 6학년인 초등학생 언니가 있었기에 그나마 안심이었다. 둘이 함께 손잡고 등교했다. 그때 큰딸이 참으로 듬직했다. 1학년을 언니와 보낸 후 그 후 혼자 등하교했다. 하긴 언니는 거의 혼자 다녔으니 나의 딸들은 독립심이 강해질만도 하다.


오늘의 봄


오늘은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졌다. 곧 다가올 마지막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13도의 기온이라니......


이렇게 좋은 날에는 나는 지갑을 연다. 앵초 꽃 화분 하나가 2천 원이라 하니 만원만 써야지 하고 들른 곳에서 결국 3만 원을 쓰고 만다. 지인이 한 말인데 우리 주부들은 때로 대범해진다고 한다. 천 원 가지고 벌벌 떨다가 어떤 때 돈을 팍 쓰는 것이 의문이란다.

에이, 그냥 사야지~


조금 망설이다가 그래도 색이 다 예쁜데 어쩌지 하면서 결국 색색이 산다. 그런데 되돌아 나오다가  피나타 라벤더를 또 산다. 분홍색 시클라멘 앞의 연두색 나뭇잎은 커피나무다. 커피 열매가 열리도록 키워보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진짜 그만 사야지 하는데 몬스테라를 보니 브런치 이웃 몬스테라 변호사 작가님이 떠 올라서 화분을 덥석 집게 된다. 카가 크게 자랐는데 지난여름 밖에서 키우다가 깜박 잊고 늦게 들여놓아 얼고 말았다. 올해는 작은 거 사서 키 클 때까지 잘 키워야지.


이제 봄이 되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입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떨림이 느껴진다. 역시 설렘도 마찬가지겠지. 이번 봄부터는 대학의 대면 수업이 이루어지고, 캠퍼스에 날리는 꽃바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유치원으로부터 대학까지 모든 신입생들과 사회 초년생들 그리고 퇴직으로 새 인생을 여는 그 모든 이들의 첫 발자국에 봄바람의 사랑스러운 속살거림이 느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는 야생에서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군락으로 피어나는 데 농막 근처에 핀 꽃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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