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Sep 10. 2020

도토리 묵무침은 이제 그만

다람쥐의 먹이를 뺏지 말아주세요


가을에 산에 가면 밤,  도토리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다람쥐가 비상식량을 쌓기 전이라서 그런 가보다. 사람들은 다람쥐보다 날쌔게 밤과 도토리를 줍는다.


도토리는 가루를 내서 수제비나 부침개에도 넣지만 뭐니 뭐니 해도 묵이 최고다. 도토리묵과 야채 버무리는 환상의 조합이다. 나의 아버지는 도토리묵을 만드셔서 각자의 가정을 꾸린 자식들의 집까지 배달을 하셨다. 한 번은 두 분이 미국 LA 다녀오셨을 때, "거기 사람들은 도토리가 길에 그렇게 많이 있어도 안 줍더라. 환경도 정말 깨끗하고 먹기 좋게 생겼는데 아까워서 혼났다!”라고 하셨다. 호주에서 온 지인이 준 도토리 가루를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아버지에게 드렸더니 좋아하시며 만드셔서 나에게도 가져다주셨다.     


밤은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으니 실컷 먹을 거다. 그러나 도토리 묵은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고 오래전에 다짐을 했다. 식당에 가서 나온 반찬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망설이지만, 그래도 음식 앞에만 서면 한없이 약해져서 젓가락이 절로 간다.  환경 강의를 들은 적 있는데 우리가 자꾸 그들의 것을 뺏으니 먹을 것이 없어 개체수가 줄고 먹이사슬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등산길도 기존에 나 있는 길로 다녀야지 자꾸 새 길을 내면 산에 사는 동물들이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사람이 자꾸 밟아서 새 길에 풀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길들로 인해 산사태가 난다고 한다. 이런 걸 '나비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농막에 농사를 지어 보았다. 고구마 열 두렁을 심은 적이 있었는데 멧돼지가 내려와서 여덟 두렁을 다 파 먹었다. 고라니도 내려온 적 있다. 콩을 심었더니 날짐승이 와서 다 먹었다. 도라지를 심었더니 사람이 와서 다 캐 갔다. 그 이후로는 나무만 심었다.


나는 직업이 농부가 아니기에 날짐승을, 멧돼지를, 고라니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돌멩이 많은 밭에 실컷 호미질해서 심어 놓은 도라지들이 예쁘게 피어나고 먹기 좋은 정도도 되었을 때 모두 캐 갔던 사람에게는 화가 났다.


다람쥐의 겨울나기 도토리 보관법(미국 제자가 보내준 사진, 구멍 안이 꽉 차서 외부까지 모은듯 보이며, 사람이 파 가기 어렵게 꽉 끼워 놓았다고 한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돌려주고 싶다.  하나만이라도. 작은 날갯짓을 시도한다.







도토리 종류에 대한 설명

https://m.blog.naver.com/jongsulim/221827540458

매거진의 이전글 설렁탕 먹으러 갔다가 만난 어리굴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