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Feb 16. 2021

집이 많아서 불쌍한 사람

서울에서 집 없는 것은 가히 정상이다

서울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투룸의 전세 집 계약 만료 일주일 전이다. 집주인으로부터 갑자기 계약 연장을 못 할 것 같다는 전화가 왔다. 계약 만료 한 달 전에 분명히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서로 이야기 나누고 문자로 확답까지 한 상태였다.


주인과 다시 통화 해 본 내용인즉, "정부 시책이 너무나 다주택자들을 힘들게 해서 세금을 폭탄으로 때리니까 집 한 채를 팔고" 현재 나의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자기들이 들어오기로 결정을 봤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다. 한 달 전에만 알려줬어도 이렇게 헤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허겁지겁 법적인 사항을 알아봤다. 전세의 경우 2+2 정책으로 임차인(현 거주자)의 의사에 따라 2년의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 세대가 들어온다고 하면 비워줘야 한다. 단, 주인은 이러한 내용을 한 달 전에 임차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현 거주자가 2년을 더 살겠다고 하면 아무리 주인세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쫓아낼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가지 일이 얽혀있어서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다.


몇 달 후 나갈지 아니면 일 년만이라도 연장해 줄 것인지 합의를 보는 것이 문제였다. 우선 집을 알아보니 , 대부분 신학기라서 이미 방이 다 나간 상태였다. 게다가 서울의 전셋값이 현재 천정부지다. 전세 찾기가 어렵다.

경기 외곽을 알아보았다. 분당선을 알아보니 27년 된 아파트 리모델링 한 곳이 실평수 15평의 전세가가 3억 5천이다. 대충 거의 그 정도다. 전철 한 정거장만 서울 쪽으로 와도 가격이 5천이 상승한다.

주인은 계속 자기들이 너무 슬프고 속상하다. 자기들도 세금 문제 때문에 넓은 집을 팔고 작은 투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느냐 등등 하소연을 했다.


결국 주인과 잘 협의해서 1년만 연장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런 결론을 얻기까지 너무 지쳤다. 그 후로 계약 만료까지 시달렸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집 없이 떠도는 우리 아이들이 안쓰러운지, 집이 여러 채여서 세금폭탄 받으니 정리를 해야 하는 자기들이 서글픈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젊은 아이들이니 서울에서 집이 없는 것은 아주 정상이다. 그들이 집으로 월세를 받으면서 사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이다. 그러나 아무 때고 나가라니 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이다. 없는 것은 가히 정상이다

갑자기 낮에 라디오 프로그램 <오천만의 변호인>에서 모 아파트 경비원 이야기가 떠 오른다. 입주민의 차의 주차를 대신해 주다가 사고가 났다. 그런데 경비원에게도 책임이 있어서 그것의 반절 값(몇 천만 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경비원 보호법을 마련했다고 한다. 경비원은 경비 이외에 택배, 주차, 갖은 심부름 등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의 법률이 통과되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생겼나? 경비원을 다 해고해 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다시 그 조항을 없애기에 이르렀고 오늘날 무 개념인 사람들이 경비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역시 주택 임차인 보호법이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한다.


있는 자의 하소연을 없는 자들이 들어야 하는 것에 조금 마음이 불편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일 년 연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 집이 없는 자의 기분을 알랑가 모르겠다. 거저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시 요약하자면 사실 법적으로 2년을 살아도 그들이 내쫓을 수도 없는 것이다. 집주인이 한 달 전에 미리 통보하지 않은 경우, 연장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도 재계약과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현재 법은 임차인(세입자)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싸우는 것이 서툰 우리들은 1년이나마 마음 놓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겨울의 끝을 알리는 눈이 매서운 바람과 더불어 얼굴을 때렸다.


걷다가 전화를 받은 후 찻집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스스로 위로한다. '다 잘되어서 다행이다'.


차 한잔의 위로와 더불어 웃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돌아와 화분에 피어난 꽃들을 보니 세상살이가 잊힌다. 마지막 추위가 가면 진정 봄이 오겠지.



본 포스트를 올린 후, 현재 10만 뷰가 넘게 되었습니다. 본 글은 저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다 보니 저의 입장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실 부동산 임대인인 주인의 입장이 되어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입장차가 있을  있음을 어떤 분의 댓글을 통해 인지하게 됩니다. 글을 통해 그런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는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그분들에게도 정말 애환이 많을  있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서울 집주인께서도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본인의 심정이 서글퍼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은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많이 가져서 지금 현재 정리를 해야 하니 속상한 것이 맞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월, 정원의 꽃 잔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