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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un 30. 2021

유월, 정원의 꽃 잔치

아름다움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유월에는 모내기 낸 논에서 개구리가 부산을 떨고, 나의 꽃밭의 잡풀과 마당의 잔디가 바쁘게 자란다.


덩달아 바빠진 나는 '잠시 앉아 향기로운 꽃 향기' 맡을 여유가 없다. 대신 물을 주면서 금세 자라 덩실덩실 매달려 나를 보는 고추와 토마토를 들여다본다. 활짝 웃는 접시꽃을 본다. 봄부터 피어 지금까지 미소 짓는 마가렛을 본다. 분홍 노랑 빨강 꽃들이 색색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프록스 진핑크
로벨리아(월동이 안되고 실내에서 겨울을 나야 한다는데 지난겨울 첫 공방에서 잘 살아서 일부 캐 오고 일부 더 사서 심었다. 많이 번지지는 않지만 오래오래 꽃이 핀다.)

로벨리아 뒤로 꼬리풀, 블루 세이지가 보인다. 아래의 맨 왼쪽은 화이트 세이지다.

프록스(가운데 씨앗이 퍼지면서 월동), 만델라 (오른쪽, 한해살이지만 실내로 가면 겨울을 날 수 있다. 데리고 들어가기는 힘들 듯하다. 4천원을 주고 사면 한 해 내내 꽃핀다)
풍접초(족두리 꽃, 정말 모양새가 족두리같이 생겼다.)
코스모스 종류

에키네시아(Echinacea)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라고 한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다. 월동한다. 가격은 정말 눈물 나게 비싸다. 노랑꽃은 만원. 연두 꽃은 이만 원. 그래도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니 얼마나 대단한가.

한해살이 화려한 임파첸스와 팬지. 팬지는 봄부터 지금까지 피어 있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한 겹 에키네시아
두 겹 에키네시아(왼쪽), 프록스(오른쪽)
신종 능소화로 색이 더 진하며 꽃잎 모양이 덜 펴진다.
보라 버베나
앤드리스 썸머(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사랑'이라는 이름처럼 사랑스럽다. 목수국이라고 해서 심었는데 내년에도 이 색으로 필지 모르겠다. 토양에 따라 다른 색이 핀다니..


매일 나에게 맛있는 물을 줘서 고마워~


농사꾼이 논에서 바쁜 계절이면 마당쇠인 나도 늘 정원에서 분주한 셈이다.

퇴근 후 잠시 놀러 온 동료에게 고추를 따서 준다.  맛있게 드세요~ 벌써 고추가 이만큼 자랐다. ㅎㅎ


수박을 먹고 씨앗을 심었더니 이만큼 자랐다. 과연 수박이 열릴지 모르겠다.

주말에 친구가 도와줘서 잔디를 예쁘게 손질했다. 머리를 단정히 해야 했던  그 옛날 중학생 까까머리 같기도 하다. 정갈해서 좋다. 아마 동네 냥이들에게도 다시 소문 날 것 같다. 며칠간은 너무 자라 콕 찌를 것 같았는지 냥이가 오지 않았다. 고양이 기피 제다 뭐다 해 봤지만 소용이 없다. 또 올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잔디 깎은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또다시 동그랑 동그랑 되어 있다. 이제 너그러운 마음으로 잘 치운다. 치우고 물을 뿌려 나머지는 아래로 스며들게 한다. 세 가지 이유로 나의 마음을 달랜다. 첫째, 고양이 덕에 쥐는 없겠지. 둘째, 거름도 되겠지. 그래도 데크에 안 하니 얼마나 예쁜가.



새벽에 공방 <모닝>에 가서 물을 주고 출근했다. 출근하면서 보니, 우리 교정의 잔디는 그야말로 잡풀 대 잔치다. 그래도 잔디밭이 아주 드 넓어서 시원하다. 이제 토끼풀 동산이 되어가는 중이며 씀바귀가 지천이다. 봄에 뜯어 나물 해 먹기 딱 좋다. 잡풀도 예쁘다고 뽐낸다. 나의 잔디밭이라면 뽑혔을 씀바귀들이다.


교정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한다. 초창기에 재래 우렁도 잡고 올챙이 퍼서 키우고 놀았던 곳이다. 이제는 현대화되었다.

선명도는 떨어지지만 동료가 찍은 사진들 모두 예쁘다. 구도도 좋다. 동료들은 자기들의 사진이 좋으면 나와 공유한다.

오전에 동료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점심 식사 후 함께 손잡고 산책을 했다.

교정의 능소화
오후 1시의 사진, 멀어서 줌인하니 역시 선명도는 떨어진다. 언제 망원렌즈 들고 교내 이곳저곳을 찍어보기로 한다.

빛이 너무 많아 눈이 부셨다. 우리 교정은 참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다. 자연이 늘 우리 곁에 있어서 좋다.

직장 나의 공간의 창문으로 커다란 나무가 있다. 따 온 아기사과를 두고 찍어본다. 동료가 팔에 꽃팔찌를 만들어 줘서 기분 좋게 하고 다니다가 벌레가 나온 것에 기겁한다. 하하. 아주 아주 미세하지만 얼른 풀어서 봉에 묶어둔다. 매일 정원에서 서성이니 팔이 다 시꺼멓게 타 버렸다.

2년 전에 아이들과 학교 꽃밭에 토마토와 부추 등을 재배했다. 그 아이들은 모두 대학에 들어가 이제 풀이 무성하다. 저 쪽 다른 잔디에서 기계음이 들린다. 얼른 찍어야지.

조금 진하고 곧게 난 것이 부추다. 나만 알고 구별해서 내가 잘라서 요리에 사용한다. ㅎㅎ누구 부추 구별 가능하신 분~~?


주말에 잔디를 깎아 말리려고 뒷마당 시멘트 위에 두었다. 그리고 햇살이 좋아 수건 세 개를 외부에 널었다.


출근하니 대낮에 비가 쏟아진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이런 이런, 왕창 비가 쏟아졌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 망했다. 애플 날씨 예보는 엉망이다. 조금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게 뭔가.




퇴근 시간이 되니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졌다. 걱정을 조금 하고 공방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수건이 여기저기 떨어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잔디도 흩뿌려져 있다. 그나마 조금 건초가 되어 화단 여기저기 뿌려 줬다.


비가 내리고 꽃나무 가지가 산발을 하면 지저분하고 무성한 줄기들은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가지 친 꽃이 아까워 화병에 담아 데크 위에 놓았다.


가지치기에 대해서는 지난 포스트를 소환하기로 한다.


https://brunch.co.kr/@campo/340


접시꽃은 날마다 10센티씩 자라는 듯하다.

교정의 능소화와 무척 다른 양상이다. 퇴근하니 능소화도 축 늘어져 있어서 지주대를 다시 꽂는다. 태풍을 맞이하기 전에 더욱 튼튼하게 매 놓아야 할 것 같다.

텃밭의 앞 쪽에 고추 네 포기, 토마토 두 포기. 토마토가 너무 자리를 차지해 두 포기는 뽑고 꽃을 심었다.


밤이 되니 잔디의 태양광이 켜진다. 텃밭 뒤로 펼쳐진 접시꽃을 본다. (야밤에 찍어본다.) 해님이 빛을 거두어 간 정원을 서성이곤 한다.



처음엔 고양이들이 불빛이 많으면 오지 않을까 해서 태양광을 잔디에 놓았다. 그래도 덜 한 것 같기는 하다.




일찍 직장을 그만둔 내 친구는 오전 10시 이전에 일을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앉아서 정원을 바라볼 여유가 있다고 한다. <유월이 오면>이라는 시구처럼, 나의 친구처럼 나에게도 그런 충분한 여유를 가질 날이 오겠지.





유월이 오면  

유월이 오면 하루 종일
향기로운 마른풀 위에
내 사랑과 함께 앉아서
산들바람 부는 저 높은 하늘에
흰구름이 지어 놓은
눈부신 궁전을 바라보리.


그녀는 노래 부르고,
나는 그녀를 위해 노래를 짓고
마른 풀내 향긋한 건초 더미 위에
남몰래 둘이 누워
하루 종일 달콤한 시를 읽으리
오, 인생은 아름다워라.
유월이 오면 ~


When June Is Come  

                      Robert Bridges(1844~1930)


When June is come, then all the day
I'll sit with my love in the scented hay;
And watch the sunshot palaces high,
That the white clouds build in the breezy sky.

She sings, and I do make her song,
And read sweet poems the whole day long:
Unseen as we lie in our haybuilt home,
O life is delight when June is come. 


Robert Bridges was born in 1844 and educated at Eton,
and Corpus Christi College, Oxford. After traveling extensively,
he studied medicine in London and practiced until 1882.
Most of his poems are classical in tone and treatment.
He was appointed poet laureate in 1913, following Alfred Austin.
His command of the secrets of rhythm and a subtle versification
give his lines a firm delicacy and beauty of pattern.

          - Modern British Poetry by Louis Untermeyer  




유월을 보내는 후기)


유월이 온 것 같은데 어느 사이 가고 있네요. 누군가 말하기를 나이와 시간이 비례한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 빨리 시간이 가는 것이지요. 정말 그런 기분이 듭니다.


이제 곧 그만 둘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직장생활이 하루하루 소중합니다.


아름다움은 그저 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를 얻기 위해 지성으로 가꾸거나 발품을 팔거나 마음을 열어야겠지요. 이제 저의 정원도 찐 여름인 칠월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장마 태풍 대비 등) 유월을 마감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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