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벙한 두 사람
지난 포스트에 등장한 M소장과 나의 단독주택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포스트를 소환한다.
https://brunch.co.kr/@campo/216
우리는 단독주택의 인테리어를 직접 하고자 모든 장비를 주택에 들여놓았다. 주방과 화장실 구조를 디자인한 후 타일 가게에 가서 타일을 골랐다. 타일을 고를 때 잠시 행복했다.
그런데 디자인 연구소 M소장의 이야기에 솔깃해서 집 키를 순순히 건넸다. 그의 디자인 감각은 이미 다른 시공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조건이 맞다고 생각했다.
2019년 초가을 M소장이 여러 차례 찾아왔다. 그 후 구두로 합의를 한 후 11월 경 주택 내부에 있던 모든 장비를 철거했다. 이미 주택에 들여놓았던 장비들을 다시 수거해서 시골에 옮기는 것도 큰 일이었다.
그렇지만 들어오기로 한 M소장은 자꾸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간을 끌었다. 처음에 여러 번 방문 및 전화로 꼭 하고 싶다던 그는 장비를 뺀 후 느긋해졌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싶었다.
우리 입장은 시골로 장비를 옮겼고, 그곳에 목공을 위한 계획을 다시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주택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무리였다.
M소장은 내가 물어볼 때마다 "들어가야지요"라고 답변했다.
그리하여 결국 2020년 2월에 임차인 계약서를 쓰기에 이르렀다. 들어올 것인지 말 것인지 얼른 좀 결정을 해 달라고 한 지, 무려 세 달이 흐른 후였다.
그와 쓴 임대차계약서 중 중요사항만 체크해 보기로 한다.
계약금 100만 원을 임대인에게 주기로 한다.
임대기간은 4년으로 한다.
임대기간 동안 인테리어를 임대비로 대신한다.
임대기간 동안 주택의 공과금 및 주택 유지비를 임차인이 낸다.
월 30만 원을 낸다.
마지막 월 금액에 대해서 지운 이유는 그가 우리의 인테리어 요구 조건을 전폭 받아들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고쳐달라는 부분에 대해 그렇게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월세 얼마를 받는 것은 별반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인테리어의 자세한 부분은 서로 말로만 했지 계약서에 쓰지도 않았고 녹음을 하지도 않았다.
지나고 보니 일이 잘못될 것을 미리 감지했어야 했다. 처음 들어온다고 하고 바로 계약하지 않았던 점이 첫째다. 둘째는 임차인 계약서를 공증에 의해 정확하게 썼어야 했다. 이달 안에 여기까지 어떻게 고칠 것. 또는 차라리 한 달에 얼마의 월세를 내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 계약서는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종이였으며 거의 M소장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계약 기간 중간에 점검을 하러 가려고 하면 남편은 그들을 믿어야지 자꾸 간섭을 하면 안 된다며 만류했다.
그러나 나는 간혹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그러면 M은 이렇게 답변했다.
곧 할 것이다. 아무래도 앞쪽에 5평 정도 상가를 일자로 지어야 할 듯하다. 상가까지 가지실 것 같다. 등등..
사실 코로나가 시작된 시점이었고 지난 일 년은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그러니 상황이 그를 힘들게 했을 수도 있다고 백번 양보한다.
그러나 M은 계약금이라고 쓴 100만 원 중 단 1원도 내지 않았다. 그 부분부터 계약은 이미 어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공과금을 내지 않아 밀려서 나에게 문자가 오면 내가 냈다. 기간 동안 그가 낸 것은 경보시스템 관련 한 달에 4만 원 정도다.
남편은 계속 그들도 코로나로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 4년 이내에만 고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좀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급했다. 대출이자가 계속 나가는 집이었다.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집이다. 누구를 위해 내가 기다려야 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당연히 인테리어가 어찌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나의 권리라고 여겨졌다. 임대료를 인테리어비로 대신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궁금해 찾아간 집은 완전한 폐허였다.
남편이 뭐라 하든 말든 나는 즉각 대응했다. M이 할 말에 대비해 여러 조건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그의 답변은 허망했다.
M은 도저히 자기가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그냥 주택을 도로 가져가시라고 했다. 주택 내부에는 M의 잡동사니로 여기저기 난리고 마당의 풀은 집 높이보다 올라가 있었다.
2020년 10월에 나의 주택은 더욱 폐허가 된 채로 나의 손에 다시 돌아왔다.
집의 경보 출입 키와 정문 키 한 세트도 찾지 못하겠노라 넉살 좋게 말하는 M이었다. 그럴 거면 진즉 집을 넘겨야 하지 않았는가 생각하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2019년 10월 이후 일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담이 오래되어 위험하니 허물어야 했다. M에게 다른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계약금도 안 줘도 된다. 담장만은 해 주시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그는 그리 하겠다고 했다. 내가 다급했던 이유 중에는 남편의 느긋함도 한몫한다. 남편이 타 회사의 철거팀에게 2019년 가을, 주택 철거비를 미리 지불했다고 한다. M소장과 무관한 팀이었다. 때는 20년 가을이니 철거비를 지불하고 일 년이나 지나 버린 것이다.
철거팀과 M이 마찰이 있어서 그간 철거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나머지 주택 외부의 철거 부분을 마무리했다.(2020년 11월 중순)
M소장에게 담을 허물면 당장 다시 해야 할 것 같으니 바로 기일 내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담장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기 친구를 보낼 테니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도안을 대충 그렸고 M의 친구를 만나서 자세히 설명했다. 슬라이딩 도어에 대해서는 M과도 이야기 한 부분이었다.
담장공사를 해 주지 않은 채 한 달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M의 친구가 나에게 담장과 대문의 견적서를 보내왔다.
나는 M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견적서는 M소장에게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M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M소장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담장 공사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혼자 못 하겠으니 함께 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낼 수 없으니 어떤 형태든 좋다. 그냥 간단히 낮게 해 주면 좋겠다. 문자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으나 그는 이후로 문자에 답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은 채 잠적했다.
각자의 꿈
시골은 남편의 꿈의 터전이라면 도심의 주택은 나의 꿈의 터전이다. 처음 주택을 구입하자마자(2019.1월) 나무를 1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샀다. 원예 종묘사에서 산 나무들은 돈만 지불한 채 배달되지 못하고 그곳에 있어야만 했다. 뭐가 그렇게 급했던가.
인테리어나 주택 건축이 완료된 후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일이 그렇게 더디게 진행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M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해 가을에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나는 어서 빨리 넓은 마당에 나무와 꽃을 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리 사 두었던 나무와 꽃들은 2020년 봄, 시골에 심게 되었다. M이 주택을 임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골 농막 주변에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열심히 심었다.
그런데 사실 시골에 심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본다. 자작나무와 같이 키가 큰 활엽수는 도심지에서는 남의 집에 민폐가 되기도 한다.
스카이 로켓과 에메랄드그린 그리고 능소화 홍가시나무 등등 사랑하는 나무들을 더 넓고 좋은 곳에 심었다. 참 이상도 하다. 시골도 우리 땅인데 나의 마음은 뿌듯한 것이 아니라 조금 시렸다. 시골은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은 자생하는 나무들로 둘러싸여 내가 심은 나무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공간의 리모델링이 모두 끝난 후, M소장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계약금으로 기록된 100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이 사실을 꼭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저와 한 약속을 이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란 믿음은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고 생각하며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