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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r 10. 2021

엄마의 연분홍 치마

나와 엄마와 나

연분홍 치마가 하도 예뻐
눈깔사탕 베어 물고 시집왔더니

눈깔사탕 온데 없고
치마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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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눈을 떠 보니 내가 울고 있었다.
요즘 나는 꿈을 자주 꾼다. 딸아이 말이 언젠가는 내가 영어로 완벽하게 한 문장을 외웠다고 한다. 어젯밤 꿈, 아니 방금 전 꿈에서는 시를 읊조렸다.  

꿈속에 주름진 얼굴의 엄마가, 이제는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미니 스커트, 연분홍 색 치마를 바라보며 시를 외셨다. 엄마의 마음속 읊조림은 내 입을 통해 소리가 되었다. 내가 시라고 생각한 것은 꿈이기 때문이다. 꿈에는 뭐든지 가능하니까.

 엄마가 읊은 시가 엄마의 여고시절에 외웠던 시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꿈에서 우리 엄마도 한때는 시를 암송하는 여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엄마의 눈이 너무 슬퍼 보여 그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절로 눈이 떠졌는데 내가 울고 있는 거다. 내 꿈의 엄마가 나였는지도 모른다. 꿈은 왜곡되고 압축되어 나타난다고 하니까. 나는 요즘 슬프다.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 그대로 남아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들은 삶이 고통이어서가 아니라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처녀 적 아무 거리낌 없이 입었던 짧은 연분홍 치마를 입고 나다닐 수 없을 만큼 남의눈을 의식하기에 나이 들어가는 것은 슬픔이다.

눈을 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엄마에게 전화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늘 마음 언저리를 맴돌면서 신경 쓰이게 하는 존재인 나이 든 엄마와 아빠.

그들에게 항상 잔소리를 듣던 내가 어느 날부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부모가 갑자기 나이 들어 보이고 심지어 예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나의 행복을 위해 전화를 꺼리게 된다. 가족이라는 것으로 꽁꽁 묶여 나를 옴싹 할 수 없게 만드는 어찌할 수 없는 사슬을 잊고자 바둥거린다.

'나도 바쁘고 힘들단 말이야'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슬며시 마음속에서 그네들을 향한 손짓을 따돌려 버리곤 한다. 그래서 결국엔 엄마 아빠를 떠 올리면 죄책감만 남는다.

내 꿈은 아마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내 못된 심리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날이 밝으면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



위 글은 2014년 2월 14일 5시 59분에 쓴 글이다.


대학생 시절에 엄마 옷장에서 연분홍 미니스커트를 봤다. 엄마는 한 번도 그렇게 짧은 옷을 입으신 적이 없었다. 나 입으라고 놓으셨나 했다. 치수는 맞지 않으니 뭔가 해서 여쭈었다. 젊은 시절 옷이라고 하셨다. 그때 생각했다. 엄마도 꿈 많았던 대학시절과 가슴 설레던 연애시절이 있으셨다는 것을.


이제 아빠는 계시지 않고 엄마는 몸이 더 좋지 않으시다. 속절없는 세월 앞에 나 역시 자꾸 나이가 들어간다. 엄마처럼 나 역시 결혼 당시에는 눈깔사탕이나 오물거리며 세상 물정 몰랐다. 살다 보니 어느 날 쌈닭 비슷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진 풍상 겪으신 나의 엄마는 지금도 가끔 소녀 같은 표정을 지으신다. 요즘 나도 "아, 네~. 아~ 그래요?!" 하는 표현을 배우는 중이다.


새 학기는 항상 조금 더 바쁘다. 낮에는 엄마께 전화라도 드려야지 하는데 어느 사이 밤이 되어 버린다.


마침 그제 엄마께서 전화를 주셨다.


"이것 너도 잘 알아두라고! 내가 어제저녁에 응급실에 갔거든?"


"네? 어쩌다 그러셨대요. 많이 아팠어요?"


"아니 그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저번부터 갈비 쪽이 계속 아팠잖아. 그래서 진통제를 하루 세 번 먹었지. 그런데 요즘 배가 무겁고 변비가 심하고 그랬지."


"엄마, 아침에 꼭 사과 반쪽이라도 드세요."


"너는 꼭 지은이랑 똑같이 말한다. 그래서 아무튼 병원을 갔다 와서 지금은 좋아졌어. 그런데 너도 알아둬야 하겠어. 호인이가 그러더라고. 엄마 아무래도 진통제 많이 드셔서 변비 심해진 것 같다고. 밤중에 더 배 아픈 것 심해질 수 있으니 병원 가자고 해서 같이 다녀왔지."


"그래요? 세 번이나 드시면 안 좋기는 할거 같아요."


" 아프니까 먹었지. 그런데 이제 아침에만 먹어. 오늘 아침에는 안 먹고 지금 잘 참았다. 그니까 너는 진통제 함부로 먹지 말고 잘 알아두라고."


"그래. 엄마. 알았어요. 내가 낮에 전화한다고 맨날 까먹어요. 엄마 생각은 하는데. 엄마, 호인이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는지 몰라요. 나는 2년 전에 엄마 엄청 심하게 아팠을 때 호인이 보고 놀랐어요. 그때도 엄마 변비 심했을 때 호인이가 엄마 그거 다 손으로 팠어요. 윽~ , 나는 못 하겠던데. 정말 호인이는 진짜 대단해요."


이후로 짧게 손녀딸들 안부를 물으시고 호인이 자랑을 한참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엄마가 이렇게 신나는 목소리로 말씀하신 것이 오랜만이라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여동생은 엄마와 가장 통화를 많이 하고, 남동생은 늘 건강을 챙겨드린다. 효녀 효자다.




(* 지은이는 여동생 가명, 호인이는 남동생 가명입니다.)



엄마께서 좋아하시는 노래 중에 <봄날은 간다>가 있다.


"엄마, 나는 왜 엄마 안 닮아 음치야? 엄마 그 노래 한번 불러봐요. 내가 먼저 불러볼까?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거봐 엄마 음치 박치지. 왜 나는 아빠 닮아서 노래를 못하지? 엄마가 불러봐요."


내가 음치 박치라서 엄마는 한참 웃으셨다.


"나는 목이 쉬어서 잘 못하는데." 하시면서 그래도 가사 하나 박자 하나 안 틀리시고 잘 부르셨다.


엄마는 평생 교직에 계셨고 목이 쉬어 버리셨는데 적기에 치료를 못 하셔서 목소리가 맑지 않으시다.


다 자식 키우다 그리 되신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원조 <봄날은 간다> 노래를 다시 듣는다.


https://youtu.be/i5fJrmdSO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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