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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r 16. 2021

철 모르는 벚꽃

맑음 플러스 철없는 나

영원히 철들지 않을 나는 철 모르고 핀 운동장 구석의 벚꽃을 찍는다고 뛰어갔다.



그렇다. 벚꽃이 추운 줄도 모르고 피어 벌들은 신이 났다. 나도 봄이라 생각하니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했다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나마 이제 따뜻한 날이 지속된다고 한다. 일찍 세상에 나온 벚꽃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그런데 뛰어가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쉬는 시간에 얼른 가서 가까이서 보고 싶어 서두른 탓이었다. 나는 젊을 때부터 걸핏하면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상처 나고 넘어졌다. 한마디로 성급하고 다른 것에 정신을 팔면 또 다른 것에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아이들 키울 때 멀티로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를 잃어버린 적 없이 잘 키워낸 것만 해도 스스로 대견하다 여긴다.(그만큼 정신이 없는 편이다.)


아뿔싸!! 열심히 사진을 찍고 뒤돌아 서는데 뭔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니 글쎄 뾰족뾰족 가시가 온몸에 붙어있었다. 이름을 잊어버려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도둑처럼 몰래 달라붙어서 도둑 가시라고 한단다. 또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에는 도깨비바늘이라고 나온단다. 친구들이 초등학교 선생님들이다.


내가 사진을 톡에 보내니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달라붙는 이유는 그네들의 종자 번식 방법이라고 한다.


쉬는 시간 10분인데 또 달려가야 하는데 도깨비바늘 떼다가 시간이 다 낭비되었다. 사진은 거의 떼어낸 상태의 것이다. 치마 아랫부분은 앞이며 뒤며 전체에 달라붙었다. 스타킹에도 달라붙어 있어 떼어도 끝이 없었다.


나도 밭에만 나가면 내 몸에 붙어. 우리 강아지도 마찬가지고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가 톡에서 말한다. 강아지 털에 붙어서 떼느라 힘들다고 웃고, 꽃말이 '흥분'이라는 것도 웃긴다. 우리는 도깨비바늘 이야기하다가 한참 웃었다.


점심시간에는 밥으로 떡 한 조각과 군고구마를 먹은 후 교정의 꽃구경을 다닌다. 밥을 반드시 먹는 내가 꽃구경에 정식 식사를 사양한 것이다. (대신 저녁밥을 몽땅 먹었다.^^)


전부터 백목련을 찍어 왔는데 드디어 오늘 활짝 피다 못해 어느새 지는 잎을 발견했다. 서글픈 일이다. 개화를 생각하면 지는 꽃이 있다. 꽃이 진다 서러워 말자. 하는 시가 생각나기도 하고 목련 꽃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하는 노랫말도 생각났다. 목련은 잎도 없고 꽃은 듬성듬성한 편이다. 그런데도 피면서 큼직한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다소 슬픈 듯한 꽃나무 그늘 아래에서 언제나 로테를 그리는 슬픈 표정의 젊은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다니......

목련은 꽃이   잎이 부드럽고 넓게 난다. 어느 해부터인가 목련나무를 좋아하게  이유는 꽃보다 나뭇잎이 예뻐서다. 꽃이 아름답지 않은 경우는 없지만 목련의 경우 꽃도 아름답지만 잎모양이 유독 눈에 들었다.


목련 옆에는 자두나무가 있다. 자두꽃이 나무에 달라붙어 보송보송 피어났다.


햇볕 좋은 곳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어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왜, 나 불렀어? 쉬려고 했는데 왜 불러!' 시크한 고양이의 조금 성가시다는 눈빛이다.

자목련이 곁에서 어여쁨을 뽐내는 중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종류의 꽃이 피고 진다. 다 돌아볼 사이 없이 종이 울리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맑음 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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