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키우기
한때 멋진 다른 이름을 가지고 싶었어. 그랬더니 백태, 대두, 메주콩 등으로 부르더라고. 내가 내 이름을 만들 힘은 없어서 나는 그냥 평범한 노랑 콩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 나는 한 콩깍지 안에 둘이나 셋 쌍둥이로 태어나. 모습이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 나는 특별한 나야. 나 어때?
나는 뿌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어.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기록에 보면 청동기 시대 즈음에 만주에서 살다가 우리나라에 이주해서 뿌리를 내렸대. 우리 가문이 인기가 많아서 온 나라 안에 퍼진 거야. 여러 지역으로 퍼졌는데 나는 전주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워. 전북은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들 하거든. 여러 가지 먹거리들이 많아.
사람들에게 우리 가문은 좋은 일만 해왔어. 나도 씩씩하고 아름답게 자라서 후손을 주렁주렁 키울 거야. 우리의 운명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많이 해서 후손들이 마음 놓고 살 땅을 가꾸는 거야. 사람들이 땅을 잘 가꿔야 우리 자손이 또 번창하겠지.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서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일을 명예롭게 생각해. 전주콩나물국밥이 유명한 것 알아? 그뿐만이 아니야. 순창은 우리 노랑 콩이 들어간 고추장, 된장이 유명해. 전주 백반 맛집 중에 반찬이 쫙 깔리고 가운데 뚝배기 청국장을 해 주는 집이 아주 인기야. 순두부 국밥은 또 어떻고. 고소하고 영양도 좋다고 하지.
그래 맞아 그 음식들의 가장 중요한 재료야. 수입이 좋다고 다들 한때 난리가 났었지. 그 바람에 우리는 찬밥 신세인 적이 있었어. 그런데 요즘엔 우리 콩, 국산콩의 인기가 끝내주지. 이래 봬도 비싼 몸이야.
나쁜 사람들은 수입해 온 것들을 우리라고 턱 하니 상표를 붙이더라. 우리 명예에 먹칠을 하는 거지. 그래도 우린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못 해.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기쁘지. 그들의 영양소가 되기 위해 우리도 노력해.
나는 지난해 함께 자란 애들 중에 뽀얗고 포동포동하고 튼튼해서 선택받았어. 지금 흙에 심어질 날을 기다리는 중이야. 흙냄새가 그립다. 두둥실 흰구름 흐르는 하늘, 나를 간지럽히는 바람, 가끔 우리가 자라기도 전에 우리를 파 먹어 버려서 조금 무섭지만 예쁜 소리를 내는 새들, 나에게 해를 끼칠 벌레를 대신 잡아 주는 곤충들이 있는 땅으로 가고 싶어. 무엇보다 목이 말라. 아~ 시원하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마시고, 샤워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그립다. 물을 마시면 내 몸이 쑥쑥 자랄 텐데 말이야.
그런데 6월이나 되어야 한대.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잖아.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수다를 떠는 거야. 그래 맞아. 나는 수다쟁이거든. 내 소개는 이만하고 친구들 이야기 먼저 들려줄게.
어제 콩나물시루에 있는 애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서 귀가 아프더라. 비좁은데 서서 자기들끼리 서로 예쁘다고 자랑을 하는 거야.
"내가 더 키가 크단 말이야. 나 어때?"
"아니야, 내가 더 잘났어. 나는 통통해서 인기야."
그런가 하면 어떤 애들은 불평불만이 많았어.
"나는 물을 조금밖에 못 먹어서 못 자랐어."
"불빛이 보이는 데 있어서 내 몸이 초록이 되려고 했다니까. 잘 좀 덮어주지 눈이 부셨어."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시루에 깔판을 깔은 후, 바닥에 노랑 콩들을 놓아. 그런 후 매일 물만 잘 주면 돼. 진짜 쉽지?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키울 수 있어.
그런데 물을 잘 주지 않거나 아래에 고이게 하면 썩는대. 그러니까 시루의 물이 썩지 않고 아래로 잘 빠지게 해야겠지?
그리고 가끔 시루 아래 그릇에 고인 물도 따라버려야지. 중요한 것 말해줄게. 만약에 검은 천으로 잘 덮어주지 않으면 잠을 잘 못 자. 물론 밭에서 자라날 우리들은 싹이 나고 줄기와 잎으로 '광합성'이란 것을 해. 그렇게 해야지만 더 많은 콩이 열리지. 콩나물시루에서 자라는 애들은 노랗고 대가 길고 튼튼해야 사람들이 좋아해. 내가 그림으로 보여줄게. 아래 그림같이 자주 물을 뿌려주는 거야.
루씨의 브런치에 전주 콩나물 어묵국 이야기 쓴 거 있는데 링크해 줄까? 어묵 김칫국에 콩나물을 넣으면 국물이 시원해 진대.
https://brunch.co.kr/@campo/56
전주에 놀러 오면 콩나물 국밥에 깍두기 넣어 한 숟가락 먹어봐. 아삭아삭 정말 맛있다고들 해.
양푼 요리도 있어. 국수가 5천 원인데 비빔밥을 공짜로 주는 집이야. 콩나물도 더 먹을 수 있어.
전주역 앞에 뚝배기 짬뽕이야. 콩나물 사촌 숙주를 넣었더라. 지글지글 바로 끓여서 주는데 얼큰하고 시원하고 개운 하대.
양푼 김치찌개야. 여기에도 콩나물이 들어가지? 콩나물들도 우리 콩을 명예롭게 해. 콩으로서 자랑스러워.
다음에도 이야기해줄게 많아. 또 만나~^^
시루에서 나온 콩나물들은 식탁 위에서 여전히 수다를 떠느라고 바쁘다. 빛을 못 보다 나와서 다들 눈이 너무 부셔서 난리다.
그런데 그 애들은 모른다. 나는 곧 흙냄새를 맡으면서 주렁주렁 후손을 만들 귀한 존재라는 것을. 내가 제일 잘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