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Nov 15. 2020

어묵 김칫국 한 사발

저 산의 나무처럼 살자

소중한 친구가 많다는 것은 내가 인복을 타고났다는 것이리라. 그중 홀로 사는 친구는 주말에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기에 좋다.


친구가 서울에 살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KTX가 개통된 후 3시간이면 오갈 수 있어 수월해지기는 했다. 우리는 오래전 열흘간 이탈리아  배낭여행도 함께 했다. 나의 딸과 딸의 친구와 내 친구와 나 이렇게 여자 넷이서 여러 해프닝을 겪으며 다녀왔다. 그래서 나는 이탈리아에서의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아씨시에서 너랑 와인 마시며 밤새 이야기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남아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마을의 아씨시에 머문 적이 있다. 우리는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면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뇌가 있는 법이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을 이해하는 진정 어린 눈을 만난다면 인생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고뇌를 털어놓았고 그리하여 그 짐을 나누게 되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어느 누구도 공감이나 이해를 해 주지 않았기에 철저히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 나와 함께 한 음식 중 최고의 요리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친구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어묵 김칫국 한 사발, 그리고 모악산에 올라 산자락을 내려다보며 마신 인삼막걸리 한잔과 마늘쫑을 잊을 수 없어


친구가 휴일에 내려와 연락을 하면, 우리는 그날 종일 '싸돌아' 다닌다. 싸돌아다닌다는 표현은 나의 할머니로부터 배웠다. 어릴 적에 하루 종일 골목에서 놀거나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가 밥때 되어 집에 가면 할머니께서 이리 말씀하셨다.

하루 종일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다가 오냐


할머니의 그 말씀이 싫지 않았다. 자유롭게 실컷 놀고 온 대가로 듣는 짧은 훈육의 말씀이셨기 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천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 입기 체험을 하거나, 맛집이 많은 전주의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종횡무진 '싸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겨울의 초입, 우리는 모악산에 오르자 했다. 친구는 새벽같이 내려왔다. 새벽에 콩나물, 김치, 어묵에 고춧가루를 풀어 심심하게 끓인 '어묵 김칫국' 한 사발을 들고 내려갔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에게 추우니 한 숟갈 맛보라고 건넸다. 가족이 잠을 자던 새벽이라서 친구를 집안으로 들이지 못해 미안했다.

오뎅김치 국

추운 겨울 따뜻한 국물 후루룩 마신 후 모악산을 향했다. 겨울이라서 잎이 모두 지고 없었다. 모악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앙상한 가지들도 울창한 숲을 이루어 마치 잎들이 무성한 듯 보였다. 겨울은 겨울대로 잔가지들의 선이 아름답다. 가지들은 이듬해 틔울 싹을 숨기고 있다. 정원의 나무는 가지치기를 할 때, 싹을 지닌 부분을 잘 잘라야 수형이 예쁘게 자란다. 한 번은 수국의 가지치기를 심하게 해서 다음 해 꽃이 피지 않은 경우가 있다. 싹을 모두 자르면 꽃을 피울 희망이 없다. 나무를 통해 배운다. 사람도 희망을 앗아가면 미래가 없어진다.


산의 나무들은 자유롭다. 수형도 자기 멋대로다.  때로는 경쟁하여 도태되기도 하고, 신비롭게 자생하거나 엄동설한 중 상록의 식물을 안아주기도 한다. 겨우살이가 그 한 예로 고도가 높은 산의 나무에 기생하는 초록의 식물, 겨우살이 군집을 볼 수 있다. 덕유산에서 스키를 탈 때, 곤돌라에 올라 겨우살이들을 봤을 때의 감흥이 생각난다.


모악산은 등산 코스가 여러 갈래다. 한 번은 구이 쪽에서 올라 금산사 쪽으로 내려갔는데,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친구와 나는 간단히 직 코스로 산에 올랐다가 오전에 마치는 등산로를 택했다. 오후에 각자 집으로 얼른 가야 했고, 싸돌아 다닐 시간이 없었다. 모악산 정상 부근에서 막걸리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인삼막걸리 한잔을 주문하면 고추나 마늘 쫑을 안주로 주셨다. 초겨울이라 산에 오르니 땀이 나서 인삼막걸리가 시원했다. 된장에 마늘쫑을 찍어 안주 삼으니 마늘쫑이 입안으로 자꾸 들어갔다. 한잔 마시면서 안주를 많이 먹는다고 핀잔하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약간 돌아오는 코스로 정했다. 정상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의 한 공간이 우리 둘을 위해 마련된 곳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산자락 아래가 훤히 보였다.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친구는 바로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한 것이다. 친구가 그리 말하니 나도 그 시간을 떠 올리며 다시 추억한다. 우리 자유롭게 그 산의 나무처럼 멋지게 살아보자꾸나.


10월 중반 모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19 여파로 인한 것인지 산 정상 부근의 막걸리 노점도 사라졌더군요. 글을 올리고 친구에게 보내니까 "추운 날, 바람 부는 날 난 어묵 김칫국이 생각난다."라고 말합니다. 친구가 그리 말하니 저도 앞으로 추운 날, 바람 부는 날에는 어묵 김칫국이 생각 날 것 같습니다.




오뎅은 일본어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어묵이란 표현이 맞다고 합니다. 맞춤법 교정기가 자꾸 어묵으로 바꾸라 합니다.



<집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매거진의 이전글 고마운데 저는 안 먹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