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와 부패에 대하여
안녕, 노랑 콩이야.
요즘 루씨가 자기 이야기만 실컷 하고 컴퓨터를 닫아버려서 발언권이 없는 나는 기죽어 있었어. 이러다가 쪼그라들어버리는 것 아닌지 슬며시 걱정되었지. 오늘은 루씨가 비 오는데도 나갔다 들어오더니 비 오는 날은 역시 전이라면서 전을 부쳐 먹더라고. 요즘 파가 엄청 비싸다면서 한단에 15,000원 한다는 거야. 비싸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파를 쫑쫑 썰어 간장소스를 만드는 거 있지.
시어머님 간장을 조금 넣으니 맛이 좋대. 그런데 다 먹고 나서 나한테 간장 이야기를 하래. 원래 오늘 고추장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부탁하니 간장 이야기 먼저 해 줄게. 그런데 맛있다고 다 먹고 나서 오늘 사진이 없다는 거야. 할 수 없어서 예전 사진이라도 올리니까 이해해. 루씨가 원래 정신이 좀 없는 거 같아.
그런데 지난번 나의 메주 이야기에 답해주신 분 중에 딱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있어. 우리 조상님들 이야기를 재밌게 해 주더라.
나는 콩이야. 루씨가 뭐라 하든 나는 콩이란 말이다. 저 멀리 만주 벌판이 우리들 고향이지. 그곳은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별과 비슷해. 벌판에 납작 엎드려 기어 다녔지. 그게 나의 정체성이야. 어린 왕자는 가시가 넷 달린 장미를 좋아했지만 나는 조선 사람들이 더 좋아. 사람들이 너무 착할 뿐만 아니라 용맹했지. 그들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매일 입맞춤을 했지. 설왕설래.. 그게 된장국이든 쌈장이든 그 무엇이든.. 나는 콩이야. 루씨가 뭐라 하든 입 꼭..!! 사람들은 6070세대를 쉰세대로 불러. 뭘 잘 몰라. 쉬었다는 건 발효되었다는 거그던. 그러니까 발효세대로 불러야 돼. 알찌? 나이는 늙음의 표시가 아니라 익음의 정도를 말하는 거야. 콩은 그렇게 익어간단다. 할머니가 주무시던 툇마루 작은 방 혹은 처마 밑이었지. 그런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장독대에서 장을 담궜단다. 귀신들.. 비루스가 아니아 박테리아를 위해 금줄을 쳐 두었지. 빨간 고추와 숯검댕이가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있었어. 그게 나중에 맛깔난 간장으로 변했지. 그게 나야. 나의 변신이지. 루씨표 포스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야. 아무튼 나는 콩이란다. 챠오 루씨~~ 코 잘 자고 또 봐!! 조금 시크한 나.. 콩이야 ^^
- 콩 @내가 꿈꾸는 그곳.
바를레타의 꿈꾸는 콩님! 고마워요 ^^.
그럼 이제 내 이야기를 좀 들어봐. 콩 중에 단맛이 많이 나면 탄수화물이 많은 거야. 나처럼 단백질이 많으면 구수한 맛을 내. 탄수화물이 모두 소화 분해되면 포도에 많은 포도당이 되고, 단백질이 분해되면 아미노산이 되거든. 어휴, 어렵지. 그래 몰라도 돼. 그냥 메주는 노랑 콩인 내 친구들로 된 것이라서 단백질이 많아. 우린 구수한 맛이 많이 난다는 것만 기억해줘.
간장의 색이 검은 이유가 숯 때문인 줄 알았다고? 하하. 루씨도 그런 줄 알았대. 간장에 숯이 들어가긴 해. 균을 죽이기 위한 거야. 간장의 색은 메주와 소금물의 작용 때문이야.
장독에 뜨겁게 달군 숯을 넣는대. 그럼 연기가 확 올라오겠지? 그때 물을 붓고 뚜껑을 덮으래. 그럼 장독이 뜨끈뜨끈 해진대. 조금 식은 후에 물을 붓고 소금의 양을 맞춘대. 어떤 소금을 쓰느냐도 중요한 거지. 소금 비율을 잘 맞춘 후에 균을 죽이는 빨간 고추도 넣고 단백질이 많은 노랑 콩 메주를 넣어. 대추를 넣기도 한대.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 장독 뚜껑을 닫아 따사로운 햇볕에 발효를 시키는 거야. 유약을 입힌 것보다는 잿물을 입혀 구운 항아리가 숨을 잘 쉬어서 발효가 잘 일어나 맛있는 장이 된대. 한국 음식들은 발효음식이 많아.
발효가 뭐냐고? 부패의 반대야.
그럼 내가 질문하나 할게~^^ 다음 간장 중에 제일 맛 좋은 것은 무엇일까?
장독의 재래 간장 중에 일 년 된 것이 맛있을까? 10년 된 것이 더 맛 좋을까? 60년 된 것이 맛있을까? 100년 묵은 것이 맛있을까?
바로 정답을 알려줄게. 간장은 장독에서 오래 묵은 것일수록 맛있대. 우리 전통의 맛은 간장 맛이야. 집집마다 간장독을 애지중지했다고 해.
못 믿을 친구를 위해 뉴스 하나 보여줄게. 놀라지
마. '60년 묵은 간장'이야기야.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2474106#layer-sns
간장독이 깨진다는 말은 평생 그 집의 맛을 책임지는 재료가 사라지는 것을 말해.
그런데 어떤 장인은 뭔가가 잘못되어 간장이 제 맛을 내지 않는다고 손수 장독을 깨 버린 분도 있대. 아깝다고 그대로 두어봤자 먹지 못할 장이 되기 때문이지.
내가 흙에 심어진 후, 자손을 주렁주렁 낳아서 좋은 메주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 애들이 진득하고 맛 좋은 전통 간장, 된장, 고추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루씨가 이제 간장 이야기 그만 하래. 저녁밥 먹을 거라고 컴퓨터 끈대. 나는 언제든 수다 떨고 싶지만 다음에 만나자~^^ 안녕!
오래된 간장처럼 예쁘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
콩 타작으로 자식을 세상에 내놓을 날이 오겠지.
불쏘시개가 된다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열정으로 살면 되지.
나의 콩 나무에서 태어날 노랑 콩들이 좋은 균을 만나 맛있는 간장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오래오래 묵어 맛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1. 3월 20일 저녁 8:00.